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

좋은 하루 2화

by Ryan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뜨니, 아침 5시 50분.

여전히 밖은 어두웠다.

정말로 시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닐까.

눈이 떠지지도 않는데, 주식을 다급히 확인했다.


+0.57%.


다행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고, 대충 걸쳐 입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

어머니께서 일어나 마중해 주셨다.

“조심히 다녀, 요즘 길이 미끄러워서 사고가 많이 난다더라…”
“알았어. 걱정 마, 다녀올게.”

짜증 섞인 말투로 대충 대답하고

엘리베이터에 타 닫힘 버튼을 다급히 눌렀다.

‘나도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잔소리를 하시는 걸까.’


버스에 타 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봤다.

주식이 밤새 오르락내리락 한 이유가 보였다.
여자친구는 제시간에 일어났다.

부러웠다. 나도 이런 날엔 7시 즈음에 일어나고 싶었다.

'과연 저축을 해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까?'

부러움을 숨기고 메시지를 보냈다.
‘잘 잤어? 오늘 길이 미끄럽대. 조심해요.’


회사에 도착해 지하 식당으로 향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출근 전부터 왜 전화를 할까?

그런데 이상했다. 번호가 032로 시작했다.

뭔가 싸했다. 이상한 느낌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통화 괜찮으신가요?”

며칠 전 위 내시경을 해준 내과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한 달 전, 속 쓰림으로 병원을 찾았고 위염 진단을 받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는 동안은 증상이 괜찮았지만, 혹시 몰라 위 내시경을 받았는데

내시경 결과 위궤양이 크다는 말을 들어 조직검사를 진행했었다.


“혹시 지금 병원으로 오실 수 있을까요?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설마…

순간적으로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왔나요?”





위암입니다. 자세한 건 병원 오시면 설명드릴게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고, 눈물이 맺히지만 슬프거나 화난 감정은 없었다.

그저 무감각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당장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서둘러 사무실로 올라가 팀장님께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팀장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이래요.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팀장님은 놀란 얼굴로 나를 다독였고, 난 눈물을 참으며 회사를 나섰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병원에서 보자고 하셨고, 여자친구는 놀랐지만 곧 괜찮을 거라며 나를 진정시켰다.

출근길을 거슬러 다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버스에 타 창밖을 멍하니 보는데 가슴이 떨려왔다.
‘내가 암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희망을 붙잡았다.


‘그래도 초기겠지. 아직 젊은데.'


Whisk_0bf1e69b75.jpg '위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시야가 하얘지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병원에서는 무겁게 상황이 전달됐다.

“암의 크기가 크고, 암세포의 분화도가 낮아 전이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시경으로는 전이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가슴 한가운데 돌덩이가 떨어진 듯 숨이 막혔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생존율은 어떻게 될까요?”
“현재로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먼저 정밀검사를 통해서 전이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하루라도 빨리 큰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다급히 병원을 나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가장 빠른 날짜로 진료를 잡았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하셨다.
“우리 아들이 그동안 무거운 짐을 지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을 거야. 우선 빨리 큰 병원부터 가보자.”


집에 도착해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선 어머니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긴장이 풀리면서,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왜 하필 지금일까. 아직 죽기엔 이른데, 이제 겨우 삶이 안정되기 시작했는데…
내가 죽게 된다면, 어머니는? 이제 결혼 이야기를 시작한 여자친구는?’


슬픔은 이내 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서럽게 울며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꽉 깨물었다.

어떻게 이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왜 하필 나예요?


두 시간 뒤, 여자친구가 반차를 내고 달려왔다.
서로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부터 흘렸다.

“어떡해…” 그녀는 울먹였다.
나는 그저 “괜찮을 거야.” 그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울한 상태로 집 안에만 있고 싶지 않아, 그녀의 차를 타고 영종도로 드라이브를 갔다.
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웃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둘 다 데이트를 즐기는 척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곧 다가올 내 생일을 미리 기념하자며,

평소 가보고 싶던 스테이크 식당으로 향했다.
주문을 하고 실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이 그러더라니까? 참 어이가 없어서…”
“그니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진짜 웃겼어. 웃기지?”
“그니까…”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 했고,
그녀는 “그니까…”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결국, 그녀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괜찮을 거야.”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할 수 없었다.
내가 슬픔의 원인인데, 내가 위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나는 애써 눈물을 숨기며 서럽게 우는 그녀를 계속해서 토닥였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한 말들을 꺼냈다.
“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해. 돌아올 수도 있는 거고, 운이 나쁘면 못 돌아올 수도 있는 거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이어나갔다.
“4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겨냈잖아. 이번에도 이겨낼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약속을 했다.


여자친구가 걱정되기도 하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그녀의 집 근처 역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운이 없어 환승역에서 택시를 잡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깊게 잠들고 나서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일까?
잠든 상태에서의 '검은색'인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꿈을 꾸는 것일까?
만약 그 꿈이 악몽이라면, 그곳은 지옥인 것일까?'

여러 복잡한 생각과 함께, 지난 4 년간의 기억들이 가로등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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