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곱 번째 이야기. 장교가 되는 방법
우리나라에서 장교가 되는 방법?
'학군장교냐? 몇 기냐?'
군 생활을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군 내에서는 여러 출신의 장교들이 모여있다. 그래서 서로 출신을 많이 따지는 편이다. 참 신기한 게 같은 출신끼리는 기가 막히게 상대방을 알아본다. 나도 지나가는 장교들을 보면 대충 학군장교다 학사장교다 느낌으로 때려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레 갖게 되었다. 어떤 점으로 구분할 수 있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답하기는 어렵다. 그냥 다년간의 경험, 달리 말하면 감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계급장이 달린 전투복을 입고 외부 활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ROTC냐?' 아니면 '학사장교냐?'로 묻는 일이 많다. '학군장교입니다.'로 대답하면 학군장교가 뭐냐고 다시 묻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사람들은 ROTC와 학사장교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학군장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생소하다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또 재미있는 것이 군에서는 ROTC라는 말 대신 학군장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밖에서는 학군장교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ROTC로 통용된다.
학군장교과 학사장교도 이리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데 다른 장교 출신을 다 망라하면 구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출신별로 구분되어 있는 장교가 되는 방법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군인이 아닌 경우 아니 정확히는 장교로 복무하지 않은 경우에 장교 출신 구분에 많이들 어려워한다. 또 장교가 되는 루트는 육군사관학교 아니면 학사장교 정도만 알고 있는 경우다 대다수다. 그래서 학사장교과 학군장교의 차이와 장교가 되기 위한 여러 방법을 한번 소개해 볼까 한다. 물론 육군 기준이다.
○ 육군 사관학교
두말이 필요 없는 장교 양성과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관학교 하면 바로 육사를 떠올릴 정도로 엘리트 장교 양성기관이다. 과거부터 정권의 실세를 배출하였기에 그 위상은 다른 어떤 기관과 비교하기 어렵다. 하늘의 새도 떨어뜨리는 군사 독재 시절, 당시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 박지만을 서울대가 아닌 육사에 입학시킨 것만 봐도 당시 육사가 갖는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육사 출신들이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는 등의 얼룩진 과거도 있고, 김영삼 정권 때 군내 육사 장교 사조직인 하나회가 철퇴를 맞는 등 크고 작은 잡음이 있지만 여전히 군을 좌지우지하는 핵심임에는 변함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장교가 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바로 입학해 졸업과 동시에 소위 임관을 해서 직업군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육사가 주는 특전이라 하면 4년간 전액 무상교육, 품의 유지비 지급, 피복 및 숙식 제공, 임관하면 직업군인으로서의 창창한 미래를 꼽을 수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이렇게 혜택이 있으면 반대로 포기해야 할 반대급부도 크다. 일단 임관하면 10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일반 병의 6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나라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 키운 인재이기 때문에 임의 전역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년 차에 전역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심사를 통과해야 가능한 일이라 그 수가 극히 적다.
다른 단점으로는 대학생활을 경험할 수 없다. 입시지옥을 벗어나자마자 군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인생에서 낭만을 느껴볼 기회가 없다. 물론 육사에서도 나름의 즐거운 생활은 있겠지만 성인이면 누릴 수 있는 음주, 결혼, 흡연이 3 금이라고 해서 금지되고 있다. 가끔씩 뉴스에서 3금 위반으로 퇴학조치를 당한 생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기한 건 흡연을 못하게 하는데 언제 배웠는지 군에 오면 자연스레 담배를 피운다.)
자신의 미래를 고등학교 때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한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기회비용이 크다. 하지만 그 기회비용을 감내하고 얻을 수 있는 과실도 크다.
○ 3 사관학교
흔히 3사라고 불리는 또 다른 사관학교다. 육사와 동일하게 사관학교로 분류되지만 육사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본교와 분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군 내에서도 그 위상에 많은 차이가 있다. 입학 조건으로는 전문대학 졸업 또는 4년제 대학 2학년 이상의 수료를 요구한다. 3사에 합격하게 되면 편입학으로 처리되어 3 사관학교 졸업장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그리고 6년 의무복무 기간을 채워야 한다.
3사의 역사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자면 예전엔 제1사관학교, 제2사관학교 , 제3 사관학교가 모두 존재했었다. 육사가 제1사관학교 개념이었다. 4년 정규과정이 아닌 2년 미만 과정으로 운영하는 특성으로 인해 흔히 단기 사관학교라고 불리기도 했다. 3 사관학교가 규모가 커지고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는 2사관/3사관학교를 따로 운영할 필요가 적어 3 사관학교로 통합되었다. 창설 초기에는 육사처럼 고등학교 졸업생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편입학 개념으로만 생도를 충원하고 있다. 육사와 더불어 유이하게 '생도' 타이틀로 불릴 수 있는 장교 양성과정이다.
○ 학군사관
학군사관 다른 말로 ROTC다. 군 내부에서는 흔히 학군장교로 통칭된다. 학군사관은 미국에서 유래한 제도로 한국전쟁 이후 초급장교 양성이 지상과제였던 한국군이 이를 받아들여 발전시켜 왔다. 학군사관(ROTC)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복무기간이다. 병사보다는 길지만 어느 장교 과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기 복무가 가능하다. 2년 4개월이 지나면 사회로 돌아올 수 있다. 또 본인의 선택에 따라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고 군인의 길을 계속 걸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선택이 가능하다.
군에서는 육사 바로 다음의 지위를 차지한다. 뭐 바로 다음이라고 해봐야 군에서 육사가 갖는 위치가 넘사벽이라 같이 경쟁할 정도는 아니다. '장교는 출신과 비 출신으로 구분된다.'라는 군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육사 출신이 아닌 모든 장교는 비 출신으로 구분된다. 육사가 아니고서야 군인으로 성공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군장교는 군인과 민간인으로의 선택이 가능하고, 육사 이상의 학벌을 자랑하는 장교도 군내 많이 분포되어 있을뿐더러 직접적인 인원수가 가장 많기 때문에 항상 군 내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학군사관은 생도가 아닌 후보생으로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생도'는 일본어 느낌이 강해서 후보생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생도는 일본어로 학생의 의미다.) 후보생은 일반인에게 생도보다는 낯선 단어이다. 하지만 경찰이나 소방간부를 교육하는 기관에서도 이들을 경찰간부후보생 또는 소방간부후보생으로 부른다. 생도보다는 더 폭넓게 쓰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후보생에 대해 조금 더 살을 붙여보다면 후보생은 영어로 카데트(Cadet)라고 한다. 불어로도 똑같다. 어원은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세 귀족 집안에서 장남은 가업을 물려받고 차남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많은 귀족의 차남들이 기사단에 입단해서 스스로의 지위를 높였는데 귀족 태생의 기사단원을 부르는 말이 바로 카데트였다. 이후 군을 이끄는 장교 후보생들을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ROTC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서 나온다. 대학생활과 군 장교의 길을 모두 경험하고 선택할 수 있지만 두 개다 온전히 가질 수는 없다. 대학생활도 매번 방학이면 2주에서 4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학기 중에는 군사학 이론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반은 학생이고 반은 군인인 셈이다. 국방부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같은 일은 따로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또한 학교생활 내내 후보생이라는 불안한 지위로 인해 올바른 몸가짐을 갖춰야 한다. 염색이나 문신 같은 행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임관해서도 선택권은 장단점으로 계속 따라온다. 2년 4개월 이후 바로 사회로 나갈 수도 있고, 일정기간 복무를 연장해서 사회로 진출할 준비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장기복무를 신청해서 군인으로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육사와 달리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손에 있다. 하지만 군에 남는 경우 육사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진급의 경우 100명을 진급 T/O가 생긴다면 육사가 70을 가져가고 나머지 30을 비 출신들이 경쟁하는 구조다. 이러니 출신의 설움(?)을 느끼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 정점에 선 많은 학군장교 선배들이 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결과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 학사사관
ROTC와 많이 혼동하는 바로 그 장교 양성과정이다. 학사장교와 학군장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교생활 중에 군사교육을 받느냐 여부다. 학군장교는 학교생활과 군사교육을 병행하는 반면 학사장교는 모든 군사교육이 졸업 이후에 이뤄진다. 약 4개월의 훈련 이후 소위로 임관할 수 있고 임관 후 3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채워야 한다. 학사장교 대부분은 단기복무를 하지만 일부는 군에 남아 뜻을 펼친다. 하지만 군에서 학사장교가 갖는 위치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진급률도 다른 장교 양성과정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 장성까지 오른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라 군에 남아서 뜻을 펼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초급장교 시절에 겪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는 다른 출신 장교와 비교해서 늦은 임관이다. 졸업 이후 훈련을 거쳐 임관하기 때문에 하반기에 부대에 전입하게 된다. 그러면 같은 해에 임관했음에도 육사나 3사 그리고 학군장교보다 6개월이 느리다. 항상 후배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대위 정도는 돼야 6개월의 차이가 희석되는데 중/소위 초급간부 시절엔 경례 스트레스가 상당할 수 있다.
○ 간부사관
간부사관은 병이나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1년 이상의 군생활을 한 경우 지원 가능하다. 군 생활의 전제가 없으면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진입 장벽이 높다. 그리고 지원 요건이 전문대학교 졸업 또는 4년제 대학의 2학년 이상 수료로 3 사관학교와 동일하다. 그러나 의무복무 기간으로 따지만 그 절반인 3년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3 사관학교도 지원 가능하기 때문에 군에서 본인의 역량을 펼칠 장기복무를 꿈꾼다면 당연히 3 사관학교를 지원하는 게 맞다. 3 사관학교처럼 다시 2년간 생도생활 등 추가적인 시간 소요 없이 장교의 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인원에게 적합한 장교 양성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대개 간부사관의 경우 병사 생활을 한 인원이 대부분으로 일반 병사들을 이해하는 수준이 다른 장교 출신보다 월등히 높아 초급장교 때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다만 학사장교과 마찬가지로 군에 남아서 자기의 뜻을 펼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다시 사회에 나오더라도 공부를 계속해서 학위를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진출에 더딜 수밖에 없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간부사관으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선배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군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3사 지원자격과 동일하기 때문에 장교로 뜻을 펼치기 원한다면 구태여 간부사관을 지원할 이유도 없다. 여러모로 중간에 끼인(?) 처지다.
○ 군 장학생
군 장학생은 별도 장교 양성과정이라기보다는 학사장교에 가깝다. 군에서 우수한 인력의 조기 확보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대신 등록금을 지원받은 년수대로 의무복무 기간이 늘어난다. 군장학생으로 4년 등록금을 지원받고 학사장교로 임관하면 학사장교 3년에 4년을 더해 7년간 의무복무해야 한다. 군장학생이 ROTC를 지원할 수도 있는데 이경우엔 학군장교 2년 4개월에 4년을 더해 6년 4개월을 복무해야 한다. 장교가 꿈인데 육사를 가기엔 성적이 부족했고 3사를 가기엔 대학생활을 더 경험해 보고 싶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등록금은 100% 지원이며 장학금은 받으면 차액을 용돈으로 쓸 수 있다. 어차피 군생활을 한다면 등록금 지원에 장기 복무 우선선발 등 많은 혜택이 있어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단기복무가 목표라면 서른 살에 사회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큰 코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