좋은 하루 17화
“어디야?”
“나 병원 밖에 앉아있어.”
“곧 주사실로 가야 하는데?”
“좀 밖에 있다가 들어갈게. 전화해 줘...”
곧 7차 항암이다. 이제 두 번 남았다.
그런데 도저히 들어가기가 싫다.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를 맡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구토가 올라온다.
아직 주사를 맞기 전인데도, 벌써 두 번이나 토했다.
“진료순서이오니 항암주사실로 와주십시오.”
후…
별 탈 없이 끝날 수 있길.
항암주사실로 들어가 곧바로 침대에 올라앉았다.
종이컵 여러 개와 이온음료를 준비해 두고,
주사 놓을 팔을 걷어 올린 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간호사님은 반갑게 맞아주신다.
하지만 이제 그 온화한 미소도 내 두려움을 덮지는 못한다.
주사가 들어가고 항암제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곧이어 구토가 시작됐다.
갈수록 심해진다.
이젠 주사를 맞는 동안 열다섯 번 정도는 토하는 것 같다.
“도저히 못하겠어 엄마… 쇼크 올 거 같아.”
몸을 부르르 떠는 날 보며 어머니께선 어쩔 줄 몰라하셨다.
묵묵히 토가 가득 찬 종이컵을 버리시고 입가를 닦아 주셨다.
겨우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름이 시작 됐지만, 내 몸은 한겨울처럼 벌벌 떨린다.
차 안에서도 구토는 멈추지 않는다.
분명 살려고 하는 건데, 어째 점점 송장이 되어가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손발은 피가 몰린 것처럼 얼얼하고,
이젠 약을 복용하지 않았는데도 저림이 사라지지 않는다.
발바닥은 터지고 벗겨져 두꺼운 양말을 신지 않으면 걷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음식은 모래를 씹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사를 맞은 날이면, 방에 쓰러진 채 이온음료만 억지로 넘기며 버텨나갔다.
몸무게는 수술 전에 비해 17kg 빠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혐오스러웠다.
정신만큼은 붙잡자고 다짐했건만, 이젠 생각할 힘조차 없다.
“밥 먹자!"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끓인 삼계탕을 내 앞에 가져다주셨다.
미묘하게 닭 비린내가 났다. 무언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못 먹겠어..."
국물을 한 입 먹고는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놨다.
"먹어야 할 텐데, 그래야 낫지."
"안 들어가는데 어떡해."
어머니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삼계탕을 다시 부엌으로 가져가셨다.
난 식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몇 분 뒤, 어머니께서 다가와 또 내게 음식을 권하셨다.
"계란이라도 먹어볼래?"
아. 이러면 안 됐는데.
아무리 약 때문에 예민해졌다 하더라도 정말 이러면 안 됐는데...
나는 어머니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안 먹는다고!"
"그래도 먹어야 낫지..."
"몇 번을 말해야 해? 밥을 먹으면 토가 나온다고."
울상을 짓는 어머니를 날 선 말들로 몰아세웠다.
"나를 토하게 만들고 싶은 거냐고!"
리모컨을 소파 쪽으로 던지고,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구나.
아니지,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저번에도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지.
결국 바닥을 찍었네.
몸도, 마음도.
원망스럽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아왔다고...
왜 하필 나야?
X발 왜 나냐고.
아빠, 약속 못 지킬 거 같아.
우리가 곧 보게 될 수도 있잖아?
.....
....
... 미안해.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주방에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소리 지르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해 나도 모르게 예민했나 봐.”
시선을 설거지 그릇 쪽에 둔 채 멀뚱멀뚱 서있었다.
어머니께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 화를 내시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돌아온 건 의외의 대답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항암치료받으면 예민해진다고 하더라.”
그리고 조용히 웃으시며 이어 말씀하셨다.
“난 네가 잘 먹고 잘 자면 돼. 그걸로 됐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는 내게 방으로 들어가 쉬라며,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다.
뒤돌아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아... 나 따위가 뭐라고,
이리도 무한한 사랑을 받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참 복 받은 존재였다.
아플 때나 아닐 때나 늘 걱정해 주시는 어머니.
멀리 있어도 든든하게 정신을 붙잡아준 누나.
나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여자친구.
그리고 갑작스러운 안부와 선물로 응원해 준 친척, 친구, 회사동료들까지…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동안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거창한 업적, 돈, 심지어 내가 그동안 해보고 싶던 것들...
그것들은 결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웃음, 눈물, 추억...
그래. 그들과의 모든 시간.
이게 가장 중요하다.
이것을 철학자들은 '사랑'이라 불러왔던 것 같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다시 눈을 감았다.
요즘따라 자주 찾는 것 같네.
그만큼 보고 싶은 가봐.
아빠, 나 그동안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아.
아빠가 마지막으로 말한 "너의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도, 이제 그 뜻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한 것이었던 거였어.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인 것 같네.
아마 아빠도 나처럼 병상에 누워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깨달았던 것이었겠지.
아빠 미안해.
아빠도 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아.
꼭 살고 싶어.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