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물네 번째 이야기. 제22사단 율곡부대
골 때리는 부대
바로 육군 제22사단 율곡부대의 별명이다. 율곡부대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부대를 꼽기도 힘들다. 강원도 고성의 최전방에 있으면서도 1사단이나 21사단처럼 메이커 부대 대접은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근무 여건이 좋은 것도 절대 아니다. 강원도 동해안 끝자락으로 북한과 직접 대치하는 지역이면서 경계 근무지는 산악과 해안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장병들이 휴가 한번 가려면 고성에서 속초까지 이동한 뒤에 다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야 해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강원도까지 KTX가 연결되었지만 이전엔 단선 기찻길로 인해 서울로 나오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우리나라 유명한 스키장이 강원도에 모여있을 만큼 겨울에는 눈이 또 엄청 내린다. 10월부터 월동준비에 들어가서 3월까지 제설을 하면서 보낸다.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인 셈이다. 야지野地 훈련이라도 하면 온통 험준한 산악지형이라 더 많은 체력과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다. 종합하면 군대 말로 빡센 부대다.
하지만 이런 힘든 부대의 별명이 골 때리는 부대가 된 건 여러 가지 이어진 사건의 결과였다. 사건을 논하기에 앞서 이 부대의 역사를 조금 알아보면 제22보병사단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에 창설되었다.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부대 재편성을 이유로 58년 해체되었다. 그러다 75년 동해안 지방의 경계 강화를 위해 제88보병여단으로 재창설되었다가 82년도에 현재의 모습인 제22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창설과 해체 그리고 재창설. 부대 역사도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22사단의 원래 별칭은 율곡부대가 아닌 뇌종부대였다. '우레와 같이 평화의 종을 울리자'라는 뜻으로 뇌종(雷鐘)이라 칭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 사고로 인해 뇌종이 본래 뜻이 아닌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는 문제를 낳는 부대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이로 인해 뇌종을 다르게 해석한 '골 때리는 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입대 전 장병들에겐 부대마크 생김새로 인해 남성 피임기구인 콘X부대로 불리곤 한다.)
22사단이 유명해진 이유는 수많은 사건사고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별들의 무덤이라는 별칭도 있다.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다 보니 '뇌종'이라는 이름이 액운을 몰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고 '이이(22)'와 같은 발음을 갖는 위인인 율곡 선생의 이름을 따서 2003년 율곡부대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부대 이름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에도 전군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사고의 주인공은 22사단이 차지했다.
2010년 이후 발생한 경계작전 징계의 70% 이상이 22사단일 만큼 아직도 문제 사단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인 주요 사건 몇 가지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
1984년. 조준희 일병 월북사건
전방 GP에서 근무하던 조준희 일병이 함께 지낸 동료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하고 M16 총기를 난사한 뒤 월북했다. 이로 인해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는 등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조준희 일병을 검거하기 위해 수색조가 투입되어 총격전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수색조가 지뢰를 밟아 피해를 입는 등 군 창설이래 최악의 총기사고이자 월북 사건이다.
당시 새로 보임된 신임 소대장은 몸을 숨겨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사단장부터 대대장까지 줄줄이 보직해임은 물론 전역조치되었다. 이후 조준희 일병이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인 이유로 병영내 가혹행위와 부조리와 남한 내 자생 공산주의자 등이 제기되었지만 밝혀진 바는 없었다.
2005년. 민간인 총기 탈취 사건
예비역 중사와 병장 2인이 GOP 대대 탄약고에 침입해 총기와 실탄을 탈취한 사건이다. 범행을 일으킨 이들은 범핸 직전 연도까지 군에서 근무한 자들로 은행을 털기 위해 총기 2정과 실탄 700발, 수류탄 6발을 훔쳤다. 민간인의 군 고위간부 사칭 한마디에 경계근무가 와르르 무너졌다는 점에서 심한 지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사단장의 진급은 물 건너갔고 연대장 이하 영관급 장교는 모두 보직해임 당했다.
2009년. 민간인 월북 사건
22사단에서 군생활을 했던 민간인 강동림이 부대 모든 경계를 유유히 뚫은 뒤 철책까지 자르고 북한에 월북한 사건이다. 군이 민간인의 월북을 인지한 것은 월북 사실에 대한 북한의 대남방송을 통해서였다. 이 대남방송의 사실 확인을 위해 철책을 점검하던 중 30x40cm가량으로 절단된 사실을 파악했다. 강동림은 자신이 일하던 농장 주인을 장도리로 때려 상해를 입힌 뒤 도주하였고 검거를 우려해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단장부터 소대장까지 모두 보직해임을 당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아무리 해당 부대 출신이라지만 전역한 지 오래된 민간인에게 뚫린 군의 경계 태세에 국민들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2012년.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또 22사단이야? 라는 말을 절로 나오게 한 사건이다. 수차례 경계근무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북한군이 대문 앞에서 문을 두드릴 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근무 실태가 드러났다. 이 북한군이 귀순자가 아니라 무장 공비였다면 모두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곳에는 3중의 철책을 둘렀음에도 북한군의 침투를 전혀 알지 못했을뿐더러 한국군 진영에 다다를 이 북한 병사가 여러 곳에 문을 두드리고 귀순의사를 밝혀서 그제야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작전본부장을 비롯한 장성 5명과 영관장교 9명이 모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단번에 별 9개가 떨어져 나갔다. 다만 위관급 이하 장병들은 근무 기준 위반 사실이 없어 징계를 면했다.
2014년. GOP 총기난사 사건 (일명, 임 병장 사건)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으로 21세기 군 내부 부조리의 현실을 드러낸 초유의 사건이다. 전역을 단 3개월 남긴 말년 병장이 일으킨 최악의 총기사고로 기록된다. 문제의 원인은 지속된 집단 따돌림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문제의 소지가 매우 높은 관심병사로 분류하였음에도 총기와 탄약을 불출하는 경계근무에 투입하는 등의 군의 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많은 총기 사고와 경계근무로 질타를 받았음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모습에 국민들을 두 번 놀랐고 국방부는 사단장을 비롯한 예하 지휘관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