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전쟁의 역사와 변천
인류 역사 기간의 97%는 전쟁이다.
전쟁이 없던 시기는 없었다. 인류 역사의 97%는 전쟁 기간이었고 단 3%만이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 3%에 지나지 않는 평화시기도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거나 전쟁을 준비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진정한 평화로 말할 수 있는 기간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총성이 멈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전쟁은 역사의 발전만큼이나 놀라운 변화를 이뤄냈다. 시대별 최첨단 과학기술은 전쟁에 사용되었고 신기술에 따라 전쟁의 방법이나 전술이 크게 바뀌어갔다. 전쟁을 위한 과학기술 덕분에 인류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는 등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많았다. 스팸 통조림과 전자레인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 시대별로 전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왔을까?
총기 발명 이전의 전투
인류 전쟁 역사의 대부분은 육박전이었다. 원거리 공격수단으로 활이 있었지만 궁병으로 전투의 유리함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전쟁을 장악할 수는 없었다. 결국 '힘 대 힘'으로 맞붙어서 결판을 지어야 했다. 이런 육상전투에서 천년의 최강자를 꼽으라면 단연 로마군이다. 로마군은 근접 전투에 가장 적합한 칼을 개발하고 당시에는 획기적인 상비군 제도를 도입해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이와 더불어 현대전의 전차에 해당하는 기병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전장에서 활용했다. 이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로마는 천년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며 서구 유럽에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대항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바로 함포다. 대포는 대항해 시대 이전에도 사용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해상 전투는 서로 배를 맞닿아 놓고 상대편 배로 건너가 싸우는 육박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베네치아 연합군과 투르크 제국의 레판토 해전을 이후로 사라졌다. 레판토 해전은 포와 총을 이용한 새로운 전쟁 방식의 시작이자 기존 방식의 전쟁의 종식을 알린 기념비적인 해전이라 할 수 있다. 레판토 해전 이후로 대항해 시대로 접어들면서 강력한 함포로 무장한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의 해군이 대양을 주름잡았고 지중해는 더 이상 세계 해전의 무대가 되지 못했다.
기관총과 참호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군인에게 총기는 기본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초기 총기는 연속적으로 탄을 발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속 발사를 위해 1열, 2열, 3열로 인원을 나눠서 1열이 사격하면 3열 뒤로 이동해서 다음 사격을 준비하고, 이어서 2열이 사격하고 이동하는 방식의 차륜전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거리가 근접하면 칼을 차고 백병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기관총이 발명되었다. 순식간에 수백 발의 총알을 발사할 수 있는 이 총은 전쟁의 양상을 확 바꿔놓았다. 접근해서 싸우는 백병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공격하는 이들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빗발치는 탄환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서 몸을 숨겼고 이렇게 참호전투가 시작되었다.
참호전투가 계속되자 기관총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고 참호 위를 자유로이 건너 다닐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고 윈스턴 처칠이 처음으로 탱크를 전장에 투입했다. 탱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 데뷔한 이후 그 효용성이 입증돼 급속하게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탱크와 전투기 그리고 마지노선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 긴 요새를 세워 독일군의 침략을 방비했다. 이 요새의 이름이 바로 마지노. 넘어서는 안 되는 최후의 보루 '마지노선'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마지노 요새가 전쟁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다. 바로 히틀러의 전격전 때문이다.
독일은 기존의 보병 부대 사이에 띄엄띄엄 있는 전차 활용법을 바꾸어 전차대대를 앞세워 보병이 뒤따르는 방식으로 전술을 변경했다. 이와 함께 공중폭격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격전' 개념을 도입했다. 전격전은 현대 전쟁 전술의 효시가 되는 것으로 기갑사단과 폭격기를 통해 적국의 전투능력을 조기에 제압하고 지상군을 투입하여 점령하는 전략전술이다. 이를 통해 히틀러의 독일은 프랑스 마지노 요새를 비껴서 벨기에를 빠른 속도로 점령하고 프랑스 파리를 함락시켰다.
선승구전의 현대전쟁
"선승구전". 군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다. 먼저 승리를 확정 지은 뒤 전투에 임한다는 말이다. 싸워보지도 않고 어떻게 승리를 확신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첨단 무기체계로 이뤄진 현대 군에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 승패를 사전에 알 수 있다.
선승구전이 가장 잘 드러난 전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개초기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폭격과 포격을 이어갔다. 이라크 군의 주요 거점과 시설을 파괴한 이후 지상군이 투입되어 신속하게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전쟁 승리를 선포했다. 전쟁의 시작과 종료까지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항공모함 위에서 당당히 승리를 선언했고 이때까지 미군의 사망자는 140명으로 10,000명 가까이 사망한 이라크 군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완벽한 승리였다. (종전 선언 이후 게릴라 전투의 연속으로 인해 미군의 사망자 숫자는 급증했다.)
IS격퇴와 게릴라
정규군 사이의 전쟁에서는 첨단장비와 화력이 밀리는 경우 필패로 이어진다. 그래서 거대한 정규군에 대항하기 위해 약소국에서는 게릴라 전투가 일반화되었다. 게릴라(guerrilla)는 정규군에 속하지 않은 비정규군 부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게릴라는 스페인어에서 발생한 것으로 소규모 부대 전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후 소규모 비정규군의 전투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게릴라는 정규군 중에 일부가 이런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게릴라 조직을 구성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게릴라 보다 빨치산(Partisan)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빨치산은 게릴라와 동일한 의미로 소련의 발음을 따서 국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보통 적의 후방이 주요 활동 무대가 되며, 경비가 허술한 기지, 병기·연료·탄약 등 물자를 저장한 곳, 교통의 요지, 통신소 등이 주요 공격 목표가 된다.
게릴라 전투가 정규군에게 효과적인 점은 지휘부가 점조직으로 퍼져있기 때문에 화력을 집중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원 색출해서 사살하지 않고서야 전쟁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 또한 월남전에서 처럼 민간인과 게릴라의 구분이 모호해지면 전체 주민을 적으로 돌리게 될 수밖에 없다.
월남전 이후로 게릴라 전투의 효율성이 입증되었고 약소국의 최적화된 전술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IS가 이 전술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를 위시한 서방세계와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