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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Feb 20.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땅크와 전차

그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탱크.

탱크, 땅크, 전차


장교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착각을 한다. 장교는 군대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군 내부에 대해 훤히 꿰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지상군 페스티벌이나 국군의 날에 TV에서 보이는 각종 무기를 다 보고 배울 거라는 생각이 바로 그 주된 착각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모두 착각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실제로 장교가 되면 남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시작전계획과 같은 비밀문서도 볼 수 있고, 한미 연합훈련 같은데 참석하면 일반 민간인이 알지 못하는 지하벙커에도 가볼 수 있다. 여기서 전제조건은 본인이 그런 임무를 띠고 있는가 이다. 


일반 보병소대장으로 전방 철책근무만 하는 경우 군생활 내내 탱크 한번 보지 못하고 전역한다. 설사 보았더라도 세워져 있는 것만 봤지 움직이거나 포사격 하는 것을 보는 건 전차 소대장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다. 그만큼 군대 조직이 거대하기 때문이다. 


원래 정훈장교라 하면 사무실에서 펜이나 굴려가며 정신교육 자료나 만들고 훈시문을 쓰는 게 주요 작업이다. 자기 소총도 만져볼 일이 거의 없다. 후보생 시절을 제외하고 부대 생활 내내 실제 사격은 딱 한번 해봤다. 개인 소총도 볼까 말까 한 판국에 무슨 탱크나 헬기 같은 걸 보겠는가. 더군다나 글 쓰는 일이 주 업무인 사람에게 말이다. 하지만 군생활에 이런 쪽에 운이 좋았는지 탱크의 실제 기동과 사격을 눈 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탱크의 유래

탱크TANK는 제1차 세계대전에 처음 등장했다. 개발자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전장에 투입을 결정하고 운영한 이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다. 탱크의 탄생을 이야기하려면 총기의 발전을 함께 다뤄야 한다. 세계 제1차 대전의 최첨단 무기는 기관총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단발식 소총이 전부라 초기 전투에서만 총기를 사용했다. "돌격 앞으로!" 명령에 따라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탄환을 재장전하는 것보다는 칼을 들고 육박전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기관총이 등장하자 돌격하는 공격 부대의 피해가 너무도 컸다. 누구도 함부로 적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빗발치는 탄환을 피하기 위해 숨을 곳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땅을 파고 몸을 숨기는 '참호Trench 전투'가 이뤄지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공격 측은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할 묘안이 필요했다. 조건은 두 가지. 기관총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참호 도랑 위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탱크였다. 탄환으로부터 내부의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철갑을 둘렀고, 참호를 건너기 위해 무한궤도를 장착했다. 무한궤도 트랙터, 땅 위의 전함 등의 이름도 있었지만 물을 나르는 거대한 수조와 같다고 하여 Tank로 불렸고 그것이 대표 이름이 되었다. 영국은 탱크를 앞서운 전선의 교착상태를 타파한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초창기 탱크의 모습 / 출처: 조선매거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선진국은 앞다투어 탱크를 도입했다. 하지만 탱크의 사용법을 변경해서 전장을 입체적으로 바꾼이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틀러다. 히틀러는 탱크와 폭격기를 앞세운 이른바 '전격전'을 통해서 순식간에 폴란드를 점령하고 프랑스까지 진격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이 아닌 벨기에를 거쳐 우회함으로써 프랑스가 자랑했던 방어선인 '마지노' 요새를 무력화시켰다. 유명한 마지노선의 어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1차 대전에서는 탱크와 탱크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넓었고 그 사이를 보병 부대가 채우는 방식이었다.  보병 부대 사이에 탱크가 한두 개씩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히틀러는 이 탱크에 주된 역할을 맡겼다. 탱크가 횡으로 줄지어 진격하고 보병은 그 뒤를 따르도록 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공중 폭격을 실시하는 하늘과 지상에서의 입체적인 작전을 적용한 것이다. 독일의 이 전술에 의해 제2차 대전 이후 탱크는 육군을 대표하는 무기체계로 떠올랐고 탱크 저지를 위한 대전차 지뢰나 대전차화기 같은 무기까지 고안되었다. 



전자 실기동 및 사격훈련

북한군은 탱크를 '땅크'라고 부르고 국군은 '전차'라고 부른다. 북한이 땅크라고 부르는 이유는 북한의 대부분의 외래어는 러시아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탱크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영어식 표현인 탱크를 그대로 쓰자니 북한군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되어 전술상 혼돈이 있을 것으로 예산되어 전차로 호칭했다는 후문이다. 

군대 용어 관련해서 여담을 조금 더 해보자면 같은 물품에 대해  남북한 용어가 다른 것이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탄창'을 들 수 있다. 탄창은 다량의 총알을 담아 총기 내부에 보관하는 부품이다. 이를 국군에서는 '탄알집'으로 호칭한다. '탄창'은 북한군의 용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탄알집보다는 탄창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이 전자를 운영하는 부대가 우리 사단에 하나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실사격 훈련 촬영 지시가 내려왔다. 탱크 포사격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떨리는 마음으로 정훈병과 함께 카메라를 챙기고 지프차로 알려진 전술차량에 올랐다. 


전차 기동 훈련은 아무데서나 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육군은 별도의 전차 전술기동 훈련장을 마련해 놓았다. 여기에서만 자유로이 기동훈련과 포사격을 실시할 수 있다. 전차에 달린 포는 1개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이들은 탱크에 포가 두 개 달려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포가 두 개 있는 전차는 없다. 

당시 우리 부대의 M48 전차포 실사격 훈련 장면


전차 실사격 시간에 전차 소대장은 촬영 간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안전사고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마침내 전차 사격이 시작되자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온몸으로 포가 발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총에서 총을 한발 발사해도 주변 산이 울리는데 전차의 포사격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사격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해가지니 전차 포탑에서 내뿜는 불꽃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웅장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6.25 때 쓰던 전차가 아직도?

우리나라 전차는 크게 2종류다. M계열, K계열. K계열은 K1전차와 K2 전차로 최신 기동성능을 발휘하는 육군의 주력이다. M계열은 미국의 패튼전차로 6.25 전시에 사용하던 그 모델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물론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전차도 계속 계량을 한다. 그 계량에 따라 모델 명칭이 바뀐다. K1A1 전차 같은 경우 K1전차를 1번 개선했다는 의미의 Advance를 이름에 붙인다. 위 사진의 M48 전차는 M48A5가 모델명으로 해석하면 M48전차를 5회 개량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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