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좋은 이유

결국 이곳에 사로잡혔다.

by Ryan mn

아내와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매번 시간이 날 때마다 일정에 맞춰서 갈만한 여행지를 찾곤 했다. 징검다리 휴일이 있을 때는 하루, 이틀 연차를 쓰고 3박 혹은 4박으로 갈 곳을 찾았다. 여름휴가로는 일주일 이상을 갈 여행지를 찾았다. 우리는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었고, 그날을 기다리며 삶의 원동력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생한 후로는 활동에 제한이 되었고, 여행지 또한 국내로 국한되었다. 우리는 안식처를 찾아야 했고 그렇게 찾은 곳은 제주였으며 시간이 생길 때마다 제주를 찾았다. 제주도를 지난 2년간 5차례 여행했다. 처음은 20년도 여름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했던 우리가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을 취소한 후 찾았던 대안이었다. 6박 7일간 제주도에만 머물렀다. 성산에 위치한 숙소에서 쭉 있으면서 제주를 여유롭게 즐겼다. 여유로움과 익숙함이 가져오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후로 반복적으로 제주를 찾았다. 21년 2월에는 제주에서 스냅 웨딩촬영을 하였고, 21년 6월에는 제주 신혼여행을 왔다. 9월에는 늦여름휴가로 제주를 왔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2년 2월에는 아내의 생일파티로 제주를 왔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올 때마다 해외여행 이상의 만족감을 얻고 갔다. 모든 것이 낯선 해외와 달리, 제주에서는 여행 내내 마음이 편했고 먹는 음식마다 입맛이 맞았으며, 다시 올 수 있는 여행지란 생각에 제주에 머무는 동안 온전한 휴식이 가능했다.

심지어 21년 9월 방문했던 숙소에는 22년 2월에 재방문하였다. 개인이 운영하는 숙소인데 단순히 숙박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공간을 체험하기 위해 만든 장소라고 느껴졌다. 요즘에는 흔히 그것을 감성 숙소라고 부른다. 지난여름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 순간을 이어가려고 다시 왔다. 시간이 있을 때 비교적 쉽게 올 수 있는 여행지라는 점에서 해외 보다 이곳 제주는 강점이 있다. 작은 행복이지만 반복되고 쌓여가면 그것이 축적되어 나도 모르는 순간에 크게 돌아온다. 제주는 그런 곳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숙소 내부로 들어온 순간 여러 감각이 활성화됐다. 촉각을 시작으로 시각, 후각 그리고 청각이 자극되었다. 늦은 여름이었지만 온돌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함이 여행객의 마음을 녹였다. 적절한 습도와 따뜻한 온도는 계절을 뛰어넘어 우리를 무너뜨렸다. 현관을 돌아 들어서면 작은 부엌 싱크가 하나 나타나고, 그 위로 보이는 통창을 통해 펼쳐지는 아름답고 광활한 제주바다가 숙소로 한 걸음에 달려들어온다. 이런 광경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제주 바람에 선율의 발맞춰 춤을 추는 제주의 바닷물결이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진격한다. 그렇게 감격에 젖어들 무렵이면 코끝으로 스며드는 제주의 향기가 느껴진다.

첫 방문과 두 번째 방문 동안 숙소 사장님께 향의 정체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상태로 놔두고 싶기도 했다. 후각에 퍼지는 이 자극을 느끼면 제주의 감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정체를 확인하고 우리의 일상으로 그것을 들여오는 순간, 제주에서만 맡았던 기억이 옅어질까 하는 아쉬움을 방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묻지 않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 아내의 제주 생일파티 여행 중에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였는데, 제주도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창문을 내리며 같은 향기를 맡았던 것이었다. 우리는 의심했다. 혹시 우리의 옷에 감성 숙소의 향이 배어서 창문을 내린 순간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기에 향이 첨가되고 그것을 맡게 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시시때때로 반복되었다. 이제는 우리끼리 이것은 제주 산간지방에서 2월경 온도가 영하와 영상을 넘나들 때 발생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실제로 2년간 5차례 제주에 왔지만 그런 향기를 맡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후각에 대한 서술이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어간다. 촉각, 시각, 후각에 취해있을 때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청각이었다. 제주를 담은 통창을 지나면 방 끝에 아치형 입구가 하나 나온다. 도어가 없고 커튼으로 가려진 그곳으로부터 은은하게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라라랜드의 배경음악이 벽면에 부착된 시디플레이어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시선을 좌측으로 돌리면 욕조가 보이고, 욕조 위로는 제주 바다가 보인다.

우리는 이제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리고 서로 간의 합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아, 이 숙소에서는 정말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겠구나. 결국 이곳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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