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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Jan 28.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어느 정신교육(1부)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어느 정신교육 (1부)

나는 정훈장교로 복무했다. 군대를 들어가기 전에는 '정훈'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처럼 정훈장교가 낯선 이들은 영화 '애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 정훈장교의 임무와 역할이 이해가 갈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 드로(자이체프 역)의 활약상을 조셉 파인즈(다닐로프 역)가 선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부 영화 평론에서는 이른 선전장교라고도 하는데 올바르게 번역하는 것은 정훈장교가 맞다. 

 조셉 파인즈는 주 드로의 용맹함을 아군에게 알리고 교육하면서 사기를 높이면서 적군에게는 아군의 뛰어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전의를 상실케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종종 주 드로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정의롭고 옳은 일임을 일깨워주는 정신적 교사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정훈'이라는 말은 정치훈련의 줄임말이다. 영화를 한번 본다면 정치훈련이 과연 어떤 것인지 한 번에 감을 잡을 수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한번 꺼내 보았다. 한국전쟁에서도 정훈장교들은 대북방송, 선전물, 이념과 사상교육 등을 통해서 국군의 정신전력을 무장하고 적군의 전투의지를 꺾는데 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전투병과처럼 전과가 쉽게 드러나는 직무도 아니고 그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아서 여전히 낯선 군대의 한 조직이기도 하다.


전쟁이 있지 않는 이상 정훈장교는 아군의 정신전력 증강을 위해서 힘을 쓴다. 쉽게 말하면 정신교육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말이 좋아 정신교육이지. 항상 피곤한 장병들을 두 시간씩 강당에 앉혀놓고 교육을 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은 인지상정. 교육효과는 글쎄올시다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영상 교보재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긴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콘텐츠가 갖는 이야기의 힘이다. 


군대라도 매번 꺼내놓는 콘텐츠가 '대적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매번 같은 주제를 다루면 더 이상 교육이 아닌 잔소리가 되어 버린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장병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교육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군대 말로 하면 '평시 전투력 보전을 통한 전시 작전능력 확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즉, 사고 안치고 부대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전시에 장병들이 100% 능력을 발휘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대에서 자기 계발이라든지 건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세라든지 또는 앞으로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도 많이 포함시킨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탈영병 이야기도 바로 그런 정신교육의 일환이었다. 


지휘관은 정신교육에 많이 공을 들인다. 내가 군생활에서 모셨던 세 분의 사단장도 이상하리 만치 정신교육에 집착(?)했다. 지휘관이 정신교육에 관심이 많으면 정훈장교는 피곤하다. 강사 선정부터 사단장 입맛에 맞는 외부 인사를 물색해야 돼서 여간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날은 사단장이 정훈참모를 호출해서 스크랩한 신문기사를 손에 쥐어 내려보냈다. 참모는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인상을 가득 찌푸리면서 나에게 전했다.


"아니 뭐 정신교육을 아무나 데려다가 하라고 하시나. 답답하네 정말."

뭐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고 하지 않았나. 참모는 신나게 사단장 욕을 하더니 참모실로 들어가 버렸다. 참모가 건네준 신문은 중앙일보의 한 단신기사였다. 


[두 발로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땄어요.]
두 팔이 없는 1급 지체장애인 문00 씨가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땄다. 엄지·새끼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문 씨는 “친구들로부터 ‘뒤늦게 자격증 딴 게 무슨 자랑거리냐’고 오히려 책망을 받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워드 1급은 사무 정보화에 관련된 전반적인 지식을 묻는 필기시험과 실기 테스트로 이뤄져 있다. 실기 테스트는 30분간 실제 문서작성 능력을 평가한다. 응시하려면 분당 200타 이상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양손을 쓰는 일반인도 합격률이 30~40%에 불과할 정도로 쉽지 않은 시험이다. 문 씨는 올해 3월 첫 도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른 시험에서 합격증을 받았다.


처음 기사를 읽고선 그냥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두 팔이 멀쩡한 나도 아직 못 딴 자격증을 발로만 따다니. 속된 말로 '발로 해도 너보다는 낫다'라를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왜 갑자기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가서 참모실 문을 두드렸다.


"참모님, 이 신문기사를 정신교육 내용에 포함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걔를 정신교육 강사로 초빙하래. 강사를 한번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을 불러다가 무슨 정신교육을 시킨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사단장을 향한 참모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우선 제가 이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 연락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건 참모가 할 테니까, 정신교육 계획 보고부터 작성해서 가지고와."


참모의 짜증 섞인 지시를 받고 나서 다시 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참 계획 보고를 작성하고 있는데 옆 사무실에 근무하는 부관참모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야, 너 사단장이 말한 그 정신교육 준비하고 있냐?"

부관참모는 우리 참모와 동기 군번으로 장난기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 작성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사는 왜 이 친구로 정해진 겁니까?"

보통의 정기 정신교육은 전역한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에서 추천하는 인물들 중에 한 명으로 선정하거나 인근 부대에서 반응이 좋았던 외부 전문강사를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강사 경력이 없는 일반인 더욱이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를 강사로 선정해서 교육한 전례가 있을까 싶은 일이었다. 


"아, 그거. 사단장이 오전에 신문 보다가 장애가 있어도 일반 사람도 쉽게 할 수 없는 자격증을 취득한 거에 감동했대. 이런 모습을 장병들이 군생활에서 본받아야 한다나. 뭐 그렇게 해서 너네 쪽으로 일이 떨어진 거야. 잘해봐."

부관참모는 그저 놀리려고 사무실에 들어왔던 것 같았다. 오전 지휘부 회의인 상황보고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참모는 거기서 몇 마디 대꾸했다가 싫은 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배경을 좀 알 수나 있었으니 보고서 작성에 어려움은 많이 해소가 되었다. 다행스럽게 이번 정신교육은 저번의 탈영병과 달리 정기성 초빙강연으로 초빙강사만 정하면 될 일이었다. 초빙강사 선정 이유도 알았으니 보고서 작성은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초빙강연 날짜가 확정되고 강사인 그 친구는 부대 인근 역까지 왔고, 나는 1/4톤 지프차를 타고 그를 데리러 아니 모시러 갔다. 

"문 00 학생 맞으십니까? 반갑습니다. 차에 타십시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서 함께 차를 타고 부대로 향했다. 거친 도로면을 지날 때 힘없이 흔들리는 양팔의 소매가 눈길을 끌었다. 팔꿈치 위쪽에만 조그만 팔의 형태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부대에 도착하면 잠시 사단장님 환담을 가진 후에 저희 사무실에서 초빙강연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드릴 예정입니다. 오늘 일정 관련해서 궁금한 건 언제든 좋으니 이야기하십시오." 적막함을 깨고 싶어 간단한 일정을 이야기했다. 

"제가 남들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잘할지 모르겠네요... 궁금한 게 생기면 이야기할게요."

숫기가 없이 의기소침한 초빙강사의 모습에 덜컥 오늘 정신교육 진행에 대한 걱정이 몰려왔다. 차는 오래 달리지 않고 부대에 도착했다. 위병소를 통과할 때 그의 눈빛이 매우 이채로웠다. '나는 군대가 처음이에요'가 얼굴에 온통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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