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억

좋은 하루 4화

by Ryan

그렇게 반려견의 죽음이 익숙해지기도 전,

갑자기 아버지가 원인 모를 통증을 호소하신다고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진료를 받자고 제안드렸지만,

아버지는 진료를 볼 정도인지 두고 보자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그 후 한 달이 지났지만 괜찮아질 것이란 기대완 달리 통증은 더 심해졌고,

갑자기 아버지의 배가 부풀기 시작했다.

점점 복수가 차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고

똑바로 눕지 못하셔서 리클라이너에서 잠을 청하셨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급히 병원으로 가 진단을 받았고, 진단 결과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였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믿기 싫었다.

이제야 아들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암이라니… 그것도 낮은 생존율로 악명 높은 췌장암…


병원을 나오면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하는 듯하셨고, 아버지는 나를 애써 위로해 주셨다.

“울지 마. 괜찮을 거야. 까짓 거 치료받으면 되지!”


결국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나는 누나와 함께 미국 집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버지의 한국행이 결정된 그날 밤, 아버지가 내 방으로 오셨다.

“자니?”

나는 생각에 잠긴 상태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걱정되니?”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며 물어보셨다.

“…네”

“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해. 돌아올 수도 있는 거고, 운이 나쁘면 뭐… 못 돌아올 수도 있는 거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너 할 거 하면 돼.”

아버지는 늘 그래오셨듯,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

“괜찮으실 거예요, 꼭 나으실 거예요. 전 걱정 안 하니까, 아빠는 치료만 잘 받으시면 돼요.”

다가올 일을 상상하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를 안심시키며 그 밤을 넘겼다.


낙관적이었던 우리의 다짐과 다르게,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배는 부풀었고,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셔서

한 달 전 모습하고 비교가 안될 정도로 초췌해지셨다.

아버지는 리클라이너에 의지하신 채,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며 출국날만 기다리셨다.


출국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거실로 나를 부르셨다.

“이 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할게.”
긴 침묵이 흘렀다.

“누나는 사위와 행복하게 지내니 괜찮을 것 같고,

너도 군대 다녀온 후 보니 이제 남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다만 걱정되는 건…”

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눈가를 훔치셨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씀을 이으셨다.


엄마를… 잘 부탁해. 미안하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중학생 때 할아버지를 여의셨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셨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곁을 지키셨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힘든 일들을 극복해 오셨던 것 때문일지,

아버지는 늘 자신감이 넘치셨고, 지혜로웠으며, 강인하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 나에게 부탁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눈물조차 보이지 않으신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초라해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가장 소중한 사람을 부탁했다.


자식이 비슷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미안하셨던 걸까.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저 성적도 잘 받고, 취업도 빨리할 거예요.

엄마 걱정 하지 말고, 아빠가 잘못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다 나으실 거예요.”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횡설수설 앞으로의 계획들을 늘어놓았고,

아버지는 한참을 들으시다가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닦으셨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한국에 도착한 아버지는 2주간의 격리 끝에 병원을 찾아 헤매었지만,

혹시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 우려로

해외입국자인 아버지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긴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미 병세가 상당히 악화된 상태여서, 치료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어머니는 “괜찮아질 거야”라며 아버지의 사진을 보내주셨지만, 사진 속 아버지는 날마다 더 야위어 갔다.


그 사이, 나는 누나와 함께 미국 집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엔 학기를 마치기 위해 학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 어느덧 내 생일이 다가왔다.

누나가 챙길 건 챙기자며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 줬다.

그 축하가 잠시동안 쉼을 주었지만, 이내 다시 불안이 밀려왔다.

우린 내 생일 다음날 한국으로 입국했다.

입국 후에도 아버지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얼마 안 가 아버지는 섬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중환자 실로 옮겨지셨다.
어머니께선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하시며

격리 중인 우리에게 아버지의 유서를 사진으로 보내주셨다.


평소 필체가 또렷하고 단정했던 아버지의 글씨는 흐릿하고 구불구불했다.

섬망 증세로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했지만,

그 사이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너의 인생을 살아라!”였다.


12월 25일, 내가 입국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나셨다.


Merry Christmas. 그곳에선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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