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바로 알기
2019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뉴스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북한과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서로 적으로 맞섰던 국가다. 전쟁 이후에도 북한은 미국의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침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나포하기도 하고,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국 장교를 도끼로 내리쳐 죽이기도 했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UN을 통한 대북제재 카드와 함께 90년도 영변 폭격 계획까지 세웠고, 2018년 트럼프 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면서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서로 마주하면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던 이 두 국가는 그 흔한 상호 연락소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채널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보통 전쟁을 앞에 두거나 외교 단절을 할 때 외교관을 철수시키는데 이 경우엔 아예 설치조차 안 했기 때문에 달리 보면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긴 지금의 한반도는 휴전 상태이지 정전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종전선언이 먼저 이뤄져야 상호 상주 대사를 파견하는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이 이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에게 꾸준히 요구한 것이 종전선언과 대사관 설치였다.
북한 핵 개발 역사
세상 모든 일은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발생한다. 북한이 할 일이 없어서 그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막대한 비용을 쏟아가며 핵을 개발했겠는가? 북한의 핵 개발이 본격화되어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물론 70-80년대부터 핵개발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90년대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90년대가 주는 의미는 이때부터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6-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남한에서 핵 개발에 대한 욕망이 더 강했다. 당시 남북한 군사력에서 열세를 떨치지 못한 남한은 미군에게 국방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었는데 1973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미국이 베트남을 등지고 철수하자 주한 미군도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핵 보유로 찾고 1972년부터 1977년까지 핵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하다 미국 정보당국에 포착되었고 끝내 좌절되었다.
80년대부터 남한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힘입어 국방력도 빠르게 강화되었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가 갖는 한계점으로 인해 북한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80년대 후반엔 남북한 군사력 우위가 역전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외부의 조력 없이 남한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 말이다. 90년대 북한 최악의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은 이런 체제 경쟁의 마침표가 되었다.
더 이상 재래식 병력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진 북한이 핵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건 70년대 남한고 같은 이유다. 혼자서 미국은 물론 남한조차 상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1999년에는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가는 열차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다량의 플루토늄을 들여오다 적발되는 등 핵개발의 움직임을 이어오다 마침내 2006년 풍계리에서 최초로 핵 실험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원자폭탄? 수소폭탄?
일반 사람들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군인도 잘 모른다. 이쪽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다 같은 핵폭탄이고 그 강도에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자탄과 수소탄은 그 기술력과 파괴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자폭탄은 우라늄을 정제해서 우라늄-235라 불리는 원소를 추출한다. 이과정을 반복하면 우라늄-235를 100%에 가깝게 추출할 수 있는데 이를 농축 우라늄이라고 한다. 이 농축된 우라늄을 쪼개면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원자폭탄이다. 농축 우라늄 순도와 파괴력을 조절하면 원자력 발전이 되지만 순도를 높여 응축해 폭발시키면 폭탄이 되는 셈이다. 우리늄 농축도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데 기술력이 낮으면 폭발이 되지 않거나 폭발력이 미미하다. 북한의 1차 핵 실험은 0.8kt 정도였으나, 10년 뒤 5차 핵 실험 때는 10kt으로 위력이 12배 이상 강해졌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규모의 60~80%에 이르는 정도로 서울 상공에서 터진다면 최소 20만 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의 가공할 위력이다.
북한이 2017년 7차 핵 실험에서 성공할 것으로 판단되는 수소폭탄은 원자폭탄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나 그 방식이 다르다. 원자 폭탄이 핵분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수소폭탄은 태양이 작동하는 원리인 핵융합에너지를 사용한다. 원자를 쪼갤 때 생기는 에너지보다 수소분자를 융합시켜 헬륨으로 융합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훨씬 더 강하다. 이는 수치로도 쉽게 확일 할 수 있는데 5차 핵 실험 위력이 10kt였던 반면 6차 핵 실험은 평가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100~300kt으로 분석된다. 폭탄 한 방에 서울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이다.
핵을 가진 국가가 선의로 이를 포기한 역사가 없다.
북한은 2017년 핵 실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핵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대화에서 선제적으로 핵 실험 중단을 선언했고 공언한 대로 추가 실험은 실시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수소폭탄 제조능력을 세계에 보였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할 필요가 없다. 수능 시험을 치고 서울대에 합격한 이가 해마다 자신의 서울대 입학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반복해서 수능을 치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지렛대로 그토록 원하던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 있었다. 갖은 수를 써도 이루지 못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핵 한방에 이룬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스스로 포기한 사례는 단 두 차례다. 하나는 남아공,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망하면서 남겨진 핵무기를 포기한 것으로 처음부터 핵을 개발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남아공이 유일한 사례다. 리비아와 이란은 핵무기 개발 단계에서 미국의 저지로 인해 중단됐다. 그 결과는 군중 속에서 개처럼 도살당한 카다피와 미국의 정밀폭격으로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례다. 북한도 이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남아공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제지를 넘어서 핵을 개발하고 현재도 소유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있다. 북한도 그 두 나라와 같은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남아공이 핵을 폐기한 이유는 단 하나다. 국경을 마주하고 대치하는 앙골라와의 긴장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앙골라는 배후에서 지원하던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지금도 서로 심심치 않게 교전을 하고 있다. 접경지역에서 작은 총격이 아닌 서로의 전투기를 격추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그러니 핵을 포기할 생각을 않는다. 북한이 남아공이 될지 파키스탄이나 인도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디가 더 가까운지는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