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벽을 향한 작은 발걸음들 (3)

by Dr Ryan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가진 것에 다른 것들을 더 갖는, 혹은 확장시키는데 유리합니다. 더 많은 기능, 더 큰 용량, 더 복잡한 프로세스. 끝없이 '더하기'를 추구하는 이 거대한 흐름에 반발하여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도 하죠. 가진 것을 덜어내는 것은 더 갖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보람될 때가 있음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린 경영(Lean Management)이 바로 그렇습니다. 린 경영의 핵심은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본질적인 가치만을 남기는 '덜어냄의 미학'에서 시작됩니다. 이 개념은 고객에게 진정으로 가치를 전달하지 않는 모든 것, 즉 불필요한 재고, 쓸데없는 이동, 지루한 대기, 과도한 작업은 모두 낭비라고 주장합니다.


이 '덜어냄'의 철학은 동양의 오래된 지혜, 특히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비움(空, 공)'의 가르침에 닿아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프로세스 내에 '가득 채움'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려 하지만, 린 경영은 그 채움, 그 낭비에 대한 집착을 비워낼 때 비로소 조직이 날렵하고 유연해지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움에서 찾는 가치

린 경영은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 방식입니다. 앞서 살펴본 식스 시그마와 결합하면, 린-식스 시그마(Lean-Six Sigma)라는 확장된 경영 접근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린은 불필요한 낭비를 제거하고 업무 흐름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식스 시그마는 공정상의 변동을 줄여 품질을 향상하는 데 주력합니다.

린 경영의 뿌리는 도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에 있습니다. 그 핵심은 과잉 생산, 대기 시간, 불필요한 운송과 같이 실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소모 자원을 최적화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고, 나아가 수익성 향상까지 목표로 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린 경영은 대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 스타트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널리 채택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며, 공공기관에서는 업무 흐름을 간소화하고 시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적용됩니다.



덜어냄의 원리, 가치를 만드는 흐름


앞서 '덜어냄의 미학'이 린 매니지먼트의 기반인 것을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철학을 실제 조직의 운영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현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린 경영은 단순히 낭비를 줄이자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5가지 핵심 원칙을 통해 조직의 구조적인 변화를 유도합니다.


1. 가치 식별 (Identify Value)


모든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단순히 이윤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객이 진심으로 ‘이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가치로 인식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린 시스템의 첫걸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고객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드백 수집, 사전 설문조사, 그리고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시장 조사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파악된 요구 사항을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겠지요. 고객의 관점에서 무엇이 가치이고, 무엇이 낭비인지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모든 개선의 출발점이자 린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2. 가치 흐름 파악 (Map the Value Stream)


다음 단계는 회사의 전체 흐름을 지도처럼 그려보는 일입니다. 실제 비즈니스 운영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과 업무가 얽혀 있어, 멀리서 보면 꽤 복잡하게 보이죠.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활동과 참여자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이해관계까지 더해지면, 마치 주머니 속에서 꼬인 이어폰 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가치 흐름을 시각적으로 지도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작 단계에서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도식화하면, 업무 흐름 속의 병목이나 불필요한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서상에서 설계된 이상적인 흐름과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흐름 사이의 차이 혹은 괴리를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떤 활동이 실제로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그리고 어떤 활동이 단순한 낭비에 불과한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명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린 시스템이 제시하는 두 번째 핵심 원칙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흐름 생성 (Flow)


가치 흐름을 지도처럼 명확히 그려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그 흐름이 어떤 막힘도 없이 유유히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린 시스템의 진정한 목표는 단순히 낭비를 잘라내는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 전체가 끊김 없이, 물 흐르듯 설계되도록 조직의 모든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음악을 떠올려볼까요? 훌륭한 곡에는 쉼표가 존재하지만, 그 쉼표조차도 전체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선율의 흐름을 지탱합니다. 그러나 프로세스상의 단절은 리듬을 파괴하는 불협화음과 같습니다. 흐름이 멈추는 가장 흔한 요인은 병목과 불필요한 단절입니다. 과도한 승인 절차, 중복된 검토 단계, 또는 부서 간의 정보 전달 지연 등은 모두 가치 흐름을 방해하는 미세한 단절 점들입니다. 단 한 번의 지연은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러한 단절들이 누적될 때 가치 전달의 리듬은 완전히 끊어지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단계 간의 연결 고리를 매끄럽게 다듬고, 업무가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절차를 과감히 단순화하고, 팀 간의 협업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구조를 재설계할 때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실천 방안으로는 셀 방식 생산(Cellular Manufacturing)과 작업 단위 축소(Batch Size Reduction)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셀 방식 생산은 서로 다른 공정의 설비를 한 작업자가 가까운 공간에서 처리하도록 배치함으로써 이동 낭비를 최소화하고 연속성을 확보합니다. 또한, 작업 단위를 작게 나누는 것은 한 번에 대량을 처리하며 발생하는 재공품의 정체와 대기 시간을 줄여줄 수 있겠죠. 결국, 흐름 생성 단계는 프로세스 간의 단절을 줄여,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가 마치 하나의 완성된 유기적인 선율처럼 멈춤 없이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가장 창조적이고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당김 시스템 구축 (Establish Pull)


흐름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언제, 그리고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고방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제품을 미리 생산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판매를 대비해 재고로 쌓아두는 겁니다. 이것을 시장에 제품을 밀어 넣는 푸시(Push) 방식이라고 하며, 수요 예측이 틀릴 때 막대한 재고와 그에 따른 관리 비용이라는 낭비를 낳습니다. 린 시스템은 이러한 방식을 지양하고, 고객의 실제 수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당김(Pull) 방식'을 지향합니다.


당김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면 업무 흐름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뿐 아니라 팀이 과제를 훨씬 효율적으로 완료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명확한 수요가 확인되었을 때만 새로운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생산 주기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이는 자원의 역량을 최적화하고, 실제 필요가 있을 때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시스템을 쉽고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예가 칸반(Kanban) 시스템입니다. 칸반은 보드 같은 시각적 신호를 통해 후속 공정의 필요를 즉시 전달하여, 불필요한 생산이나 병목 효과를 줄이는 시스템입니다. 화이트보드에 해야 할 일, 진행 중, 완료 등등을 적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업무 흐름을 투명하게 유지하면서 흐름을 수요 중심의 리듬으로 재조율할 수 있죠. 지금은 많은 기업에서 업무의 투명성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더는 경력이나 직위만으로는 묻어가기 힘든 시대라는 것이죠. 칸반을 활용하면 단순히 업무를 시각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의 리듬과 협업 방식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각 팀과 개인이 현재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중복 작업이나 병목 현상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업무 흐름이 투명해지면, 구성원들은 고객 수요와 조직 목표에 기반을 둬 스스로 의사결정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린 시스템의 핵심 원칙인 가치 중심 사고(Value-Centered Thinking)와 직결되며, 조직이 자율적이면서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당김 시스템과 칸반은 흐름의 효율성과 고객 중심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도구입니다. 흐름이 막히거나 낭비가 발생할 때마다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춤으로써, 조직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됩니다.


5. 완벽 추구 (Pursue Perfection): 수정, 테스트, 개선, 반복


앞선 네 단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면, 이제 린 시스템의 최종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원칙인 ‘완벽 추구’의 단계로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다. ‘완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완벽의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나 이 단계에서 말하는 완벽 추구란, 흠잡을 데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다듬어가는 태도와 철학을 의미합니다. 프로세스 개선은 종착점이 있는 여정이 아니니까요. 환경과 고객의 요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오늘의 효율이 내일의 낭비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지속적인 개선 문화(Continuous Improvement Culture)를 내재화해야 합니다.


린 경영에서 이러한 완벽 추구의 문화를 실현하는 핵심 이론이 바로 카이젠(Kaizen)과 안돈(Andon)입니다. 카이젠은 ‘개선(改)’과 ‘더 나은 방향, 선(善)’을 뜻하는 일본어로,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작지만, 반복적인 개선 활동을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규모 혁신보다는 일상 속에서 비효율을 찾아내고 즉시 고치는 지속적 실행력을 강조하는 것이죠.


안돈(Andon)은 프로세스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작업을 멈추고 도움을 요청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를 통해 결함이나 낭비가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문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완벽 추구의 본질은 개선의 사이클을 끊임없이 돌리며 조직의 학습 역량과 민첩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습니다. 이 원칙이 조직 문화로 정착될 때, 린 시스템은 더는 하나의 관리 기법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살아 있는 체계가 됩니다. 그리고 조직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며, 진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죠.



시스템에서 태도로


지금까지 살펴본 린 경영의 다섯 가지 원칙은 단순히 생산 현장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기술적 방법론을 넘어섭니다. 이 원칙들은 기업의 모든 활동을 고객 가치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키는 경영 철학이자 직장 문화 혁신의 뼈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린 시스템은 가치 정의를 통해 조직의 초점을 명확히 하고, 가치 흐름 파악을 통해 낭비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흐름 구축과 당김 시스템을 통해 낭비 없는 민첩한 프로세스를 설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는 마지막 원칙인 완벽 추구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린 시스템이 조직에 깊이 뿌리내릴 때, 기업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민첩성의 극대화 및 품질 향상: 낭비와 재고가 제거되고 흐름이 최적화되면서, 조직은 시장 변화와 고객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유연한 체질로 전환됩니다. 핵심 프로세스에 집중하고 낭비를 줄임으로써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고객 경험이 향상되는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주도성 강화 및 만족도 증대: 안돈, 카이젠, 칸반 등의 도구를 통해 현장 구성원에게 문제 해결과 개선의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는 단순히 업무 효율을 넘어, 자발적 학습과 참여 문화를 형성하며 직원들의 동기 부여와 업무 목적의식을 동시에 강화합니다.


최소 자원으로 최대 가치 창출: 투입되는 자원(시간, 인력,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효율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됩니다. 이러한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곧 품질과 고객 대응력으로 전환되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이렇듯, 린 시스템은 조직 전체가 고객의 가치 흐름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개선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 멈추지 않는 순환이야말로 린 경영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궁극적인 경쟁 우위가 아닐까요?



keyword
이전 22화완벽을 향한 작은 발걸음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