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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Jan 16. 2022

기독교 구원의 모순

일회성인가 완성형인가

"교회를 왜 다녀야 할까? 기독교를 믿는 이유는 뭘까?"


가장 단순한 질문이지만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도 선뜻 답을 내기는 쉽지 않다. 복을 받기 위해서, 성도와의 친교를 위해서, 성경에 쓰인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많은 대답 중에서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구원"아 아닐까 싶다. 


구원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다. 현세에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을 갖는 이들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교리다. 이 세상에서 어떤 죄를 지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다만 열심히 예수를 믿고 많은 선행을 베푼 사람은 천국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된다.


지나가다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지만, 한 꺼풀 들어내 보면 분명한 모순이 보인다. 천국을 가는 구원이 이뤄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천국에 가는 조건은 단 하나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럼 구원은 완성형일까 아니면 일회성 일까? 성경에서는 구원의 성격이 완성형인지 일회성인지 말하지 않는다. 완성형으로 해석되는 구절도 있는 반면 일회성으로 보이는 구절도 있다. 대표적인 완성형 구절을 꼽자면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내용이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구절을 곱씹으면 분명 구원은 일회성은 아니다. 

반면,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여 일회성에 가깝게 해석이 된다. 


구원을 완성형으로 가정해보자. 몇 년간인지는 모르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서 믿음을 쌓고 덕을 베풀면서 0%였던 확률을 조금씩 높이는 방법이다. 남을 돕고 예수를 전파하는 방법은 그 확률을 높이고, 성경 말씀과 다른 나쁜 행동을 이어가면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행위가 누적되어 100%가 되었을 때 비로소 천국에 가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구원이 완성형이면 마일리지 적립에 가깝다.


구원을 완성형이라고 하면 선행을 장려하고, 매주 교회를 나와서 죄를 고하면서 회개하는 기독교의 모든 행위가 이해가 된다. 그렇게 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거니까. 이런 관점으로 보면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나 노인들에게 예수를 믿으라라고 권하는 행위는 기만에 가깝다. 몇 달 아니 몇 주도 안 되는 단기간에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 10년은 남아있어야 구원의 완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도적은 죽기 진전에 예수를 영접해서 천국에 갔다고 누가복음은 말하고 있다. 구원이 완성형이라면 이 구절은 거짓이 된다. 


예수와 함께 못 박힌 도둑은 '성 다스마스'로 불리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럼 누가복음의 구절처럼 구원을 일회성이라고 생각해보자.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도 어느 한순간의 깨달음이지 않은가. 구원도 예수를 믿기만 하는 그 순간 이뤄지는 일회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시각으로 보면 예수와 같이 못 박힌 도적이 천국에 가는 것도, 사형수나 곧 죽음을 앞둔 이에게 예수를 전하는 일 모두 이해가 된다. 아니 이해를 넘어서 그렇게 하는게 기독교의 참된 교리를 실천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을 일회성으로 하면 오랫동안 믿음을 갖는 사람이 불리해진다. 똑같이 천국에 간다고 하면 오래 교회를 다니면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냥 막살다가 죽기 진전에 믿는다고 고하고 천국에 가면 된다. 일요일마다 시간을 내서 교회를 가거나 헌금을 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 천국에서 받는 보상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천국의 못 가는 확률도 함께 커진다. 예수를 믿었다가 마지막에 은자 30냥에 그를 팔았던 가롯 유다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처음부터 안 믿은 만 못한 결과다. 앞에서 말한 마태복음에서도 그 위험은 확인할 수 있는데 주여주여만 고백한다고 천국에 가지 못한다. 행함이 따라야 한다. 이쯤 되면 일찍 믿음을 갖는 게 손해다. 


행함이 없어도 믿음만으로 일회성 이벤트가 완성된다고 하면 착하게 살거나 교회를 열심히 나갈 이유가 없다. 10살 즈음 구원을 완성한 다음 그다음부터는 타 종교를 믿는 것만 빼고는 편하게 살아도 된다. 어차피 천국은 갈 테니까.



이 두 가지 모순에 혹자는 구원은 일회성이기도 하고 완성형이기도 하다라는 황희 정승 같은 답을 주는 사람도 있다.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갖는다는 것은 두 가지 모순이 함께 한다는 소리와 같다. 일회성도 완성형도 아니라는 말이 되기 때문에 구원 자체가 거짓말인 셈이 된다. 


칼뱅의 예정설을 설명하는 만화

나는 어머니가 목회자이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이다. 이런 구원의 모순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싶어서 여러 목회자에게 문의를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칼뱅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들고 나온 예정설에 따르면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모두 구분했다고 주장했다. 하긴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누가 지옥 갈지 천국 갈지 모르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 사람을 만든 것도 본인이니 논리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이 논리는 구원론에 가져오면 구원을 위한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구원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에 따르는 결과가 아닌 신이 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막살건 말건, 신을 믿건 말건 천국 갈 사람은 천국에 가고 지옥 갈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것처럼 될 사람은 뭘 해도 되는 거다.


나는 아직도 구원의 속성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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