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여러분에게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자금 10,000달러가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고 싶으신가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지만, 동시에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기업에 베팅할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펀드를 선택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혹은 새롭게 상장된 회사(IPO)나 가상화폐에 눈을 돌릴 수도 있겠죠. 이 10,000달러,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운용하시겠습니까? 사실 이런 고민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커피 한 잔 값을 아껴 투자하는 소액 투자자부터, 거액을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까지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되니까요.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투자를 통해 이윤을 남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투자는 자선사업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투자 성공률을 약간이라도 올리기 위해 투자자들은 기업의 재무 성과를 비롯한 많은 지표들을 분석합니다.
기업은 자유 경쟁의 틀과 규칙 안에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 (Milton Friedman)의 ‘자본주의와 자유’에 나오는 말이죠.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기존의 방정식과는 다른 생각이 대두되었습니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경영 방식보다 조금 더 장기적인,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에 대한 담론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당신의 기업은 세상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합니까?”라는 질문을 넘어, 기업이 세상을 얼마나 해치지 않고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E: 자연을 생각하다
몇 년 전부터 대부분의 회사 웹사이트에서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이라는 별도 페이지를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기업이 단지 이윤 추구뿐만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자원의 보존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E'의 핵심은 기업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후 변화, 오염, 자원 고갈과 같은 환경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친환경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습니다. 철강왕 카네기나 포드(Ford) 사가 주름잡던 20세기 초반, 대량생산과 산업 중심의 기업 모델이 지배적이던 시대에는 이러한 모토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역설했다면, 대중의 공감을 얻기보단 손가락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서양 문명 속에서는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양 문명에서는 오랫동안 자연을 지배와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인간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부여한 소명이나,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가 자연을 기계론적 대상으로 해석하고 인간을 이성의 주체로 분리한 사고에서조차 엿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무한히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 여겼던 시대에는 환경 보전이 기업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나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이 초래한 심각한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급부상하면서, 기업 역할에 대한 인식도 천천히, 그러나 본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자연은 더 이상 단순히 착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업이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현대 경영에서 ‘E’가 갖는 의미의 핵심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유명 기타 브랜드인 테일러(Taylor Guitars)를 비롯해 일부 악기업체들은 목재 자원의 고갈이라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이들은 상업적으로 버려지는 목재를 재활용하거나,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착수했습니다. 이처럼 친환경 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수익을 넘어서 원자재 공급의 장기적 지속성 확보와 브랜드 친환경 이미지 형성이라는 전략적 가치를 지니게 됐습니다.
바뀐 것은 기업들만이 아닙니다. 소비자들 또한 점점 더 환경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과 제품에 호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격과 편의성이 구매의 주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제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이 얼마나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많은 소비자들이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소비 행위 자체를 사회적 참여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인식의 확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이제 더 이상 수동적인 구매자가 아니라, 가치에 기반한 선택을 통해 시장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그린워싱(Greenwashing), 즉 ‘겉으로만 친환경적인 척하는 행위’ 또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실제로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활동이나 모호한 표현을 통해 자신을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하죠.
이러한 방식은 진정한 감축 노력을 가리며, 투명성과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변화에 있습니다. 기업은 더 이상 “우리는 환경을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 말이 수치로 검증되고, 정책으로 실행되며, 조직문화로 체화될 때 비로소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습니다.
S: 사회를 생각하다
S는 사회(Social)를 의미합니다. 기업이 내부 구성원과 외부 공동체에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영역입니다. 기업은 사회적 존재로서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와 규범을 존중하고, 기업 활동이 전체 사회의 신뢰와 복지에 기여하도록 설계하는 것이죠.
물론 기업이 생명체가 아닌 만큼 ‘사회적 존재로서 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자선이나 일회성 기부 같은 부수적 활동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성은 기업 운영 전반에서 사람과 관련된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체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책임의 구체적 요소는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기업은 법과 계약이 규정한 노동 기준을 지켜야 하고, 정당한 보상과 안전한 근무 환경, 산업재해 예방, 직원 복지 보장 등 기본적인 약속을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성별·연령·인종 등 불합리한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조직 문화, 즉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도 오늘날 기업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비자에 대한 책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과 안전,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예측’을 선호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우리 뇌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론하고, 가능한 한 안정적인 패턴을 찾으려는 강력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인지 영역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하며, 대비하고, 기대를 형성하는 과정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 활동은 원시 시대부터 생존에 필수적이었고, 현대 사회에서는 복잡한 사회생활과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불확실성은 본능적인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내일 당장 큰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투자를 망설이게 만들죠. 반대로 예측 가능성은 심리적 안정과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ESG와 같은 지속 가능한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SG는 기업이 10년, 2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장기적인 예측 가능성을 높여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조금이라도 확실한 미래에 베팅하고 싶은 존재인 셈입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서비스가 어떤 경험을 줄지, 기업이 어떤 태도로 움직 일지를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예상하고 싶어 합니다. 신뢰하는 브랜드를 반복적으로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브랜드가 예측 가능한 품질과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 보장, 그리고 개인정보·데이터 보호는 단순한 기술적 의무를 넘어, 소비자에게 ‘이 기업은 예측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작은 결함 하나가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단 한 번의 정보 유출이 기업의 신뢰를 크게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데이터 보안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 기업의 철학과 태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제품의 안전성, 품질 보증, 데이터 보호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놓인 신뢰의 기둥입니다. 이 기둥이 흔들리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역시 함께 약해집니다. 소비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동이야말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토대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자신들의 울타리 밖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중요합니다. 기업 활동이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긍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키우고 부정적인 요소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꾸준히 성찰하는 태도 역시 S의 중요한 축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부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활동이 ‘위선’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책임은 완벽함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보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기업이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이것도 역시 소비자들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