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서른한 번째 이야기. 장군 부럽지 않은 계급.
장포대, 말년중위, 말년병장 그리고 후보생 2년차
군대는 철저히 계급사회다. 나이나 선후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요 직책은 계급 순으로 배분된다. 따라서 계급이 깡패고, 무기고, 전부가 된다. 모든 계급사회가 그렇다. 특히나 군대는 상명하복을 가장 핵심으로 하기에 계급이 갖는 권위와 권한이 훨씬 더 크다.
이런 군대에서도 계급을 뛰어넘어 육군 대장 안 부러운 계급이 있다.
장포대
군에서 피해야 할 No.1 계급은 장포대다. 바로 장군 진급을 포기한 대령의 줄임말이다. 장포대 정도 되면 투스타 사단장보다 짬밥이 높은 경우도 많다. 아니면 후배 기수가 장군 진급이 이뤄져서 실질적으로 자신이 별 다는 일이 불가능해진 젊은 대령도 있다. 전자의 대령의 경우 부사단장의 직책을 갖는다. 군대에서 '부'자가 들어가는 보직은 대부분 꿀보직으로 보면 된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 사단장 보다 짬이 되니 이런저런 말을 툭툭 던져도 아무도 함부로 반대의견을 내지 못한다. 심지어 사단장도 말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부사단장'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널찍한 사무실에 CP병과 운전병 그리고 별도 차량이 배차된다. 오전 출근해서 상황보고만 보고 커피 한잔에 신문을 훑어보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의 속내까지 다 알진 못하지만 군에서 가장 부러웠던 이였다.
장포대가 연대장을 하고 있으면 모 아니면 도다. 이미 꿈을 포기해서 편하게 쉬엄쉬엄하는 이도 있지만 자신이 장군이 되지 못한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이런 장포대를 만나면 아주 피곤하다. 이미 볼짱 다 봤으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조건 자기 뜻대로 한다. 후자 쪽에 걸리면 군생활에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빠르다.
말년중위
장교의 말년 기간을 따지는 게 부대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전역 100일 정도 남긴 시점으로 보면 된다. 말년 중위 정도 되면 자기 업무는 이미 통달해서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정도 짬이 되면 어디 부대에 있던지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게 된다. 조금 맘에 안 든다고 군기 잡으려고 했다가 이들은 그냥 드러누워 버리기라도 하면 부대 전체 업무가 꼬인다.
그리고 부대 내부의 부조리와 비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쉬운 게 없다. 곧 사회로 나갈 이들이다. 괜스레 억하심정을 갖고 전역하게 했다가 국방부에 투서를 쓰거나 청와대 청원이라도 올리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이들과 입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곧 들어올 후임자를 키우는 편이 더 낫다.
전역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는 그 지겨운 당직근무도 열외 시켜 준다. 이등병으로 들어와 나에게 전입신고를 했던 병사들이 이제는 어엿한 병장이 되어있다. 2년간을 함께 했기에 눈치만 봐도 뭐가 필요한지 다 알고 준비해 준다. 군생활이 이렇게만 되다면 30년도 할 수 있겠다.
말년병장
육군 5대 장성으로도 일컫는 병장이다. 대장, 중장, 소장, 준장, 다음 병장 순이라는 이들과 병장 다음에 대장이 오는 게 맞다는 이들이 늘 술자리에서 다툴 정도로 병장의 위세는 상당하다. 초급간부들을 잡아먹을 정도의 짬과 분대 장악력이 있다.
간부들도 말년병장은 대우해준다. 점호처럼 기본적인 사항을 어기거나 훈련 상황만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터치하지 않는다. 웬만큼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눈감아 준다. 여기까지는 장교가 말년병장을 대할 때 이야기고 부사관의 경우엔 다르다. 부대 내 행정보급관은 말년병장을 부리는 솜씨가 탁월하다.
행보관만 잘 만나고 군번만 꼬이지 않는 경우, 더할 나위 없는 군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후보생 2년차
군대 계급의 숨은 보석. 아는 사람만 아는 바로 후보생 2년차이다. ROTC 후보생 사이에 하는 말로 2년차 생활은 육군 대령하고도 안 바꾼다고 했다. 후보생 2년차가 이리도 빛나는 이유는 1년차 생활이 진흙탕이기 때문이다. 실내를 벗어나는 순간 단모를 푹 눌러쓰고 다녀야 하고 시종일관 바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한다. 이른바 사주경계다. 언제 어디서 선배가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항상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그러다 선배가 나타나면 내 옆에 누가 있든지 간에 경례를 크게 올려붇여야 한다.
학군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직도 1년차에 여러 제약을 가하는 곳이 많다. 단순하게 모자를 쓰고 다니지 마라. 상의 지퍼나 단추를 다 풀어헤치고 다니지 마라. 주머니에 손을 넣을 채로 걸어 다니지 마라 등 사소한거 하나까지 규칙을 정해 준다. 1년 동안 선배 눈 피하랴 규칙을 지키랴 그러다 위반사실 적발로 얼차려 받으랴 바쁘기 그지없다.
이런 모든 구질구질함이 2년차가 되는 순간 없어진다. 학교에 학군단이 있다면 1년차와 2년차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바로 2년차는 단모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학교나 2년차는 단모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훈육관과 학군단장 단 두 세 사람의 눈만 피하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자신을 알아보고 경례해 주는 후배들이 있다. 거기다 군대도 아닌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으니 세상에 이런 신선놀음이 내 인생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