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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u Dec 31. 2020

# 나의 넷플릭스 시청 연대기

프롤로그 

거의 일 년 만에 브런치에 로그인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고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게으름에 밀렸던 것 같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는 마음만 있고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공지를 보고 불씨를 댕겼습니다. 쓰고 싶은 소재들이 몇 개 떠올랐고 일단 하나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적어 나갔습니다. 넷플릭스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인상 깊게 본 콘텐츠들을 하나씩 떠올려 봤습니다. 하나를 보고 또 다음 하나를 골라가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써야 할 대상이 생기니 쓰고 싶은 마음이 실천으로 옮겨졌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쓰다 보니 처음에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내가 재미있게 본 콘텐츠들에 대해 회상하며 써나가니 재미있었습니다. 공모전의 마감 시한까지 정해져 있어서 오랜만에 몰입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계속 써야 하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활동적인 브런치 작가가 되기를 스스로 기대해 봅니다. 



   1. 간만 보려 했다가 카운터 펀치를 당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

나는 흔히 말하는 얼리어답터(Early-Adopter)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되어도 나는 그 구매자들이 내놓는 중고폰에 더 관심이 많다. 이게 꼭 내가 '기계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성격상 뭔가 검증이 되지 않고 지금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데 구매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더더욱 여가를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의 경우 내가 납득이 될 만큼의 만족이 되어야 한다. 영화 보는 것을 아주 좋아히지만 한편 보기 위해 만원 쓰는 데는 까탈스러운 편이다. 그런 이유로 건별 과금을 하는 서비스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내가 꼭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서는 기꺼이 지불하지만 매월 보험료 나가 듯이 일정하게 결제되는 정액제 서비스에는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글로벌 빅뱅을 일으키고 있는 ‘어메이징' 넷플릭스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시그니쳐' 오리지널 시리즈 격인  <하우스 오브 카드>를 이전에는 넷플릭스 가입을 하지 않았어도 볼 수 있었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포스터 상단에 빨강 N 이 붙어있다)의 경우는 오로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서비스 안에서만 볼 수 있다. 즉 넷플릭스 월정액 이용자들만을 위한 독점 콘텐츠인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TV 채널 여기저기 재핑 하다가 본 방송 또 보고 또 보고 하듯이 볼 수 없다. 이런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을 국내 한 통신사의 IPTV VOD 서비스로 볼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나름 유명 '미드'라고 하는 <CSI 시리즈>나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프렌즈> 등을 보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맞겠다. 개인적으로 시리즈물 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TV 앞에서 오래 집중하지 못해서 그런지 2시간 남짓이면 끝나는 영화가 좋기도 하거니와 영화라는 장르가 드라마보다는 작품성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생각했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한 드라마였다. 콘텐츠에 대한 개인의 취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 없다의 논리로는 설명이 어렵다. 나의 경우는 드라마든 영화든 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리 "에이~ 말도 안 돼"라는 식의 설정이어도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을 법한 범위에 있는 픽션이라면 인정이 된다. 그래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나의 '개취'가 너무 원사이드로 편향되어 있어서 선택의 폭이 많지 않은 편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역시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1회 무료보기가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뒤로는 멈출 수 없었다. 1회 이후 회당 건별 결제 또는 마지막 회차까지 패키지 결제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주저하지 않고 나머지 전회차 결제를 해버렸다. 드라마 시리즈 1화를 보고 나서 캐스팅, 스토리, 연출에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매료된 적은 없었다.


정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를 각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의 워싱턴 정가 즉 미국 대통령제라는 정치 체계를 큰 골자로 하여 권력의 하이에라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는 이들의 치정극을 완전히 새로운 픽션으로 그린다. 특히 주연 프랭크 언더우드 역의 케빈 스페이시와 그의 아내로 등장하는 로빈 라이트의 캐스팅은 극 전체를 책임지고 끌고 가는 강력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더 높은 권력으로의 욕망은 멈추지 않으며 그 앞을 막는 모든 것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제거된다.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당선인이 당시 당 원내대표 직을 맡고 있는 프랭크에게 보장했던 실질적인 이인자인 국무장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임명해버리게 되면서 권력욕을 향한 프랭크의 복수극이 시작된다. 시즌1은 자신의 뒤통수를 친 대통령과 그 주변을 조종하여 부통령 자리까지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어서 바로 시즌2를 예고하게 되는데 미국의 대통령제도에 따라 대통령 부재 시 부통령이 바로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되어있다는 구조를 알면 이후 시즌의 전개는 프랭크가 대통령 자리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 예상이 된다. 또 그 이후 시즌 역시 미국의 대통령 연임제에 따라 당연히 재선을 노리는 프랭크의 욕망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신봉자들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오바마 대통령까지 트윗으로 열렬한 지지를 보낸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열성 팬이었으니 대단한 작품이다.


이미 시즌6까지 이어진 <하우스 오브 카드>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시즌이 길어지고 소재가 미국의 정치적 상황으로만 다뤄지다 보니 초반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결정적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원탑 스트라이커이자 대체 불가한 키맨 케빈 스페이시가 '미투' 스캔들로 중도 하차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 대통령 역할인 프랭크 언더우드가 배우 케빈 스페이시에 빙의되어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맡게 된 건 아닌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프랭크 언더우드 = 케빈 스페이시'의 이미지는 영원할 것 같은 기분이다. 케빈 스페이시 없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대통령 없는 미국이다.



 2. 글로벌 클래스의 먹방을 보다  <길 위의 셰프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신규 시즌을 보기 위해서 넷플릭스 월정액 멤버십에 드디어 가입을 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만 생각하느라 다를 콘텐츠를 둘러볼 새가 없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가입을 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대부분의 시리즈 물이 신규 시즌이 나오기까지는 1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새 시즌만 목 빠지게 기다리며 다른 시리즈 물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특별히 내 입맛에 맞는 콘텐츠는 찾지 못했다.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너무 어두웠고(대부분 마약 범죄 소재다), 또 하나의 시그니쳐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는 나의 '개취'와 너무 상반된 소재(에이~ 말도 안 돼 를 뛰어넘는 스토리)라서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뭘 봐야 할지 기웃거리는 시간이 더 많은 적도 있었다. 월정액 가입비만 내면 넷플릭스 안에 모든 콘텐츠를 다 볼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 안에서 내 입맛에 맞는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시리즈가 아닌 한 다큐멘터리가 눈에 들어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길 위의 셰프들>이다. 나는 손수 음식 하는 것도 좋아해서 먹방을 자주 보는 편이었다. 숨은 맛집을 찾아내어 실물보다 더 맛깔나게 연출해서 그 프로그램을 보는 와중에 냉장고를 뒤지거나 배달을 시키게 만든다. 주워들은 얘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시청자들은 다른 어떤 소재 보다 음식을 다루는 소재에 더 집중해서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고 한다. 예를 들면 S사의 '달인' 프로그램에서 여러 분야의 달인을 소개하지만 음식 분야 코너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달인' 프로그램도 먹방 소개 비중이 높다.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 먹방 전담 셀럽들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웬만한 유명세를 탄 업소들은 방송 나간 캡처 사진과 출연진 싸인을 매장 여기저기 자랑스럽게 걸어 둔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미 먹방에서 다녀간 매장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먹방에 출연한 것 자체가 맛집으로 검증이 된 셈이라서 실패 확률을 줄여준다고 인식된 듯하다. 이제는 연예인, 셰프, 음식평론가 그리고 이 세 분야를 넘나드는 우리나라 먹방계의 일인자가 방문한 매장은 방송과 동 시간으로 바로 검색어에 오른다.


어느 때부터인가 먹방 프로그램들이 특정 매장을 너무 홍보성으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에 식상했고 차별화를 둔답시고 예능을 조합하여하는 방식이 조잡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어쩌면 먹방에 출연한 매장들이 그렇지 않은 곳 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먹방 회의론자가 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먹방 <길 위의 셰프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길 위의 셰프들>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각 지역 노점에서 파는 음식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각 지역의 'Street Food'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 나라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길 위의 셰프'는 대부분 시장에 있었다. 지역마다 그런 길거리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근거와 오랜 기간 시장에서 자리 잡은 음식 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길 위의 셰프들은 역사 깊은 서울 종로 광장시장에 있었다. 시장 먹자골목에 있는 칼국수 집과 녹두 빈대떡 집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편'은 절박한 심정으로 시장 한편에 매대를 마련하고도 자리잡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결국 칼국수집을 업으로 삼게 된 사장님의 사연을 메인으로 끌고 간다. 처음에는 그분도 시장에서 음식장사를 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사업이 망하고 다른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 역시 빚만 늘고 결국 접어야 해서 시장까지 오게 된 사연은 비록 그 사장님 뿐만은 아니었다. 옆 집에 위치한 40년 전통의 녹두 빈대떡집 젊은 사장님 역시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모여든 곳, 시장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같은 골목 안에 수십 개의 칼국수 집과 빈대떡 집이 늘어선 곳에서 그들만의 방식과 노하우로 단골을 만들고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이어 가게 된다. 본인들의 뜻과 의도하지 않게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 잡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칼국수집 사장님은 "장사를 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할 수 있다"는 정말 단순하지만 중요한 삶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길 위의 셰프들>은 한국, 태국, 대만 등 아시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에피소드가 분류되어 있다. 드라마 시리즈 물이 아니라서 1회부터 볼 필요 없이 '한국 편'을 먼저 보고 나서야 제일 위에 있는 에피소드 '태국 편'을 이어서 보게 되었다. 어쩌면 태국 편에 등장하는 '길 위의 셰프', 제파이가 <길 위의 셰프들> 프로그램 전체를 대표하는 주인공으로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그녀는 길 위에서 음식점을 하면서 '미슐렝 스타'를 수여받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슐렝 가이드에 소개된 맛집이 아니라 실제로 스타를 받은 음식점인 것이다. 나도 태국 여행을 꽤 여러 번 다녀와서 태국의 노점 음식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아서 그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여행 내내 거의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끼니를 해결했으니 정말 노점 음식점이 없었다면 어디서 먹었을지 모를 정도로 'Street Food'는 일상에 깔려있었다. 제파이의 대표 메뉴이자 태국의 시그니처 음식인 '똠양꿍'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제파이 역시 우리나라 종로시장 사장님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길거리 음식 장사의 길로 들어선 사연이 깊었다. 가난한 빈민촌 생활을 영위하다가 간신히 봉제 일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그마저 큰 화제로 인해 모아둔 모든 재산을 잃고 만다. 시내 길거리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직접 '웍'을 잡고 요리를 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녀 역시 그녀만의 철학을 가지고 요리를 한다고 했다. "좋은 식재료에 투자하면 음식 값이 비싸지더라도 그만큼 좋은 음식을 손님들께 낼 수 있다. 그러면 손님들은 계속 찾아오게 될 것이다". 정말 너무 명료하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렇듯 <길 위의 셰프들> 은 각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는 먹방이 아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그 지역 안에서 평범한 서민들이 즐겨 찾는 길거리 음식 문화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또 그 안에서 실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셰프들을  소개하면서 단순히 그들의 특별 메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들이 거리의 요리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삶의 철학과 자신들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보여준다. 해외 유학파 셰프들이 나와서 15분 만에 '냉장고 요리'를 하는 먹방이나 먹방계의 대부가 망해가는 업소를 선별하여 코칭해주는 먹방까지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비주얼에 치우친 자극적인 먹방에만 익숙해져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주말에 가족들과 종로 인근 산에 올랐다 오는 길에 오랜만에 광장시장에 들렀다. 먹거리 골목은 '코로나' 확산이 계속되고 있는 시기였음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골목 중간쯤 가다 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에 발길을 멈췄다. <길 위의 셰프들>의 칼국수 집이었다. 주인공이었던 사장님의 인상이 너무 뚜렷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나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가게 안에 넷플릭스 <거리의 셰프들>에 출연한 사장님의 캡처 사진이 걸려있었다. 또 넷플릭스에 출연한 가게이다 보니 손님 중에는 외국인(금발의 서양 사람)도 있었다. 글로벌 먹방에 소개된 셰프의 요리라서 그런지 산에 다녀와서 허기가 져서 더 그런지 칼국수 한 젖가락에 김치 한 조각 얹혀 먹은 맛은 미슐렝도 저리 가라다.     


3. 청출어람 청어람 <60일, 지정 생존자>

또다시 나만의 다음 작품을 선정하기 위한 장고의 시간을 거쳤다. 넷플릭스 UI 가 그렇듯 바둑판처럼 콘텐츠 포스터가 화면을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마우스를 상하좌우로 스크롤해야만 겨우 '내가 찜한 콘텐츠', '신규 콘텐츠', '인기 콘텐츠' 등등 주요하게 볼만한 작품들로 압축이 된다. 정말 우리는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아무것이나 골라 봐도 될 듯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바쁜 일상 속에 시간 내어 리프레쉬할 만한 콘텐츠를 그냥 막 골라 볼 수는 없다. 바둑판 UI를 훑어 나가다가 제목은 같지만 버전이 '미드' 버전과 우리나라 버전 두 개가 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발견하게 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정 생존자>와 이를 우니라라 버전으로 리메이크 한 <60일, 지정 생존자>는 <하우스 오브 카드> 이후 완주한 드라마 시리즈이다. 먼저 오리지널 작품인 '미드' <지정 생존자>부터 시작했다. 원작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도 했지만 솔직히 해외 원작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리메이크하여 망작이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게다가 <지정 생존자>는 매회 블록버스터급 액션으로 전개되는 정치 드라마이기 때문에 조금만 어색해도 망작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 이후 시리즈 물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던 나에게 <지정 생존자> 시즌1의 첫 에피소드에 또다시 카운터 펀치를 당했다. 첫 회 초반부에서 미의회 국회의사당을 폭파시켜 버린다. 그 상황도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하여 그의 정부 내각 인사와 국회의원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테러가 발생한다. 실제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나라의 행정부와 입법부가 통째로 날아간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역시 내 '개취'를 또 한 번 저격할 만한 자격이 되었다. "에이~ 말도 안 돼" 하면서 실제 있을 법하지 않는가.     


오리지널 <지정 생존자>는 미국 헌법에 따라(실제로 대통령직 승계 제도로 존재하는 법이다) 대통령이 의회 연설 시 내각 구성원 중 1인을 지정하여 만약의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대통령과 같은 장소에 있지 않고 백악관에 별도로 대기한다는 상황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주인공은 미드 <24> 의 주연 키퍼 서덜랜드가 승계 서열 최하위 교통부 장관에서 갑자기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원탑 스트라이커 역할을 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이 대통령 역할이 가진 그 존재감만으로도 주연 배우 캐스팅이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 대재앙 급의 국가비상사태 와중에 학자 출신 교통부 장관이 군부를 통제해야 하고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주위에 몇 남지 않은 믿을 만한 사람들과 고군분투한다. 주요 스토리는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을 한 방에 날려버린 배후의 음모세력과의 끝없는 추격전으로 흘러가지만 야망이 없는 평범한 학자가 대통령 직을 맡게 되면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진솔한 마음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그린다. 역시 블록버스터급 '미드' 답게 총격전이나 CG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에이~ 말도 안 돼"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시즌1 마지막 회에서는 시즌2를 예고하며 완전한 권성징악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미 악의 실체가 드러나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해서 그런지 시즌2의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접고 말았다. 시즌1의 성공에 이어 시즌2까지 끌고 가야 하는 작가의 고민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시즌1부터 함께 한 비서실장과 수석보좌관의 '밀땅' 로맨스도 시즌2에서는 너무 뜬금없고 '닭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정 생존자>는 소재 자체부터 블록버스터 제작 규모와 이를 끌고 갈 강력한 캐스팅의 전제 조건을 충실히 갖추었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진가를 확일할 수 있는 드라마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제작이 가능할까? 아니 제작은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볼 만하게 만들 수 있을까? 첫 회부터 국회의사당이 폭파해야 되는데? 또 한 번 "에이 ~ 말도 안 돼" 그랬지만 충분히 가능할 법은 했다. 우리나라 리메이크 버전인 <60일, 지정 생존자>는 오리지널 원작을 보고 나서 한참 후에서야 볼 수 있었다. 반신반의 한 마음으로 1화 보기를 시작했다. 도대체 원작의 스케일을 어떻게 따라갈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솔직히 정말 놀라웠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1화 초반부의 국회의사당 폭파 장면이 예상을 뒤엎고 너무 리얼리틱 해서 실시간 뉴스 현장 보도를 방불케 했다. 어쩌면 앞으로 이어질 회차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씬이 었으니 제작진이 많은 공을 드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캐릭터 대통령 권한대행 역의 배우 지진희의 무게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주인공 키퍼 서덜랜드의 발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한국어 자막 서비스가 깔린다고 해도 너무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리는 듯 한 말투다) 그에 반해 지진희의 중저음 톤의 또박또박 한 목소리가 상당히 대조적이고 주변 인물인 비서실장 역의 손석구와 수석비서관 역의 정유정의 '케미'도 원작을 능가한다. 원작이 전 세계 테러와의 전쟁을 하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어떠한 음해 세력이 등장해도 그럴만하게 보인 다지만 우리나라를 이 정도 스케일로 한 나라에 '빅엿'을 먹일 만한 '빌런'이 누가 있을까? 궁금했으나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 소스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마르지 않는 존재, 북한이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배후의 음해 세력은 북한이 아니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사실 속에서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 상황을 충분히 현실적으로 각색이 되었다. 보수와 진보 진형으로 양극화된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도 잘 묘사되어 한국 실정에 맞게 제대로 탈바꿈 한 웰메이드 드라마로 등극했다. 청출어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원작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고 오히려 우리 버전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였다.   


어느덧 드라마 시리즈물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영화만을 고집해오던 내 취향이 시리즈 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블록버스터급 시리즈들의 소재와 스토리텔링이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몰입도를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국내 TV 채널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대부분 여심을 저격하여 꽃미남 배우를 앞세운 로맨스 장르가 대세를 이룬다. 물론 그 대부분 내가 선호하는 장르와 스토리가 아니다. 어쩌면 나도 드라마 시리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소재의 시리즈가 많다는 사실에 또 매 에피소드가 영화와 같은 연출과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상이 진화하는 만큼 우리의 눈높이도 그에 맞춰 높아지는 만큼 콘텐츠의 제작 '스펙터클'은 무한하게 확장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4.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세상을 바꾸려 노력한 인생 멘토들의 스토리

<파이널 미션>  <인사이드 빌 게이츠>  <플레이북:게임의 법칙>  <시민 노무현>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신규 콘텐츠 알림을 통해 찾아왔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내 취향은 아니었으나 최근에 서비스 한 체스게임 소재 드라마 <퀸스 겜빗>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을 꽤 흥미롭게 봤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새로운 소재,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처음부터 완주할 시리즈를 고르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일단 1화를 보고 난 후 '물타기' 하는 습관도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블록버스터 시리즈들 틈에 보석 같이 박혀있는 단편 물들을 찾아보면서 재미를 넘어 보람찬 기분이 들었다. 

<파이널 미션>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1년의 날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8년의 기간 동안 오바마 행정부에서 함께 한 국무위원과 보좌진들을 통해 재임기간 중 진행한 주요한 외교 사안들을 돌아본다. 국제적으로 공통 과제인 기후변화와 빈곤 문제 등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과 외교정책 수립 과정을 아주 밀착 취재 방식으로 보여준다. 미국 패권주의를 탈피하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는 모습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서는 볼 수 없었다. 흑수저 출신의 인권 변호사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철학과 다 같이 함께 잘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들려는 그의 리더십을 아주 가까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재선에 실패한 現 대통령과는 얼마나 상극으로 상반된 인격과 세상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큰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차이 나는 클래스'의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인사이드 빌 게이츠>는 내게 빌 게이츠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 중 한 명이지만 그는 그냥 돈만 많은 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소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퇴임 후 사회재단을 설립하여 그가 누리고 있는 부의 일부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그만의 방식으로 환원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단순히 현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한다. 빈민국의 심각한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식수 오염으로 기형아 출산과 각종 불치병이 유전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식을 도입한다. 식수 오염의 주요 원인이 사람들의 배설물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인분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환해주는 장치를 개발해낸다. 아무리 그가 온 세상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Windows'를 개발한 컴퓨터 천재라고 해도 사람 똥을 물로 바꾸는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 모든 아이디어가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재단에서 함께 연구하는 그의 참모들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총동원하여 최선의 방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모습은 가히 존경할만했다. 특히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 책을 잔뜩 싸들고 한적한 시골 오두막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그가 그냥 돈 많은 부자가 아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이 시대 진정한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영상 속 인터뷰 중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의 뇌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재벌 회장님들 중 이런 분이 있을지 싶다. 


<플레이북:게임의 법칙>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보다 더 유명한 명장 감독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현재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구단의 호세 무리뉴 감독의 스토리가 가장 흥미로웠다.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꾸었으나 선수로 성장할 기량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코치의 길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처음 맡게 된 포르투갈 최약체 팀이자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는 '외인구단'  FC 포르투를 리그 최정상에 올려놓는 일화를 소개한다. 선수들이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하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단결하는 팀으로 성장시킨다. 특히 포르투갈 리그를 우승으로 이끌고 유럽피언 리그에 진출하여 대진 추첨을 하는 날, 그 당시 유럽 최강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매칭 되기를 희망한다. 모든 팀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첫 라운드에서 만나기를 꺼려하는데 그는 팀 선수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도록 분위기를 돋운다. 그 이유가 재밌는데 먼저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 두고 심지어 그 상황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미 원하던 일이었으니 좋은 결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이 비켜갔으니 그걸로 운이 좋게 따랐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촌철살인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면 어떤 경우라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는 강한 신념을 그는 믿었던 것이다. FC 포르투는 무리뉴 감독의 주문에 따라 밑져야 본전이라는 뚝심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그 기세를 몰아 유럽피언 리그 챔피언쉽을 따낸다. 그 후 그는 유럽 유명 구단의 러브콜을 받는 스타 감독으로 승승장구한다. 코치로서 그의 철학은 "나는 축구 선수를 코치하지 않는다. 나는 축구팀을 코치한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내게 다시 한번 팀워크가 전부임을 일깨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시민 노무현>은 바로 엊그제 넷플릭스 최신 콘텐츠 알림을 통해 보게 되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팬이었다. 그렇다고 열성적이고 맹목적인 '노사모' 회원은 아니었다.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그의 정치 철학을 지지했고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도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인간미에 진정성을 느꼈다. 정치인들 중에 인간적으로 좋아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시민 노무현>은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그의 귀향 생활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서 낙후된 시골 마을부터 정비하여 지역 간 균형을 맞추고 힘겹게 지내는 농촌 서민들이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쓴다. 또 그를 보러 주말마다 모여드는 일반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세상 사는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어떤 전직 대통령들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하긴 전직 대통령 대부분 감옥에 수감되어 있거나 퇴임 대통령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당연하겠다. 요즘같이 어수선 한 시국 속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마당에 <시민 노무현>은 정말 비현실 속 픽션과 같은 느낌이었다. 참 시의적절한 타이밍의 넷플릭스 신규 콘텐츠 등록에 경이를 표한다.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뭐 볼까 하는 고민은 일상이 되었다. 새해에도 무수히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최근 내가 좋아하게 된 김보통 작가의 웹툰 원작 <D.P 개의 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고 또 다른 대히트 작품인 <킹덤>의 새로운 시즌도 기대된다. 어느 날 문득 넷플릭스 메인 화면을 보면서 어렸을 적 내가 상상했던 TV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동네 비디오 가게가 성행하던 때였다. 최신 영화는 먼저 대여나간 비디오 테이프가 반납이 되어야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를 대기하면서 우리 집 TV에 비디오 가게에 있는 영화들이 다 복사되어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UI까지도 생각했었는데 그게 마치 현재 넷플릭스 메인 페이지에서 보이는 콘텐츠들의 이미지 나열 방식과 흡사하기까지 하다. 내가 이미 그런 세상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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