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섯 번째 이야기. 어느 정신교육 (2부)
문 00 군을 사단장 접견실에 안내하고 전투복 윗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 신문기사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장병들이 군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사단장의 생각은 쉬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가 선명하면 오히려 교육 효과는 떨어진다. 그래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적관 정신교육'이 인기가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북한은 나쁜 놈이다'로 시작해서 마무리도 '그래서 북한은 나쁜 놈이다'로 끝나는 교육이 주입식 반복 말고는 무슨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반감이나 갖지 않으면 다행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특히 예비군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교육은 교육 대상자 8할이 잠을 자는 의미 없는 시간으로 흐르기 일쑤이다.
초빙강사를 짧게 만나고 나니 느끼는 문제점이 몇 가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째는 강사가 군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서 군과 관련된 연결고리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또래 친구들인 병사들을 앉혀놓고 공감대를 설정하기도,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마치 또래 나이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문학작가 지망생들을 앉혀놓고 강의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둘째는 강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아이들 교육이 아닌 성인교육에서는 강사의 자질이 큰 능력을 발휘한다. 성인 대상 교육이 어려운 것인 이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나 군 장병들은 수동적으로 강연에 모인 청중이니 만큼 그 거부감은 어느 집단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호응 같은걸 기대하는 건 사치일 정도. 오히려 교육 간 졸지 않는 것만 해도 크게 칭찬할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강사 경력이 전무한 어린 친구가 강단 앞에 서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 너무 걱정이었다.
셋째는 위의 두 문제가 합쳐져 생기는 변수였다. 군대를 전혀 모르는 친구가 강사로 훈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강단에 오르면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나오기 쉽다. 밖에서 들었던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마이크를 통해 쏟아낸다던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인 마냥 말한다던지 하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초보 강사가 연단에 오르더니 농담으로 '국회에 싸움꾼이 많다는 이야기에 많이 긴장하고 왔습니다. 강의가 부족해도 장난으로라도 때리시면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면 그 강연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남들 앞에 서본 일이 없는 초보강사들이 왕왕하는 실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사단장실 CP병에게 믹스커피 한잔을 요청했다. CP병은 커피 두 잔을 나와서 나와 마주한 테이블에 나란히 놓고 자리에 앉았다.
"정훈장교님. 사단장님실에 들어간 저 친구는 누구입니까?"
"이번 정신교육 강사야. 근데 잘할지 모르겠다."
CP병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뭔 내용으로 강의를 합니까?"
"두 팔이 없는 상태에서도 발로 워드 1급을 땄데. 그런 정신자세를 교육시키고 싶으신가 봐. 너가 보기에는 애들이 좋아할 거 같아? 나는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누가 오든 무슨 상관입니까. 정훈장교님. 어차피 다 졸고 있을 테지 말입니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누가 오든 어차피 장병들의 기대치는 낮으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겠지.' 하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았다. 종이컵의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 즈음 초빙강사인 문 군이 사단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말씀 잘 나누셨습니까? 그럼 강의 준비위해 잠시 제 사무실로 함께 이동하시죠."
사단장실이 있는 본청에서 멀지 않은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 소파에 잠시 앉아서 오늘의 교육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다.
"오늘 교육 내용을 미리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문 군을 강사로 초빙하기 위해서 참모는 문 군이 다니는 학교에 연락을 취했고 학교 담당 교수가 좋은 기회라며 적극 지지해 주셨다. 그리고 강의 준비는 미리 다 해서 출발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하였기에 바로 문 군에게 강의 주제를 확인을 요청했다.
문 군은 품에서 길지 않은 오른팔로 두장의 A4 용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워드로 작성된 두 장의 종이엔 자신이 두 팔을 잃게 된 사연과 다시금 삶의 의지를 갖게 된 이유 그리고 장병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무릇 강사가 갖춰야 할 가장 근본은 말하기 스킬도 경력도 아닌 이야기가 핵심 아니던가. 앞에서 했던 모든 걱정이 일순 해소되었다.
손대신 발로써 한 자 한 자 적어온 강연 내용은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 역경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였다.
문 군은 10살 남짓한 어릴 적 밖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왔고 비를 피할 곳을 찾다 문이 열려있는 작은 창고로 향했다. 젖은 옷을 손으로 쥐어짜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크고 동그란 파이프 관이 널려 있었고 여기저기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건물의 전기를 관장하는 변전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더듬어 보는 순간 온몸에 불이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새하얀 천정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움직이는 게 여의치 않았지만 겨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고 아버지는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셨다. 천정을 지나 발끝으로 그리고 가슴까지 시선을 옮기던 중 배꼽 근처에서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려 했는데 눈을 비벼줄 양 손이 세상에 없었다. 감전으로 인해 양손이 절단된 상태였다. 그렇게 10살의 나이로 중증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장애는 큰 충격이었으리라. 한창 뛰어놀 나이에 두 팔이 없다는 사실은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자 슬픔이다. 오랜 치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길로 방황이 시작됐다. 가출로 시작된 방황은 자살기도로 까지 이어졌다. 그를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 이는 어머니였다. 아들에게 희망을 가르치기 위해 말이 아닌 스스로 도전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 군도 차츰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마음을 열었고 삶의 목표를 다시 갖게 되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신학교에 진학했고 워드 자격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지체 장애인이 1급 자격을 취득하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두 손이 아닌 두발로 말이다.
진심은 통한다 하지 않았나. 또래 친구의 장애 극복의 이야기는 분명 울림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라 너무 떨지 말고 적어온 대로만 읽어 내려가면 잘 마무리될 거라 안심을 시키고 정신교육 장소로 향했다. 오늘 계획된 교육은 모두 2차례이다. 강연장 뒤에서 미리 세팅해둔 카메라에 녹화 버튼을 누르고 자리를 잡았다. 강단에 선 문 군이 떨리는 건 카메라를 통하지 않더라도 보였다. 과연 잘 해낼까. 걱정이 믿음을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 약속했던 내용에서 벗어나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지금 군대에 와있어서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복 받은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곳이거든요. 아! 전쟁이 나면 저희 같은 장애인도 군대에 온다고는 해요. 총알받이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던데요. 하하."
[망했다]는 말 외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재빨리 뒤에서 문 군을 응시하면서 발언을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내 눈치를 읽은 문 군은 잠시 정적에 휩싸이더니 이내 처음 준비했던 강연 주제로 돌아갔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는 첫 번째 강연이 끝났다. 장병들을 각자 부대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에 정정 안내를 더했다.
"앞에서 강사가 이야기했던 말은 그들 사이에 농담 삼아 도는 이야기를 웃자고 한 말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전시에 예비군 편성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장애가 있는 이들은 다 찾아다가 부대로 모으는 일은 불가능하거니와 그 목적도 현대 전쟁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니 이를 진실로 받아들여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착석한 자리 주변 정리하고 인솔간부 지시에 따라 부대로 복귀합니다."
다음 강연까지 30분 정도 준비시간 동안 강연을 마치고 내려온 문 군에게 주의를 줬다.
"장애우들 사이에서 농담 삼아 도는 말을 강단에서 하는 순간 그 이야기는 농담이 아닌 군의 정식 의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사전에 협의되었거나 확인된 사항이 아닌 내용은 말씀을 삼가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교육 대상 부대가 당도했다. 순식간에 자리에 착석해서 강사를 기다렸다. 문 군은 아까 나의 주의 때문인지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다시 강단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아까와 같은 실언은 없었다. 두 번째 강연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이었다.
비록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초빙강연은 무사히 마쳤고 참모의 환송으로 문 군을 다시 역으로 배웅했다.
"오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급히 준비하셨을 텐데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장병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문 군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에 화답하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던 오늘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여러분, 제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바로 상담입니다. 두 팔을 잃고 힘들었을 당시 상담을 통해 많은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 있어 주변 친구들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상담을 하면 초보 상담자가 가장 쉽게 하는 실수가 뭔지 아세요?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초보 상담자는 상대방의 고민을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훈수를 두거나 아니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상담을 더 많이 하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바로 상담을 신청하는 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할 뿐이죠. 자신이 알고 있는 해결책에 대한 확신을 더하고 싶어 상담자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상담자가 할 일은 잘 들어주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고민의 정답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고민의 답을 멀리서 찾지 마세요.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정답이니까 자신감을 갖고 실행하시면 됩니다. 두 팔이 없는 저도 열심히 살다 보니 이렇게 앞에 나와서 강연할 일도 생기는데 군대에 올 정도로 건강한 여러분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