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약어(Acronym)들이 쏟아집니다. 처음엔 대충 알고 있는 듯하지만, 막상 누가 정의를 물으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지요. 가끔은 GDP인지 GNP인지 헷갈려서, 뒤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켜 검색해 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경험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들은 단순한 글자 조합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본 언어에 가깝습니다. 정확히 알면 기사 한 줄이 새롭게 읽히고, 투자 뉴스가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장에서는 거시경제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요 지표와 개념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미 익숙하다면 가볍게 확인하는 마음으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GDP: 매일 언급되는 그 단어
아마 경제 뉴스를 잘 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GDP는 지겹게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GDP는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지표지요. GDP는 Gross Domestic Product의 약자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합산한 지표입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거시경제 지표 중 하나로, 흔히 ‘그 나라가 일정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을 했는가’를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단어는 Domestic 즉 ‘국내’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집 담장에서 만든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 돼요. 만약 여러분이 다른 집에 놀러 가서 그 집의 일을 도와준다면, 그 집의 GDP에는 포함되지만, 우리 집의 GDP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A씨가 미국에 가서 일해서 돈을 벌어도 대한민국의 GDP에는 영향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수학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GDP를 수식으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GDP = C + I + G + (X - M)
C (Consumption): 소비, 즉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한 총액
I (Investment): 투자, 기업이나 개인이 미래를 위해 지출하는 금액
G (Government Spending): 정부 지출, 공공서비스나 사회기반시설 등에 쓰인 비용
X (Export): 수출
M (Import): 수입
즉, GDP는 소비 + 투자 + 정부지출 + (수출 - 수입)으로 구성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GDP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지표이자, 경기 침체나 호황을 판단하기에 적합한 수단이기 때문에 널리 사용됩니다. 실제로 정부와 중앙은행은 GDP 데이터를 토대로 금리 조정이나 재정 지출과 같은 핵심 경제 정책을 결정하곤 합니다. 그래서 GDP를 통해 기업이나 개인은 그 나라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확장할지 등을 가늠할 수 있지요. 외국의 자본을 유치하는데 도움을 주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GDP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GDP는 경제 규모의 ‘총량’을 보여줄 뿐, 그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지 혹은 골고루 분배되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GDP 수치가 높게 나와도 많은 국민이 여전히 살림살이를 빠듯하게 느끼는 경우가 발생하죠. 또한, GDP는 삶의 질을 직접 반영하지 않습니다. 행복감, 사회적 안전망, 환경 문제와 같은 요소는 GDP 수치에 담기지 않으니까요. 더 나아가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비공식적 경제 활동도 계산에서 제외됩니다. 결국, GDP는 나라 전체의 경제 활동을 큰 틀에서 보여주지만, 실제 생활 현장을 세밀하게 비추지는 못하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GDP per capita, 즉 총 GDP를 인구수로 나눈 값을 쓰기도 합니다. 총 GDP가 한 나라 경제의 전체 크기를 보여준다면, 1인당 GDP는 그 경제적 가치가 국민 한 명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두 나라의 총 GDP가 비슷하더라도 인구가 적은 나라의 1인당 GDP가 훨씬 높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나라 국민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요. 비유하자면, GDP가 케이크의 전체 크기라면, 1인당 GDP는 그 케이크를 몇 명이 나눠 먹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1인당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GNP: 누가 만들었는가?
GDP가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을 이야기한다면, GNP는 우리 식구가 만든 물건들을 포함합니다. 우리 집에서든, 이웃의 집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이처럼 GNP는 한 국가의 모든 국민이 만든 모든 ‘생산물’의 시장가치를 측정합니다. 즉, GNP는 해당 국가의 국민이 자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죠. 이는 ‘위치’보다는 ‘국적’을 중요하게 따집니다.
GNP의 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GNP = C + I + G + (X - M)+Z, 혹은 간단하게 GDP+Z입니다. 여기서 Z는 국외순수취요소소득 (Net Income from Abroad)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 국민과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외국인과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뺀 것이죠.
GNP는 GDP만큼 자주 쓰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 시장에서 GDP보다 직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GDP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국경 안에서 일어난 경제 활동이라는 명확한 기준 덕분에 국가 간 비교가 비교적 쉽습니다.
반면 GNP는 국민의 해외 활동까지 포함하다 보니 계산 방식이 복잡하고, 국가 간 비교 기준으로 삼기에는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특히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는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에서는 그 한계가 더 두드러집니다.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에서 이익을 내고 자금을 옮길 때, 그 기여분을 어느 나라 국민의 몫으로 볼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다국적 선수들이 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경기할 때마다 선수들의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에 따라 기여도를 계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하다면 누가 선호할까요?
GNI: 결국 얼마를 손에 쥐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글로벌 경제에서는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 요소가 국경을 자유롭게 오갑니다. 그만큼 한 나라 국민이 해외에 투자해 얻는 소득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생산량을 합산하는 GNP보다, 국민의 실질적인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GNI가 삶의 질을 더 잘 반영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현재는 GNP보다 GNI가 훨씬 더 자주 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I, 즉 Income(소득)입니다. GNI는 한 나라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실제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국민과 기업이 최종적으로 손에 쥔 ‘월급봉투의 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GNP와 동일하게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GNP가 생산에 초점을 두었다면 GNI는 소득에 중점을 둡니다. 만약 B씨가 카페에서 일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GNP는 그 B씨가 만든 커피 잔 수를 기록하지만, GNI는 일 끝나고 받은 일당을 기록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생산과 소득, 같은 활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인 셈이죠.
하지만 GNI 역시 GDP와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민 소득의 총량은 보여주지만, 그 소득이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또한, 소득이라는 경제적 측면만 다루기 때문에, 국민의 건강 상태, 교육 수준, 사회 안전망, 정치적 자유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비경제적 요소는 전혀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를 알아두면 좋습니다. 지니 계수는 나라의 소득 분배가 얼마나 평등한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0과 1, 딱 2개의 숫자로 표현하기에 이해라기도 쉽죠. 0에 가까울수록 모든 사람이 똑같이 소득을 나눈 상태에 가깝고, 1에 가까울수록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지니계수는 로렌츠 곡선(Lorenz Curve)을 바탕으로 계산됩니다. 로렌츠 곡선은 인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누적 인구 비율과 누적 소득 비율의 관계를 나타낸 곡선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파이를 어떻게 나눠 먹는지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나눈다면 대각선 직선이 되고, 현실에서는 일부가 더 많이 가져가서 곡선이 아래로 휘어집니다. 지니계수는 이 직선과 곡선 사이의 면적 비율을 계산한 값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0.4를 넘으면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고 판단하죠.
다만 지니계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불평등이 발생하는 원인이나 어느 계층에서 심한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나라의 절대적 소득 수준은 반영하지 않지요. 따라서 두 나라가 같은 지니계수를 갖고 있더라도, 한쪽이 다른 쪽보다 훨씬 부유할 수 있습니다.
PPP: 내가 살 수 있는 것
PPP는 구매력 평가(Purchasing Power Parity)의 약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내가 무엇을 살 수 있는가?”, 즉 구매력과 관련된 지표이지요. 다만 단순히 소비자의 지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다른 통화를 가진 국가들의 경제 규모와 소득 수준을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환율 개념입니다. 좀 더 쉽게 생각하자면, PPP는 ‘같은 돈으로 각 나라에서 실제로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같은 돈으로 다른 나라에서 장보기’ 콘텐츠를 떠올려 보세요. 어떤 나라에서는 50달러로 몇 가지 물건밖에 못 사지만, 또 다른 나라에서는 일주일치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PPP입니다. 그러므로 국제기구들은 단순 명목 GDP뿐만 아니라 PPP 기준 GDP도 함께 발표해, 실질적인 생활 수준과 국가 간 비교를 보완적으로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영국에서 100파운드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같은 장바구니를 미국에서 채우려면 150달러가 든다면, 이때의 PPP 환율은 £1 = $1.50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 환율과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PPP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바로 ‘빅맥 지수(Big Mac Index)’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팔리는 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죠. 빅맥 지수는 정밀한 경제 지표라기보다는 PPP 개념을 대중 친화적으로 풀어낸 대표적 예시입니다. 이는 PPP 이론의 기초, 즉 ‘환율은 결국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나라 간에 같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판매되는 빅맥의 가격을 일종의 ‘상품 바구니(basket of goods)’ 대리 지표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지수를 통해 각국의 통화가 미국 것이라 생각하면 돼요 고평가(overvalued)되었는지, 혹은 저평가(undervalued)되었는지를 간단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GDP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
경제를 이해하는 데 쓰이는 지표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삶을 비추는 서로 다른 거울입니다. GDP는 경제의 크기를, GNI는 국민이 실제로 손에 쥔 소득을, PPP는 각 나랏돈의 실제 구매력을, 지니계수는 그 소득이 얼마나 고르게 나누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어떤 지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GDP가 높아도 국민의 체감 삶의 질은 낮을 수 있고, 지니계수가 양호해도 절대적인 소득 수준은 낮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표를 함께 보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숫자를 읽는 눈을 가지면, 경제 뉴스 한 줄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지표는 경제를 이해하는 언어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