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 장례식에 제가 참석할 수 있을까요?

좋은 하루 3화

by Ryan

“통화 괜찮으신가요?”


구청 직원의 전화다.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에 내가 참석할 수 있을지 문의해 둔 상태였다.
당시 규정상 모든 해외입국자는 코로나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입국일자로부터 2주간 의무격리 해야 했다.


일주일 전에 귀국했던 나는, 격리 지침으로 인해 자택에서 격리하고 있었다.

“격리기간 중 상주께서 장례식 참석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장례식장 상황도 고려해야 해서요… 해당 장례식장하고 협의하셔야 합니다.”


곧바로 안내에 따라 장례식장과 협의하기 위해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지금 장례식장에 모셔진 분의 아들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해외입국으로 일주일째 격리 중인데, 상주로서 장례식에 참석이 가능할까요?


침묵이 흘렀고, 다급해진 나는 애써 덧붙였다.

“코로나 검사는 음성입니다. 증상도 전혀 없고요.


그러나 몇 초의 공백 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만, 격리 중이시면 참석이 불가합니다.”


바이러스가 음성이어도, 혹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면

장례식장 전체에 혼란과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참석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엔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 전체 분위기가 매우 민감했기에 장례식장의 입장은 이해가 갔다.


이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드렸다.

“엄마, 구청에서 장례식장 하고 협의하라고 해서 장례식장에 연락해 봤는데, 참석은 안된다고 하네…”
어머니는 정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어쩔 수 없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잘 마무리하고 갈게.”


장례절차를 혼자 감당하고 계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Screenshot 2025-08-22 at 2.23.31 PM.png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매우 민감했다.

나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군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대할 때 즈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쳤고,

이로 인해 복학이 무기한 연기 되었으나 다행히 몇 달 후, 미국으로 돌아가 복학할 수 있었다.

모든 생활이 입대 전처럼 돌아오리라 기대하였으나

출국 전, 십여 년을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


녀석은 내가 중학생 때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다른 집에서 입양 후 불과 사흘 만에 파양 했던 강아지였는데,

녀석의 엄마 품에 돌려보냈더니 자꾸 이 녀석을 다치게 해 급히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손바닥만 하던 녀석은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지만

어느새 훌쩍 자라, 집에 누가 들어올 때면 재빨리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내가 방에 있을 때면 방문을 긁고 킁킁대며 문을 열어달라 조르곤 했다.

문을 열어주면 내 발밑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핥으며 같이 있자고 졸라댔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도 나이가 들면서 장에 문제가 생기더니,

눈에도 문제가 생겨 얼마 안 가 시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내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만 들리면,

거실 한가운데서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걸음을 하며 반겨주던 녀석이었다.


제대 후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 날, 항상 집 문을 열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녀석이 없어 허전함이 밀려왔다.


IMG_0432.JPG 좋아하는 인형을 턱에 베고 자는 녀석의 모습.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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