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 번째 이야기. 장교, 취업에 유리한가? (1부)
장교를 하면 취업에 유리할까?
학군단 홍보 책자는 물론 주변에서도 ROTC는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는 서너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장교로서 리더십을 입증되었다.
2. 장교 전형 특채를 둔 기업이 많다.
3. 면접관이 장교 출신인 경우 +a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
4. 먼저 취업한 선배들의 인맥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장교라는 스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바깥의 취준생과 비교해서 그들의 80%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마이너스 요소다. 소위 말하는 바보 군인으로 낙인찍힌다. 면접에서 이런 전역장교들에게 늘 하는 질문이 "군대에서 뭐한 거예요?"이다. 군 생활은 성인 남성이면 거의 누구나 거치는 곳이다. ROTC 장교 복무를 했기에 남들과 조금의 차이를 둘 수는 있지만 ROTC 인원만 해도 4천 명이다. 한해 전역자들만 해도 3 천 명씩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데 장교라는 명함만으로 취업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최소한 사회에서 취업 준비하는 이들의 80%이다. 아니면 최소한 전역자 3천 명 중에 상위 20% 안에는 들어야 경쟁이라도 해볼 만하다.
전역하는 날, 참모장님이 자신의 방으로 전역예정 장교 모두를 부르셨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사회로 진출해서 성공을 바란다는 덕담을 건네셨다. 그 자리에 모인 전역예정 장교 13명의 동기중 취업이 확정된 인원은 나를 포함해 7명이었다. 나머지 6명은 하반기 공채를 목표로 전역 후에 노력하겠다며 참모장님께 다짐을 이야기하고 그 방을 나섰다. 취업 자체가 군생활의 성패를 결정짓는 도구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꾸려가는데 원하는 직업,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건 사실이다. 장교라는 타이틀이 유효한 시기는 전역 후 1년까지다. 왜? 내년에는 새로운 3천 명이 채용시장으로 수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 생활하는 동안 취업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군 생활을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토익시험만 하더라도 부대에서 시험장까지 가려면 산을 몇 개를 넘어야 부대 입구에 도착하고 거기서 또 차를 타고 한 시간은 나가야 한다. 토익스피킹은 아예 큰 도시까지 나가야 한다. 정식 휴가가 아닌 이상 위수지역을 함부로 벗어날 수 없고, 주말에서 상황실에서 번개통신이라고 해서 수시로 위치를 확인하고 때로는 부대 복귀 명령을 내리는 상황에서 마음 편히 시험 보러 가는 것조차 일이다. 그래서 지휘관에게 영어시험을 보러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되돌아오는 건 따가운 눈총이다. 군생활에 관심은 없고 제 잇속만 챙긴다는 시선과 함께 바쁜 부대 일정까지 겹치기라도 하면 욕이라도 안 먹으면 다행이다.
가장 친한 동기중 하나는 전역 준비를 위해 시험을 봐야 한다고 중대장에게 주말에 외출을 보고했다.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중대장은 외출은 허락하되 부대 업무가 아닌 개인용무이기 때문에 위병소까지 차량은 지원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강원도 전방 초소에서 근무하던 동기는 한겨울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뚫고 한 시간을 넘게 산 몇 개를 넘어서 위병소에 도착했다. 위병소에서 중대장에게 다시금 출타 보고를 한 뒤에야 겨우 시험장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당시 동기의 중대장은 시험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않은 방법을 제시했다. 자기는 부하의 사정을 고려해서 시험 보러 출발하는 것까지 허락했으니 문제없다는 명분도 있었고, 추운 겨울 걸어가지 못해 시험을 못 본 것은 네 탓이다 라고 돌릴 수 도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렇게 독하게 나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동기는 이렇게 어렵사리 시험을 보고 와서 며칠간 중대장의 업무상 보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나마 매달 있는 토익시험 일정도 맞추기 어렵다. 훈련 일정이나 당직근무 때문에 시간이 안 맞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군인들은 보통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출근을 한다. 계절마다 출퇴근 시간이 30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대개 그 시간에는 부대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대부분 더 일찍 출근하면 출근했지 더 늦게 출근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오전 8시에 회의를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숨 가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9시를 훌쩍 넘어간다. 야근을 좀 길게 했다 싶으면 11시를 넘기는 일도 잦다. 취업 준비한다고 영어책을 펴기는 하는데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두뇌는 좀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다. 눈꺼풀도 눈치 없이 자꾸만 아래를 향한다. 그러다 보면 새벽 1시에 가까워지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든다. 통상적인 군 간부의 기본 일상이다. 개중에 특이한 지휘관이라도 만나면 아침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출근시간이 더 당겨진다.
나 같은 경우는 행정 병과로 훈련한다고 야지를 다니지 않았지만, 다른 동기들의 생활을 들어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훈련의 연속이었다. 훈련과 훈련 사이는 병력 관리와 훈련 후 정비 그리고 다시 훈련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나라에서 괜히 월급을 주는 게 아니다.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일을 시킨다.
후보생 시절 이런 말을 해주는 선배는 없다. 학군단 기수는 보통 위아래 한 기수 정도만 실제로 몸을 부벼대며 살아가고 나머지 선배기수는 별도로 자리를 마련해야 얼굴을 익힐 수 있다. 유대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취업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듣는 시기가 바로 윗선배 들이 전역하는 때다. 자신들이 취업 준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노하우를 알려주는데 이마저도 대기업 문을 통과한 선배들이나 해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선배들은 조용히 전역 후에 취업준비에 바쁘다.
그래서 대다수의 후보생들이 졸업 전에 취업 긴장을 잘 느끼지 못한다. 졸업과 동시에 의무복무가 시작되니 2년간의 여유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군대에서 잘 준비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토익 점수도 2년 간만 유효하니 군대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좋은 변명거리도 있다. 그러나 장교로 복무하는 2년 4개월 동안 실제로 취업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단 1년이다. 길게 잡아봐야 1년 6개월.
임관하고 처음 4개월은 병과교육을 받느라 내내 훈련이다. 야전에서 써먹을 기술을 배우고 몸에 익히느라 다른데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다. 병과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고 나면 최소 6개월을 적응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된다. 업무에 적응하고 부대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적응력이 좋고 능력이 빼어나도 반년은 지나야(군댓말로 반 사이클은 돌아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대략 중위 진급을 앞둘 즈음이다. 현실적으로 이때는 되어야 취업준비를 할 여유가 조금 생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는 전혀 급할 게 없다. 전역은 1년 하고도 반이나 남았다. 취업 문제가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중위로 계급장도 바꿔달았고 월급도 조금은 올랐고 업무도 완전히 적응해서 재미도 느낀다. 분대원들도 이등병 때부터 데리고 있던 녀석들이 병장으로 진급해서 서로 얼굴만 보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정도라 병력 관리도 큰 어려움이 없다. 군 생활의 황금기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때를 말하는 것이렸다.
길지 않은 황금기에 경종을 울려주는 때가 바로 5월. 일 년 먼저 임관한 선배들의 진로가 하나둘씩 결정되면서부터 이다. 일부는 군에 남고 일부는 대기업으로 향한다. 문제는 군에 남지도 그렇다고 취업자리도 찾지 못한 선배들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차선책으로 일 년 더 준비기간을 갖고자 복무연장을 선택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타산지석이라고 했던가. 선배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준비되지 않으면 취업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고 그날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사회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취업시장 흐름에 자연히 뒤처진다. 회사마다 어떤 능력을 필요로 하는지 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회사와 직무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는 고민을 이어가기 힘들다. 궁여지책으로 취업에 기본이 되는 토익책이라도 잡는다. 공부를 하려면 부대 업무를 줄이거나 잠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부대 업무는 조절을 내 영역 밖에 일이다. 아무리 업무를 잘하고 빠르게 처리해도 윗사람이 퇴근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 양해를 구하고 하루 이틀 정도야 그럴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잠을 줄이지 않으면 공부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하루 네 시간을 자는 독한 생활을 계속해야 취업준비를 이어나갈 수 있다.
장교로서의 군 복무는 의무복무 이기도 하지만 직업이기도 하다.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라는 소리다. 돈을 받고 일하면서 전역 이후의 준비를 위한다는 핑계로 지금의 직업을 소홀히 한다는 건 위분들이 결코 용납할 행태가 아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서 이직 준비해야 한다고 자기 일을 줄여달라는 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일이 눈치도 많이 보이고 쉽지 않은 이유이다.
(나의 삼성 도전기는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