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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에 한 번씩 그만두고 싶다.

그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복무염증

by 라연군
3일에 한 번씩 그만두고 싶다.


3일마다, 3개월마다 그리고 3년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간절히 느낀다. 이른바 '3ㆍ3ㆍ3 법칙'으로 업무에 의욕이 떨어지는 주기다. 군에서는 여기에 3시간 마다를 추가해야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누구는 매너리즘, 누구는 슬럼프. 하지만 군대에서는 '복무염증'이라 칭한다.


'복무염증'은 신문기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다. 부대에서 갖은 일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요한 건 이 증상은 병사와 간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데 문제가 있다. 병사들을 관리해야 하는 간부가 오히려 복무염증에 시달리면 그 조직이 어떨지는 안 봐도 훤하다. 이 때문에 리더의 복무염증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 군에서 이 모든 것은 개인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


군 생활의 복무염증이 치명적인 이유는 자의로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업무 자체에 실증을 느끼면 '퇴사'라는 마지막 수단이 있다. 퇴사가 아니더라도 장기 휴가냐 휴직 같은 제도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대에선 이겨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의무복무 기간에 내 의지대로 쉬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큰 조직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매일 계속 같은 일을 하며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이 점이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소다. 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탈영을 감행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부대에서 생활하며 탈영하는 경우보다 외출이나 휴가를 나간 상태에서 미복귀 하는 인원들이 상당하다.

간부의 굴레

군 간부로서의 생활을 밖에서 바라보면 전혀 문제 요소가 없어 보인다. 휴대전화도 쓸 수 있고 휴가도 갈 수 있고, 심지어 병사와 비교해 세배 이상 받기 때문이다. 더욱이 계급도 낮지 않기에 군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연결 짓지 못한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서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고충이 있다. 이러한 고충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간부 자살 건수는 2014년 21명, 2015년 31명, 2016년 29명, 2017년 31명으로 증가 추세다. 자살방지 대책이 주로 병사들에게 맞춰져 있어 간부에 대한 관리는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그 결과 간부의 자살자 인원이 병사에 두배에 가까울 정도다.


3383916_cSg.jpg 군 간부 자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KBS 보도 / 출처:KBS 뉴스


그럼 왜 간부가 이처럼 힘들까? 청운의 꿈을 안고 군 간부만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견뎌왔지만 실전과 훈련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초급장교를 힘들게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탈출구 없는 유리공간

단기 장교의 경우 대게 첫 부임받은 장소에서 근무하다 전역한다. 바꿔 말하면 부대가 아무리 안 좋고 나와 맞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떠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부대에서 간부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초급장교는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지휘관을 비롯한 윗사람들의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병사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는다. 행동 하나하나가 구설수가 될 수밖에 없다.


계급장은 소위이지만 간부들 세계에서는 이등병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지위와 책임은 있지만 그에 맞는 권한을 갖기가 힘들다. 전입 와서 6개월까지는 고참병사와의 마찰도 이어진다. 위와 아래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모든 것이 관심 아니 관찰의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심적으로 큰 어려움에 부딪힌다. 더군다나 간부이지만 대부분의 숙소는 영내에 있어 대부분의 생활은 병사들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야근으로 인해 더 열악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과도한 업무 부담

군 간부는 늘 행정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멋진 전투 장면만 나온다. 그 이후의 상황은 없다. 현실에서는 그날 전투의 결과를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전투 시각과 양상. 상대방 정보, 적군 사상자, 아군 피해, 투입 물자, 보급 필요사항, 향후 부대이동 계획 등 당시 모든 상황을 문서로 남겨야 한다.

320_shop1_535016.jpg 군대에서 문서 작업은 필수로 그 양이 상당하다.


초급간부가 작성하는 문서 수준은 안 봐도 뻔하다. 교육기관에서 문서 작업 능력까지 향상해주지 못한다. 결국 야전에서 배우라는 말로 짧은 교육을 마무리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출근해서 문서 작성과 수정으로만 하루를 소비하는 일이 허다하다. 문서 수정 중에 상관의 고함과 호통은 기본이다. 이런 생활이 한두 달 지속되면 자신감과 함께 자존감이 낮아진다.


모든 초급간부는 처음에 이 굴레에 빠진다. 100이면 100 벗어날 수 없다. 문서는 올리는 족족 까여서(?) 내려오고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하는 동안 다른 일은 쌓여만 간다. 야근은 필수로 10시, 11시까지 하는데도 일은 전혀 줄지 않는다. 업무에 막혀 어디 물어보려 해도 전임자가 부대에 있는 경우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전임자가 와서 업무를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저 "야 그거 대충 해" 와 닿지 않는 조언만 해줄 뿐이다.


업무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윗사람이 중요한 일 진행 경과를 물으면 어버버 대답을 하지 못한다. 다시 혼나고 자존감은 또 내려간다. 어느 순간부터 간부로 군대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새벽 2시까지 야근하면서 불 꺼진 막사를 보면 10시면 잠드는 병사들이 부러워진다. 선택에 대한 후회와 업무에 대한 부담 그리고 탈출구가 없다는 막막함까지.


간부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초급장교라고 봐주는 일은 없다. 전장에서 총탄이 초급간부라 피해 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 남들 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계속 욕먹고 혼나는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업무에 무능함으로 찍히게 되면 휴가조차 갈 수가 없다. 간부는 자신의 일정에 맞춰 휴가 계획을 제출할 수는 있지만 일이 많으면 윗사람이 결재를 하기 전에 불러서 묻는다.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은 다하고 휴가 계획 올린 거지?" 이 말을 들으면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올렸던 휴가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


관리의 사각지대

군은 병사들 관리에 주된 초점을 맞춘다. 전입 와서 적응이 어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전입 100일 특별 관리기간을 지정하거나, 같은 생활관을 쓰는 병사들에게 당부를 잊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같은 전입 동기들만으로 생활관을 편성해서 내무 부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기도 하고 동반입대라 해서 처음부터 자신의 친구와 함께 같은 부대에 배속시켜 주어 심적 안정을 도모한다.


이 모든 제도는 병사에게 해당한다. 간부는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 같은 의무복무에 같은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이지만 간부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엄격하다. 식사도 간부는 기본 제공에서 제외된다. 간부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주말에는 자신의 숙소 골방에서 라면에 햇반으로 허기를 채우기 일쑤다.



복무염증을 이겨내는 방법


매너리즘, 우울증, 슬럼프 등 다양한 이름의 복무염증 증상이 있다. 초급장교에게는 사회인으로서의 적응과 함께 부대 적응과 군생활 적응, 거기에 업무부담까지 삼중고, 사중고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이겨낼 방법밖에 없다.


복무염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첫째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목표는 거창해도 좋고 군내에서의 목표도 좋다. 무언가 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루에 10분이라도 쓴다면 정신적으로 조금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둘째로 취미를 갖는 것이 좋다. 기타를 배우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이 잠시라도 있어야 한다. 셋째는 소통이다. 주변의 동기들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들어주고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훨씬 더 나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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