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기술 (Technological factors)
아무리 날씨와 파도가 좋아도, 서핑을 하려면 반드시 장비가 필요합니다. 물론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의 장인들이 좋은 도구를 갖추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뛰어난 실력에 더해 최적의 장비가 있을 때, 서퍼는 가장 큰 파도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습니다. 기업에도 기술은 바로 이 장비와 같습니다. 기술이야말로 기업이 시장의 거센 파도를 타고 멀리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기반입니다. 새로운 도구를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결국 다음 시장의 선두에 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으로 물건과 서비스 공급망의 전환과 고객과의 소통 방식 역시 바뀌게 되겠죠.
기술적 요인을 파악하는 첫 번째 단계는 기술의 혁신 속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신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개발되고 시장에 도입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에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산업 전반의 R&D 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미래 기술의 발전 방향을 가늠하고 기업의 자체적인 R&D 전략을 수립하거나, 필요한 경우 기술 특허를 미리 확보하는 등의 선제적 대응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대중의 수용도가 낮으면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습니다. 신기술에 대한 수용도는 기존의 인프라 수준, 사회 각 계층의 기술 격차, 경제적 요인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획기적인 온라인 서비스가 개발되더라도 인터넷 연결망이 좋지 못한 지역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술적 요인을 분석할 때는 기술 자체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해당 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기업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요인은 바로 자동화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입니다. 이 기술들은 기업에 엄청난 기회와 동시에 새로운 위협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기회 측면에서 자동화와 AI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또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맞춤형 서비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등 정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위협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자동화와 AI의 확산은 특히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나 인구가 여러 국가에서 일자리 감소, 직무 재편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L: 법 (Legal factors)
아무리 파도와 실력이 좋아도, 서핑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서핑 구역인지, 다른 서퍼와 충돌하지 않기 위한 우선권 규칙은 무엇인지, 어떤 장비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지. 이런 규칙들이 없다면 해변은 금세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즐거운 휴일에 구급차를 부르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기업에게 법적 요인(Legal factors)은 바로 이 규칙과 안전 수칙에 해당합니다. 법률과 제도는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허용된 영역을 정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면 곧바로 제재를 받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법이 포함됩니다. 크게는 세금 제도와 노동법부터 시작해, 기술 특허, 환경 규제, 소비자 보호법, 지적재산법까지 다양합니다. 기업들이 굳이 변호사와 법무팀을 고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법은 단순히 지켜야 할 의무를 넘어서 기업 활동의 전제를 규정하고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는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노동환경과 오늘날의 환경만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 12~16시간의 장시간 노동, 아동과 여성의 값싼 노동력 남용, 안전 장비조차 없는 작업장이 흔했습니다. 이후 공장법(Factory Act)과 10시간 법(Ten Hours Act*이 제정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9세 미만 아동의 공장 고용과 야간 노동이 금지되었고, 여성과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되었습니다. 이러한 법 개정은 점차 성인 노동자의 근로시간 단축, 안전 규정 마련, 노동조합의 합법화 등 전반적인 노동 환경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산업계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비용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리라는 것이 주요한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가 향상되었고, 숙련된 노동력이 확보되면서 생산 안정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라 또 다른 소비자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9세기 노동법이 노동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듯, 오늘날에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ESG는 단순히 이윤 추구를 넘어,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기업이 단기적인 이익을 넘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된 것입니다. ESG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E: 환경 (Environmental Factors)
마지막으로 살펴볼 PESTLE 요인은 환경적(Environmental) 요소입니다. 이는 기업이 자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환경 변화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파도와 실력이 완벽하더라도, 서핑할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면 파도를 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센강 수질 문제가 큰 논란이 되었듯, 우리가 생활하고 활동하는 환경에 둔감하다면 수많은 사업적 기회를 애초에 잡아보지도 못한 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환경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탄소 배출권 같은 법적 제도가 늘고 있습니다. 또한, 핵심 원자재의 고갈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쳐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협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인식의 변화입니다. 환경 문제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으며,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은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환경 보호를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보여주기식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환경적 요인이 한 사회의 붕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터 섬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거대한 석상 모아이(Moai)로 유명합니다. 한때 이 무거운 석상을 어떻게 옮겼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그 해답은 바로 섬의 비극적인 역사에 있었습니다. 13세기에서 15세기 무렵, 이스터 섬 원주민 사회는 인구가 늘고 부족 간에 모아이를 세우는 경쟁이 격화되었습니다. 무거운 석상을 운반하기 위한 도구와 목재가 필요했기에 섬 전체의 숲을 대규모로 벌목했고, 결국 울창했던 숲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풍요로웠던 낙원은 무분별한 벌목 탓에 서서히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입니다. 이 지역은 관개 농업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관개 농업은 수로 등을 이용해서 자연적인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관개와 불완전한 배수 체계는 토양 염류 화(salinization)를 초래했습니다. 지하수와 함께 표면으로 끌려온 염분이 토양에 축적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었고, 염류에 민감한 밀은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강한 보리 재배로 전환되었습니다. 밀은 보리보다 생산성이 높고 가치가 있는 작물이었기 때문에, 밀 생산량의 감소는 식량 부족을 넘어 경제적 부의 축소와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지속 불가능한 농업 방식이 결국 문명의 기반을 흔드는 환경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교훈입니다.
결국, 환경은 단순히 사업의 배경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을 결정하는 핵심 토대입니다. 환경을 무시한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이미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기업에 기후 변화, 자원 고갈, 환경 규제, 그리고 소비자의 친환경적 가치관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경영자는 환경적 요소를 단순한 제약이나 비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기회의 원천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기업만이 시장의 거친 파도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를 읽는 법
최고의 서퍼는 눈앞에 부서지는 파도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람과 조류, 지형과 날씨를 종합적으로 읽어내며 파도의 시작과 끝을 예측합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 망설임 없이 몸을 실어 거대한 파도와 하나가 됩니다. 경영의 세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일렁이는 경쟁의 물결만 좇다가 금세 휩쓸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법률, 환경이라는 여섯 개의 큰 흐름을 꿰뚫어 읽는다면, 그 거대한 파도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PESTLE 분석을 통해 실크로드를 흥망 하게 한 정치적 바람, 사바나의 계절처럼 반복되는 경제의 호황과 불황, 그리고 인구 구조의 변화가 시장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기회와 위협, 노동법의 탄생과 같은 법률적 변화, 그리고 이스터 섬과 메소포타미아의 사례에서 보았듯 환경 파괴가 문명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분석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기업이 미래의 기회와 위협을 미리 감지하고, 그 흐름을 타는 전략을 세우도록 돕는 통찰의 도구입니다. 최고의 서퍼가 파도를 만들지 않는 것처럼, 최고의 경영자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흐름을 읽고, 파도 위에서 자유롭게 나아갈 줄 압니다. PESTLE 분석은 바로 그 능력을 길러주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