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네 번째 이야기. 나의 ROTC 지원기 그리고 ROTC의 유래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ROTC가 뭔지 전혀 몰랐다. 사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언젠가 군대에 가겠지’라는 생각만 있었지 ‘언제 어떻게 가야겠다’라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군 입대에 대한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대학 1학년, 새내기 시절을 채 즐기기도 전에 같이 입학한 동기 하나가 입영을 위한 휴학계를 제출하면서부터였다.
"무슨 군대를 이렇게 빨리 가? 일 학년은 마치고 가지."
"어차피 갈 건데 빨리 다녀와야지"
정말 그 동기는 벚꽃이 필 무렵 훈련소에 입소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자 먼저 간 동기를 뒤이어 다른 남자 동기들이 줄줄이 입영을 택했다. 입영을 하지 않은 이들은 휴학을 신청했다. 2학기가 되니 남학생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모두 입영날짜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군대에 대한 계획이 없던 이들도 주변에서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하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 무렵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도 술자리에 머리를 밀고 나타나서 2년 뒤를 기약했다. 나도 선택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스무 살 평생에 군대에 대해 고민했던 적은 고3 시절 친구들과 사관학교 지원 안내책자와 팸플릿을 반 친구들끼리 돌려보며 서로 군대 가라고 등 떠밀었던 일이 전부였다. 그런 농담을 한지 단 1년 만에 군에 갈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집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가족 중 일반적인(?)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버지는 예전 육방이라고 불렸던 6개월 방위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군대에 대한 말씀을 거의 안 하셨던 것 같다. 나와 두 살 터울인 형은 일반 병사로 102 보충대에 입소했다. 하지만 국방부와의 인연 없음을 증명하듯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의무경찰은 지원이지만 전투경찰을 차출이다.) 순식간에 소속이 국방부에서 행정안전부로 바뀌었고 훈련소를 퇴소하고 경찰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멀리 밀양으로 배치받아 군 생활(아니 경찰생활)을 했다. 형이 갖고 있는 군대 기억이라곤 훈련소 몇 주의 시간이 전부다.
가장 가까운 가족 중에 아무도 군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다 보니 입대에 관한 별다른 조언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군대는 빨리 다녀오는 게 좋다.’ 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울 때는 가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처럼 군대 문턱을 밟지 않은 이들도 쉬이 할 수 있는 말이 다었다.
친척들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형과 내가 남자 사촌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군대에 대해 말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은 친척 어른들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들은 셋을 두셨는데 큰아버지는 공수부대 취사병으로 복무했고 아버지는 6개월 방위, 작은 아버지도 방위였다.(거의 지구방위대다.) 예전엔 징집 대상자들이 너무 많아 현역 판정률이 50~60%선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위가 많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장교로 군대를 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둘째 외삼촌 덕분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학사장교로 임관해 포대장으로 근무했다. 명절날 외갓집에 가면 현관에 멋들어진 모형 총으로 장식된 액자에 ‘포대장님 전역 기념’이라고 쓰여있었다. 어릴 적엔 뭔지 모르고 삼촌이 군대에서 높은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 삼촌이 학사장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창 군 입대 문제로 고민할 때 외삼촌께 ROTC에 대한 고민 상담을 부탁드렸는데 아리송한 대답만 하셨다.
“나는 학사장교기 때문에 ROTC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현직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삼촌은 학생들로부터 난처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답해주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학사장교와 ROTC는 엄연히 다른 과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직접적인 조언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삼촌이 대학 때 ROTC를 지원했다가 낙방해서 학사장교를 가서 아무래도 말하기 어려웠을 거란 귀띔을 해주셨다. 말씀하시기 곤란하셨을 문제를 괜스레 내가 물어본 모양이 되었으니 두루뭉술 대답해 주셨나 보다.
당최 주변에 ROTC 장교에 대해 물어볼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니. ROTC 출신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수만 해도 20만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들인 줄 전혀 몰랐다. 이 생각을 하니 ROTC 후보생 시절 당시 학군단장님이 ROTC 출신 사위를 맞아하기가 이처럼 어려울 줄 몰랐다는 푸념이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 ROTC 장교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찾았다. 시중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ROTC 선배 장교들의 경험담을 담은 도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ROTC' 제목으로 검색되는 책은 ROTC 시험문제집이 전부였다. 간혹 볼 수 있는 건 군생활 30년 이상을 하신 장성들이 자신의 예편을 기념하면서 쓴 자랑 가득한 자서전 정도였다. 마치 수능시험 문제집만 가득하고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든 것과 같다고나 할까. 모든 영역이 미지의 세계였다.
이미 군 생활을 마친 예비역에게 장교에 대해 물으면 입을 모아 욕을 하기 바빴다. 아무것도 모르는 쏘가리들이네, 군에 가면 병장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애들이네, ROTC는 로터리 오뎅 떡볶이 클럽 줄임말이네, 군대도 안 간 것들이 군인 흉내만 내고 있네 등등 무수히 많은 비난과 놀림을 서슴지(?) 않는다. 당시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왜 그렇게 ROTC를 싫어하고 미워했는지 이유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힘든 군생활에서 나이는 불과 불과 한 두 살 정도밖에 차이자니 않거나 간혹 더 어린 이들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이리가라, 저것 해라” 명령을 하는데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요즘엔 70~80년대와 달리 대부분이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들어오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ROTC 장교에 대한 환상도 적을뿐더러 입대하기 전 일반 병사가 아닌 ROTC를 선택했더라면 자신이 지금의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ROTC에 대해 그 유래부터 이제 설명해 보려고 한다. ROTC는 본래 미국에서 온 제도다. 뭐 ROTC가 영어이니 미국 제도가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수 있겠다. ROTC를 풀어쓰면 Reserve Officers’ Training Coprs로 '예비역 장교 훈련단'으로 직역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역 장교 양성 기관인 학군단으로 대변되는 ROTC가 예비역 장교 훈련단이라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아이러니는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게 되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ROTC 제도의 목표는 초급장교 양성으로 다르지 않다. 군에서 허리 역할을 담당하면서 가장 앞에서 전투를 이끄는 초급장교는 군대에 필수적이다. 특히나 전시에는 전투 일선에 있는 초급장교들의 희생이 가장 클 수밖에 없어 더 많은 인재 POOL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갑종장교, 육군종합학교, 호국군사학교 등 많은 장교 양성기관을 설립하여 초급장교를 대량으로 육성했다. 이후 안정된 기반을 갖춰가자 장교 양성과정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면서 지금의 틀을 갖추었다.
미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이고 지구 상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 이기도하다. 그러나 모병제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필요한 인원만큼 인력 수급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즉각 활용 가능한 장교 인력 Pool을 만들 필요성이 생겼고 각 대학에 학군단을 설치하는 것으로 그 해법을 찾았다. 미국의 ROTC들도 학업과 군사교육을 병행하고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그 차이는 교육성적이 우수힌 일부만 군에 남을 수 있고 90% 이상의 대다수 이들은 소위임관과 동시에 전역하고 예비역으로 편성된다. 그리고 나라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일반인과 다름없이 지낸다. 이들은 보통사람과 같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다가 전시에 소집되는 예비군 장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면 군에 남는 이들은 최고 엘리트 대우를 받으며 커리어를 쌓게 되는데 제임스 매티스나 도널즈 럼즈펠드, 콜린 파월 처럼 군에서 최고 정점을 찍고 백악관에 입성할 정도로 창창한 앞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미국 답게 상당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한국에 적용하려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미국처럼 일부만 현역 복무를 하고 나머지는 예비역으로 운영할 경우 예비역으로 편입되는 이들은 실질적으로 군 면제를 받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일부러 성적을 낮춰서 예비역 편입을 노리는(?) 이들로 인해 병역의무에 대한 원칙이 훼손될 소지가 매우 높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비역 장교 훈련단이라고 쓰고 전원 현역 장교로 임관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교 양성과정에서 ROTC 도입 배경이나 역사를 깊이 다루지 않는다. 아니 잘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내용은 전혀 모르 임관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의무복무 이후 전역하는 단기 복무자 모두는 예비역 장교로 편입되고 뜻이 있는 이들은 군에 남아 능력을 펼치게 되니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제도와 같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