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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Feb 05.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장교와 취업(2부)

그 열 번째 이야기. 장교, 취업에 유리한가? (2부)

상반기 채용은 3월부터


채용시장의 기준점은 바로 삼성이다. 삼성이 3월에 공채를 시작하면서 전반기 취업시장 문이 열린다. 3월 이전까지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루 15시간 이상 부대 업무를 하면서 단 몇 개월 만에 밖의 취준생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는 방법은 없다. 이를 간과했던 이들은 취업전선에서 쓴잔을 들이켤 수밖에 없다. 전역을 반년 앞두고 모두가 취업준비를 할 때는 시작한다면 이미 늦었다. 


채용시장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면 3월 초 삼성의 공채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상반기 공채를 이어서 내고 4월 말에서 5월 초면 주요 대기업의 상반기 취업문이 닫힌다. 대한항공처럼 특이하게 하반기 공채만 뽑는 회사가 아니라면 보통은 상반기에 대부분 신입사원 채용을 하거나 상/하반기 나누어서 진행한다. 달리 말하면 상반기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일 년을 그냥 보내야 한다. 그렇기에 전역 전 일 년의 시간을 절대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 


삼성 지원기

사실 삼성에 원서를 넣기 전까지는 취업시장 움직임에 대해 전혀 몰랐다. 군 내에서는 취업이 화제가 될 일도 없을뿐더러 누구 하나 알려주는 이 가 없었다. 같은 부대에 있는 선배들도 대기업 합격통보를 받고 나면 곧 전역이라 허심탄회하게 취업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혹한기 훈련을 막 끝낸 1월 말. 전역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을 시기였다. 학군단 직속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라연아, 잘 지냈니?"

"네, 선배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학교 다닐 때 무서웠던 선배였고 자주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었기에 무슨 일로 전화를 주었나 몹시 궁금했다.

"라연아, 너 취업할 곳 정했니? 이번에 우리 회사 공채에 괜찮은 친구들을 추천하라는데 나는 너를 추천해 주려고."

선배는 포병장교로 근무하다 전역 후 삼성에 바로 취업했다. 어엿한 삼성맨 선배가 되어 후배 추천을 위해 의사를 확인하고자 전화했던 것이다. 선배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장점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뒤에 꼭 지원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삼성은 여러 개 계열사를 가진 국내 최대 기업으로 당시 선배가 근무한 계열사는 내가 목표로 했던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선배가 직접 전화해서 추천해 준다고 하는데 아니라는 말은 못 하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때는 대학교처럼 여러 군데 지원 가능할 줄 알고 다른 계열사도 같이 원서를 써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아보니 삼성은 전 계열사 중에 한 곳을 지원하면 해당 시기에 다른 곳은 지원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 국내 모든 기업이 그러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동시에 지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말은 뱉었고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냥 한번 연습하는 셈 치고 삼성 입사원서를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이 생각이 내 인생을 바꾸는 큰 결정이 될 거라는 걸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선배는 나 말고도 나와 절친한 동기 한 명을 더해서 추천했고 동기와 나는 같은 회사에 지원했다. 이 회사의 입사 지원 전형은 일반전형과 장교 전형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회사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던 터라 동기와 같이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  일반전형을 택했다. 


그리고 나서 싸트(SSAT)라고 불리는 삼성 직무적성검사 준비를 하는데 부대 일과 몰리다 보니 도통 공부할 여력이 나지 않았다. 책은 사놓고 50페이지도 못 풀어보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일정과 준비를 위한 휴가는 바로 승인 났다. 전역을 앞둔 말년 중위에게 부대는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 군에서 남부럽지 않은 계급이 말년병장과 말년 중위다. 


SSAT 시험은 제2의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다. 거의 모든 취업준비생이 한 번은 응시해 볼 정도로 저변이 넓다. 그리고 여러 언어부터 추리까지 여러 영역을 다루지만 어떻게 해야 잘 보는 것인지 도통 알려진 바가 없다. 일각에서는 IQ 테스트다 다른 이들은 정답이 있는 심오한 시험이다 등등 의견이 많이 갈린다. 삼성에 입사하고 나서 전체 그룹사 SSAT 지원요원 30인으로 뽑혀서 일도 해봤지만 뭐가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당시 내 친구의 답안지를 채점기에 돌리는데 정답을 모르니 빈칸을 채워줄 생각도 못했다. 


여담을 보태자면 인터넷에서는 SSAT 핵심 강의니 문제 유형 파악이니 하는 상술이 지금도 판친다. 책을 하나 사서 보면 알겠지만 이거는 강의를 들어서 알 수 있는 범주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SSAT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실제 SSAT 시험 출제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다. SSAT 시험 주관 T/F에 다녀와 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SSAT 준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3개년도 SSAT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최근 ISSUE에 민감하기 위해 시사잡지나 신문을 꾸준히 읽는 길이 정답이다. 


그리고 답안지를 낼 때 꼼꼼하게 확인하는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SSAT 응시인원 전부의 답안지를 채점했는데 사인펜으로 마킹하지 않은 답안지가 왕왕 나왔다. 매우 차가울 것 같은 삼성은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름과 수험번호 등 필수 입력 항목을 붉은 펜으로만 체킹 되어 있는 이들은 T/F 요원이 사인펜으로 마킹해 주기도 했다. 담당 과장은 한 사람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야기했다. 이런 과정의 SSAT 시험을 보고 나면 이제는 3~4 배수의 인원을 선발해서 면접을 진행하게 된다. 


시험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끝났고 동기와 나는 과연 붙을까 하는 생각으로 동서울 터미널 앞에서 가볍게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이내 강원도와 경기도로 방향을 돌렸다. 이제 원서접수랑 자소서 쓰는 연습이 한번 되었으니 다른 회사 지원을 한창 찾아보고 있을 때 SSAT 합격소식을 받았다. 합격은 했지만 도무지 내가 어떻게 붙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바로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 소식을 물었고 둘 다 합격했음을 확인했다. 미련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원했으면 떨어지는 것보다는 붙는 게 낫지 하는 생각으로 면접을 준비했다. 



(삼성 면접 이야기는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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