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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Feb 06.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장교와 취업(3부)

그 열한 번째 이야기. 장교, 취업에 유리한가? (3부), 삼성 입사기

정훈장교면 군생활 편하게 하셨네요.


삼성 최종면접에서 면접관 여섯명 중 한 번에 내게 던진 말이다. 삼성의 면접은 총 3가지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취업 준비할 때 미리 알지 못했다. 면접날 진행요원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줄 때 그때 알았다. 개인 발표, 조별 토의 그리고 최종 임원면접으로 이뤄진다고. 솔직히 말하면 면접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할 시간이 없었다. 말년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야근의 연속인 데다가 바로 위 상사는 병과 내에서 거의 원톱을 다투는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이미 보직해임을 두 차례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군에 붙어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새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무자인 내 기를 꺾으려고 하는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음에도 9시까지 사무실 인원을 붙잡아 두면서 본인이 퇴근할 때 내일 오전까지 보고할 업무를 던져주고 떠났다. 11시까지 야근하라는 무언의 소리였다. 그리고 출근은 본인 출근시간 이전에 이뤄져야 하고 자신이 출근하면 본인 사무실로 와서 정식으로 경례를 하고 오전 보고를 이어가도록 지시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대라지만 통념을 벗어난 지시를 하는 이상한 상관을 3개월째 모시다 보니 이틀에 한 번은 트러블이 생겼다. 당시엔 나도 말년이라 할 말을 다했지만 계급이 깡패인지라 대꾸 외에 더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심각한 자살충동까지 들만큼 말년이 힘겨워 미래를 위한 면접 준비 같은 것은 도저히 할 수 있는 정신 상태도 몸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 상태로 겨우 싸우고 싸워서 면접날 휴가를 낼 수 있었고 어렵사리 면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가장 친한 동기도 함께 했다. 서울의 한 삼성 연수소(잘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삼성에서는 일상적으로 통용된다.)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전혀 면접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두 가지 이유가 긴장감을 모두 해소시켜 줬다. 첫째는 나는 이 회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 프로세스에 대한 경험을 위한 것임으로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마인드가 있었고 둘째는 그래도 명색이 정훈장교데 말로 하는 면접이야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게 처음 프레젠테이션 면접이 시작되었다. 프레젠테이션 면접은 현재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제 10가지가 프린트된 종이를 나눠주고 그중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30분간 정리한 뒤 15분간 발표하는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TSMC 등 파운드리 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취해야 할 전략을 기술하시오.' 내지는 '중국의 대규모 LCD 투자로 인한 전 세계적  Display 공급과잉 대응책을 설명하시오.' 같은 주제 10가지 중에 자신 있는 하나를 선택해 발표하는 것이다.


10분간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영 손에 잡히는 주제는 없었다. 주변 다른 지원자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가며 기초를 세우고 있었다. 그중 뭐 하나 엮을 주제가 없을까 찬찬히 살펴보던 중 '시간'과 관련된 주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도요타의 Just In Time 재고관리 시스템 내용과 엘리베이터 시간을 손님이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거울을 설치한 유래를 섞어서 15분간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칠 수 있었다. 1차 면접의 면접관들은 4명가량 들어왔고 얼굴은 모두 40대 전후로 회사 내 과장 이상의 지위를 갖고 있는 분들 같았다.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당시엔 그저 면접관들이 내 말에 별로 흥미가 없었구나. 내가 뭐 실수한 게 있나 하는 생각을 짧게 하고 2차 토론 면접을 준비했다. 


2차 토론면접은 6명이서 한 조가 되어 면접장 앞에서 진행요원이 주제를 알려주고 찬성과 반대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당시 나를 포함한 4명이 찬성을 2명이 반대를 선택했고 진행요원은 원활한 토론을 위해 동수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찬성을 선택한 다른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 내가 옮기겠다고 이야기했다. 난 미련이 없으니까 찬성이든 반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욱이 중요한 건 문제 주제가 뭔지 도통 몰라서 찬성이든 반대든 헛소리 말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주제는 "특허괴물"에 대해 찬반을 묻는 일이었는데 그 특허괴물이라는 단어를 면접장에서 처음 들어봤다. 토론 면접 심사관 앞에 앉기 전에 겨우 특허괴물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었고 토론면접에서 그나마 몇 마디 할 수 있었다.


토론 면접 전에 다른 지원자들이 내 이름표를 빤히 쳐다보아서 왜 그러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면접장에 들어와 보니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이야기하면 '000 씨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든지 '000 씨 의견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과 같이 말을 붙여서 해야 하기에 사전에 이름을 외워둔 것이었다. 그걸 면접관 앞에서 알았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은 상황에서 이제야 고개를 돌려서 그들의 이름을 보는 것은 호칭을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다. 그래서 그 차선책으로 바로 내 옆에 있던 이들이 발언하면 말을 이어서 하거나, 다른 사람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그 뒤를 따라 그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엉망진창이었던 토론면접도 끝나고 마지막으로 임원 면접장 앞으로 향했다. 삼성 임원 면접은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취업준비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조차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다. 예닐곱 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은 관상을 보고 일부는 압박 질문하고 일부는 태도를 보고 하는 식으로 역할분담이 되어있어 면접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 결코 쉽지 않은 면접이라는 소문이었다. 


실제 임원 면접장에 들어서니 6명의 임원이 주욱 앉아있었고 그 앞에 딱 하나의 의자만이 놓여있었다. 내 자리였다. 면접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궁금증에 좌에서 우로 시선을 이동하여 면접관 얼굴 하나하나를 보았다. 한분은 노트북을 연신 두드리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분은 깍지를 낀 채로 나를 계속 응시했다. 다른 분들도 여러 종이를 넘겨가며 무슨 질문을 할까 고민하시는 듯했다. "간단히 자기소개해주세요."라는 말로 대망의 마지막 3차 면접이 시작되었다. 살짝 경례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사회이니 앉은 상태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자기소개를 이어서 했다. 


"ROTC로 올해 전역예정인데 특이하게 일반전형으로 지원하셨네요?" 

"회사에 들어와서 어떠한 직무를 하고 싶습니까?"

면접관들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임원면접인지라 긴장감이 흘렀다. 여기서 잘하면 아까 토론면접을 만회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더욱더 몸이 움츠려 들었다. 그러다 하나의 질문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정훈장교시죠? 정훈장교면 군생활은 편하게 하셨네요"


내가 지금 위에 이상한 상사 하나 가 와서 얼마나 힘들게 군생활하고 있는데 면접관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태평하게 저런 소리를 하는지. 화가 났다. 욱하는 마음을 순간 가라앉히니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다. 면접관에 말에 발끈하는 지원자라니. 그래서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억울한 마음을 풀고 싶어 말을 이었다.

"보통 정훈장교라 하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훈병과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어서 나오는 오해일 뿐 장병 정신전력을 위해서 그 어느 전투병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로 말씀드리면 장병 정신교육과 언론대응은 물론 부대 생활에 문화를 더하기 위해 진중 도서를 보급하고 주변 관공서와 협조하여 문화공연을 제공하는 등의 많은 업무를 하고 있고 어제도 11시까지 야근을 마치고 오늘 이 면접에 임하고 있습니다."


격한 마음에 전혀 거르지 못한 대답을 했다. 면접에 적절한 답은 아니었으리라. 그 질문 이후 두어 가지를 추가적으로 묻고는 임원면접이 끝났다. 하루 면접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에 없었다. 3차 면접을 마치고 대기장소로 돌아오니 면접비로 3만 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잘 나가는 회사는 면접에 왔다고 면접비도 주는구나. 동기와 나는 서로 3만 원을 들고 롯데월드로 향했다. 뭐든 다 잊고 한바탕 웃고 싶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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