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덟 번째 이야기. 진짜 사나이
가짜 사나이.
TV 예능 진짜 사나이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다. 예능의 영역이 확장 일로를 걷다 이제 군 울타리까지 넘어 들어왔다. 군에서 예능 웃음으로 소화될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과 너무도 다른 면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이끄는 듯하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 TV에서 나오는 상황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TV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군필자 미간에 자연스레 주름 지어진다. 진짜 사나이를 보던 개그맨 장동민의 멘트가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모르는 사람들은 다 군대가서 편지 쓰고 읽고 울고 하는 줄 알아. 저럴 시간이 어디 있어. 똥 쌀 시간도 없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TV에서 보는 군대 모습의 반이상은 가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군을 대상으로 TV에 나오는 모든 장면은 짜여있다. 전부 각색된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런 촬영팀을 상대하는 일도 바로 정훈장교의 업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수도권 인근에 있어서 촬영 요청이 제법 많았던 부대였다. KBS, MBC 드라마 제작국의 한국전쟁 기념 대하드라마 제작 지원 요청은 물론 MBC 예능국의 '일밤'촬영 요청까지 있었다. 드라마 제작은 당시 부대 훈련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었고 일밤 촬영은 실무협의까지 진행하다 MBC 측 사정으로 인해 종료되었다.
당시 주말 간판 예능인 일밤의 '오빠밴드'코너를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에 육군본부에서 우리 부대를 지정했고 내가 담당자로 국방홍보원에 관련자들과 미팅하기 위해 찾아갔다. 오빠밴드 출연진은 신동엽, 김구라, 서인영, 탁재훈으로 당시는 물론 지금도 손꼽히는 연예인들이었고 담당 PD는 신동엽의 와이프다. 국방홍보원에서 담당 PD와 작가들과 두어 차례 실무협의를 가졌는데 신동엽의 부인인 선 혜선 PD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스타일이었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지 아니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매우 사무적인 말투와 딱딱한 표정으로 협의사항을 확인했다.
당시 촬영 협조 요청의 범위는 야외 촬영을 위한 훈련장, 연예인들의 훈련 영상을 위한 별도 훈련 진행, 예능에 출연할 장병 선발, 생활관 견학 및 연예인 대기실과 스태프 대기실, 차량 출입 등 구체적이었다.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다양한 장면을 포함하고 싶은 욕심이야 이해하지만 요구가 너무 많았다. 그들의 요구 하나 하나가 내 하루 이상의 야근을 필요로 하는 협의 사항이었다. 야외 훈련장을 확보하려면 촬영 기간 내 훈련 계획 부대를 확인해서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연예인과 스태프의 대기실을 마련하려면 기존 병사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2개소를 비워줘야 한다. 생활관 2개를 비우면 대략 20-30명의 장병들이 잠잘 곳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말인데 부대 내 시설이 뻔한 상황에서 며칠씩 이어지는 촬영 기간 동안 이들이 지낼 곳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생활관 내 촬영까지 하려면 추가로 1개 생활관은 촬영에 적합하도록 준비해야 하고 그곳에서 촬영에 동원될 병사들을 선발해야 한다. 작가들은 어떠어떠한 사연을 가진 장병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한 조건도 제시했다. 전 장병의 사연을 알턱이 없으니 생활지도 기록부를 열고 지휘관들에게 물어 사연이 있는 병사를 찾아야 한다. 또 방송에서 잘못된 발언이 나가면 안 되기에 사전에 교육도 시켜야 한다. 적어도 1달의 야근 거리가 눈앞에서 논의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육군본부부터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모든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최조 3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어, PD님이 말씀하신 시간에 촬영을 시작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방송국에서 요구하는 시간까지 모든 걸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PD와 작가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만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밑에 부대들이 실제로 움직여줘야 하는 일인데. 평상시 임무도 아니기 때문에 예하부대들도 많은 준비시간을 필요로 했다. 담당 PD는 부대 사정은 잘 알겠으니 내부 회의를 좀 더 거친 후에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고. 그 이후 촬영 계획은 무산되었다.
TV에서 나오는 모든 군대 모습은 다 잘 짜인 각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갑작스럽게 튀는 행동이나 돌발상황도 모두 사전에 계획된 내용이다. 심지어 뉴스 인터뷰하는 장면도 그냥 흘러나가지 않는다. 인터뷰 대상 장병은 사전에 해서는 안 되는 말 또 해야 하는 말에 대해 교육받는다. 정훈장교가 멘트 하나하나를 점검한다. 현장에서 급박한 인터뷰로 인해 교육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담당 지휘관이 가장 똘똘한 친구를 지목해서 그가 인터뷰하도록 한다. 아무나 군을 대표해서 언론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언론에 나가는 순간 그들의 계급이 이등병이든 장군이든 상관없이 군 전체의 목소리가 되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채 10초가 되지 않는 짧은 뉴스 인터뷰가 이럴진대 예능이면 오죽할까.
군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다. 설령 작가나 PD가 군의 다른 모습에 대한 촬영을 요청한다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그리고 혹여 사전 허가되지 않은 내용을 담아 방송에 내보내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방송에 나갈 영상은 군사보안을 이유로 사전 점검까지 받는다. 이렇다 보니 일반 예능에서 나오는 모습들이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군대 촬영과 관련해서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주인공은 범죄와의 전쟁을 찍은 윤종빈 감독. 당시 촬영은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전설적인 영화다. 제목은 '용서받지 못한 자'. 하정우가 주연한 이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군대에서 이걸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모든 영화 배경이 군대이니 말이다. 당시 윤종빈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촬영을 해야 하기에 사전에 국방부에 접촉했다. 군대에 대한 좋은 면을 부각하는 시나리오를 들고서. 국방부는 이를 허가했고 윤종빈 감독은 학교 선배 하정우를 캐스팅해서 영화를 찍었다. 물론 국방부에 낼 영상은 실제 작품과 별개로 촬영했다.
그렇게 국방부는 전혀 모르게 촬영된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그 주제는 군대 내 가혹행위와 자살. 매우 민감한 주제고 국방부에서 절대 이내용이면 허가하지 않았을 테지만 감독의 교묘한 이중 촬영으로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세간에 화제가 되자 국방부가 정식으로 윤종빈 감독의 학교에 문제를 제기했고 사과를 받았다는 후문까지 들리울 정도다.
다시, 가짜 사나이 아니 진짜 사나이로 되돌아 가면 예능 중간중간 재미있는 모습 그리고 감동을 주기 위해 많은 이벤트를 넣어놨다. 이것만 믿고서 군대를 가면 속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밖에서 보면 전혀 모르겠지만 군대 내부는 정말 바쁘다. 특히나 훈련을 받는 훈련병의 경우는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군의 하루는 정확한 시간 계획표대로 움직인다. 기상나팔 소리 이후 30분 안에 침구정리, 개인정비, 주변 정돈, 전투복 환복 등을 신속히 마치고 아침 점호 집합해야 한다. 100명, 200명씩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화장실은 언제나 만석이다. 아침에 장운동이 활발해서 변기를 차지하고 속을 비우는데 10분 이상 허비할 수도 없다. 세수, 면도, 양치질에 로션까지 바르는 건 아침에 사치일 수 있다. 자고 난 침상 정리하고 옷 갈아 입고 얼굴에 대충 물만 찍어 잠을 달아나게 하고선 소변 한번 보면 바로 점호 집합하러 나가야 한다.
아침 점호와 구보(뜀걸음)를 마치면 식사를 하러 이동하고 식사 후엔 다시 생활관에 돌아와 학과 출장 준비를 해야 한다. 화장실 같은 생리현상은 그 틈틈을 이용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 많지 않은 변기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뭐든 재빠르고 신속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런 군대에서 진짜 사나이처럼 편지도 쓰고 읽어주고 울고 하는 모습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TV에서 보았던 군대 모습만 보고서 장교의 길을 선택하려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군대는 예능에서 보이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군은 전투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