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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Feb 07.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군대와 돈

그 열두 번째 이야기. 돈 그리고 예산 사용하기

군대에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바로 돈 쓰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사농공상을 바탕으로 하여 돈벌이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엔 시대가 바뀌어 돈을 번다는 일의 가치가 많이 재조명되었지만 아직도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돈 이야길 먼저 꺼내는 것은 정서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군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서는 이 '돈'쓰는 일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흔히 책으로만 배운 이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조직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직을 단순하게 보면 수장과 그 밑에 여러 파트를 그려 넣은 조직도 한 장에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조직을 움직이는 생리는 절대로 조직도에서 볼 수 없다. 이것을 간과한 수많은 장수들이 전쟁에서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가장 단순한 사실인 전투하는 병사들은 먹고 자는 사람이라는 것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굶주린 군인은 그 어떤 도적떼 보다 무섭다고 했다. 군인의 규율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적인 면도 있지만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든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 비누 한 장까지 모두 돈이 필요하고 한 두 명이 아닌 전체 장병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것이면 천 원짜리 품목이라도 금세 수억 원을 웃돌 수 있다. 걸프전쟁에서 미국의 함정에서 엄청나게 쏘아댔던 토마호크 미사일은 개당 가격이 5억 원을 넘는다. 미사일 두 발이면 강남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간다. 미군이 걸프전쟁 이후 17년간 발사한 토마호크 미사일은 2천 발가량으로, 그 비용만 수 조원이 들었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도 바로 '돈'이다. 미국은 한해 국방예산으로만 1,000조를 쓰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이른바 '천조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에 가까운 돈을 국방비로만 소비하면서 전 세계 국방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나라도 연간 40조 원을 넘는 돈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40조 면 그 돈의 크기가 쉽게 가늠이 가질 않는다. 이럴 때 단군 할아버지를 예로 들면 그 돈의 크기가 한 번에 이해가 된다.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건국해서 매달 2,000만 원씩 적금을 들면 오늘날 원금이 대략 1조 원쯤 된다. 그런 단군할아버지가 40명 정도는 있어야 한해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되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단군 할아버지가 매년 1,000명씩 필요한 셈이다.


너무 스케일이 큰 이야기만 하다 보니 현실감각이 조금 떨어질 수 있겠다. 다시 일선 부대 이야기로 돌아오면 우리 부서에 배정된 일 년 예산은 2,500만 원 정도였다. 웬만한 사람 일 년 연봉에 가까운 돈을 쓸 수 있었다. 아니 써야만 했다. 국가 예산이라는 게 참으로 웃긴 게 저금도 이월도 안되고 내년도 예산을 당겨서 쓰는 일도 불가하다. 처음 배정된 돈은 어떻게 해서든 다 써야 한다. 그러니 연말에 관공서에서 보도블록을 교체할 수밖에. 다 못쓰면 어떻게 되냐고? 내년도 예산이 깎인다. 딱 못쓴 만큼 깎이는 게 아니라 그 이상 깎인데. 이유는 필요치 않다. 그해 무슨 큰일이 있었든지 바쁜 일이 있었든지 실무자가 오랜 시간 공석이었든지 상관치 않고 예산을 남기면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고 내년도 예산 감축 통지서를 받아 들어야 한다. 


조직을 움직이는 피와 같은 돈을 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돈을 쓰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가 예산이기 때문에 돈을 착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가장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하면 예산을 쓰는 사람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갖은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소리다. 동네 문구에서 펜 한 자루를 사더라도 예산이 들어갔다면 지출내역과 목적 등의 서류를 작성해서 첨부해야 한다. 영수증은 당연히 포함되는 기본 서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예산 쓰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필요한 게 없어도 필요한 걸 만들어서 사야 하고 수많은 증빙서류가 필요해서 가급적 한번 인연을 맺은 업체랑 계속 거래하게 된다. 왜? 기본 서류를 설명하지 않아도 다 준비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산이라는 게 돈 2,000만 원을 그냥 알아서 써라 하고 손에 쉬어주는 게 아니라 2,000만 원을 사용할 항목을 하나 하나 정해놓았다. 비품 구입에 300백만 원, 문화사업에 500만 원, 기자재 유지 관리에 100만 원 하는 식이다. 만일 비품 구입 비용이 100만 원 모자란다고 해서 문화사업으로 책정된 돈을 끌어다 쓰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 목적대로 예산 사용을 하지 않으면 예산 유용이 되고 범죄다. 


예산 범위는 300만 원인데 301만 원의 기자재 구입이 필요하다고 해도 1만의 초과 결재도 할 수 없다. 지휘관의 특별 승인이 없는 한 무조건 예산 범위 내에서 사야 한다. 299만 9천 원 물건을 구입했을 경우 예산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1,000원을 반납할 수 없으니 1,000원짜리 물건을 또 사야 한다. 그냥 사는 행위만 이렇게 번거롭고 귀찮다. 


문제는 이 귀찮은 구매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예산 사용 계획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예산은 어떤 목적에 어디에 쓸 것인지. 그리고 왜 써야 하는지를 상관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기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라면 반기나 분기별로 결산보고로 대체할 순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건별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돈 쓰는 게 이리 어려울 줄이야. 남의 돈 쓰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뭐가 더 남았느냐 하면 예산을 정말 규정대로 잘 썼는지 정기적으로 상급부대에서 감사를 나온다. 감사관이 한번 나오면 대개 3년에서 5년 치 기록을 확인하는데 전임자들이 꼼꼼히 서류 처리를 하지 않은 경우 후임자들이 폭탄을 맞는다. 심하게는 몇백만 원을 자비로 손실을 메꿔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항변해 봐야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순간 내 책임이다. 아무리 업무 인수인계가 하이파이브 한 번으로 끝난다고 해도 말이다. 


장교로 복무하면 예산 사용 업무를 안 할 수 없다. 중대장이나 대대장, 사당장 같은 지휘관이 되면 예산이야 밑에 부하들이 처리하는 것이니 실제로 집행은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부하의 잘못된 사용에 대한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다. 내가 후보생 시절 예산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구도 실무적인 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고귀한 장교 양성과정에서 하찮은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을 유지하고 움직이는데 돈은 혈액처럼 중요하다. 그 책임도 이와 비례한다. 결코 가볍지 않다. 


예비 장교들이 임관하기 전 돈과 예산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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