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연군 Feb 25. 2019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인턴 군인

그 서른 번째 이야기. 복무연장과 장기복무

2년짜리 인턴 장교



[미생]의 장그래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파장은 컸다.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많은 관심과 개선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군 인턴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ROTC 학군 장교를 비롯한 단기 간부들은 엄연한 군대의 비정규직. 인턴 군인이다.


군에 남지 않고 사회로 가는 일들에게는 인턴 기간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 어디에서라도 인정해 주는 경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에 남고자 하는 이들은 이 인턴 딱지를 떼기 위해 또 따른 경쟁을 해야 한다.



장기복무

ROTC 장교는 군과 사회 모두 다리를 걸친 양다리 군인이다. 여차하면 사회로 나갈 수 있고 적성에 맞으면 군에 남을 수도 있다. 선택권이 열려있다는 점이 타출 신이 가질 수 없는 ROTC 학군 장교만의 메리트다. 사회에 진출하지 않고 군에 남아도 충분히 경쟁해 볼 수 있다. 본인의 능력에 따라 연대장, 사단장 그 이상의 지위까지도 다다를 수 있다. 물론 육사를 넘어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삼성에 다니는 이들이 하는 농담이 "삼성에는 전자와 후자만 있다."라고 자조섞인 말 처럼 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군에는 출신과 비 출신만 있다."라는 말이다. 군에서 이야기하는 출신은 육군사관학교다. 육사 말고 다른 출신은 모두 비 출신으로 취급받는다. 3 사관학교도 서얼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군에서 육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진급을 예로 들면 100명의 진급 자리가 생겼다면 육사 70, 학군 15, 3사 10, 기타 출신 5 정도로 배분된다. 예전부터 출신별 진급 인원 배정을 폐지하자는 말이 엄청 많았다. 이런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공식적인 발표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비율이 조금씩 바뀔 뿐 철저하게 육사 위주의 군의 행동은 변함이 없다.


그럼 학군장교로 군에 남으면 비전이 없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학군장교 출신으로 참모총장까지 지내셨던 분들도 많다. 또 육사와 당당히 겨뤄 군의 요직을 담당하는 이들도 수없이 많다. 최근에 3사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아직까지 군의 전통적인 No.2는 학군장교다.


No.2에 대한 3사와의 비교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 육사 천하의 군 내에서 No.2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육사가 진급이 잘 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선배가 진급 자리로 후배를 끌어주기 때문이다.

이철희 의원실에서 공개한 진급률 상위 보직 대부분은 육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이 학군, 3사 순이다. 기타 출신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이게 군의 현실이다.

진급률 높은 군 보직의 출신별 현황 / 출처: 이철희 의원실



장기복무조차 되기 힘든 현실

육사와 맞붙어 우열을 가려보는 일도, 3사와 누가 No.2인지 확인하는 것도 모두 군에 남아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요새 군대는 장기복무 자체가 하나의 고시처럼 되어버렸다. 과거 군대에서 장기복무 이른바 군대에 말뚝 박는 행위는 놀림거리였다. 사회에서 할 일 없는 이들이 군에 남는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에 기회가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시 장기복무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큰 사고를 친 다음에 대대장이 장기복무지원서를 내밀었다는 경우가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술자리에서 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군의 고민은 유능한 장기복무 자원의 확보였다.


1998년을 기점으로 시대가 변했다. 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사회의 기회가 급속도로 줄었고 상대적으로 군 간부의 직업적 안정성과 대우는 향상되었다. 군인으로 남고자 하는 이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러한 세태는 N포 세대로 대표되는 지금의 세대에도 적용되는 현실이다. 육군 장교의 장기복무 경쟁률은 2010년도 [3.8 : 1]에서 2015년에는 [4.5 : 1]까지 치솟았다. 사회 일반 회사처럼 지원자 모수가 쉽사리 늘지 않는 구조를 감안하면 엄청난 경쟁률 향상이다.


장기복무 선발에 떨어진 이는 차선책으로 복무연장을 선택한다. 복무연장으로 장기복무 재도전의 기회를 산다. 아직 전역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도 복무연장 카드를 활용하기도 한다.  두어 차례 복무연장으로도 장기복무 선발이 되지 않으면 사회로 등 떠밀려 나가야 한다. 군에서의 모든 생활은 인턴기간이었을 뿐이다.

장기복무 / 복무연장 지원 양식


군에 남으려면 초군반부터 시작해야

군이 적성에 맞는다면 아니 군에 남기로 결심했다면 초군반(OBC) 성적부터 챙겨야 한다. 외부에서는 잘 모르지만 군 내부에서는 성적 지상주의다. 학교기관에서 하는 성적은 무조건 잘 받아야 한다. 군대 말로 "수갑을 차고 나온다"라는 말을 한다. 학교기관에서 성적으로 상위 10명에 대해서는 표창을 하는데 이때 이들은 흰색 장갑을 끼고 단상에서 상장을 수령한다. 이 흰색 장갑을 군대에서는 흰색 수갑이라 부른다.


학교기관에서 수갑을 차고 나오지 못한다면 군생활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초군반 OBC야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묻혀갈 수 있지만 대위들이 입과 하는 고군반 OAC에서 수갑 차고 나오지 못하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 공부는 무조건 잘하고 볼일이다.


그다음은 평정. 매번 지휘관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이 평가는 곧 군생활 앞날을 좌우한다. 지휘관에게 찍힌 군인이 군생활을 편안히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 조직이라면 무조건 지휘관 뜻을 따라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은 물론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해 계속 어필을 해야 한다. 초급 간부가 사단장의 눈에 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앞에 나설 기회가 있다면 고생길이 보이더라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결재서류에 이름자 하나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군도 하나의 조직으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이야기 속 군에서 술만 먹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군에 남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이 경쟁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막상 시기에 닥쳐 준비해서는 이도저도 아닌 인턴으로 끝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ROTC 장교 한 번 해볼래?] 전쟁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