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와인을 마셨다고 …

김부장 보면서 와인이 땡겼다

by Jinu

다시 김부장 이야기다.

김부장은 솔직히 소주를 땡기게 하는 드라마다.

특히 김부장이 쓸쓸하게 혼자 소주를 홀짝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나 역시 혼술을 즐겨하는 편이지만 극 중 김부장의 단골인 ‘똑딱이’ 같은 도심 속 골목 노포에서 혼자 소주 마시는 모습은 정말 쓸쓸하게 보인다.

드라마 내용 중 김부장이 지방 공장으로 좌천되어 기러기로 짠하게 지내는 장면이 있다. 그 와중에 공장 작업 반장 격으로 등장하는 정은채 배우와 공장 부지 내 야외에서 삼겹살 불판을 세팅하여 소주 한잔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지방으로 좌천되었었지만 산전수전 겪은 나름 짬밥 높은 본사 출신이어도 분위기가 많이 다른 새 조직의 텃새를 뚫고 발을 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봐도 드라마니까 재미 요소를 많이 넣어 순화시킨 것 뿐이지 현실 텃새의 드라이 함은 더 할 것임을 잘 안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의 실세에게 한잔 하자고 제안하는 그 용기도 현실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부장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자~ 밥 먹자~!! “라고 소리치며 작업장을 휘어잡는 작업반장 정은채 배우를 자신의 맞수가 될 만한 실세로 지목하고 같이 한잔 하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본사에서 여럿 좌천된 보직자들을 경험해 온 공장 실세의 견제는 만만치 않았고 결국 조촐하게 공장 구내식당 재료들을 조합하여 야외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역시 작업반장 정은채는 맥주 글라스에 소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포스로 김부장을 기선제압 하는 연기도 압권이다. 결론은 김부장의 의도대로 작업반장에게 묻고 싶었던 조직장악의 ‘위대한 영도력’도 얻지 못하고 좌천된 본인의 현실적인 처지에 대해 신랄하게 ‘야지’만 먹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삼겹살이 땡겼고 술은 와인이 땡겼다. 집에서 삼겹살을 자주 먹는 편이어서 항상 같이 마실 와인을 고민한다. 삼겹살은 화이트나 레드 둘 다 어울린다. 화이트 중에서는 너무 산미 있는 쇼비뇽블랑 보다는 더 드라이하고 바디감 있는 샤도네이가 기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레드는 뭐든 좋을 거 같다. 솔직히 ‘쏘맥’도 좋지 뭐…


공장이어도 야외 좌판에서 캠핑 스타일로 구워 먹는 삼겹살은 꿀맛일 것이다. 그 자리에는 화이트보다는 레드가 어울린다. 일단 화이트는 시원하게 칠링을 해야 해서 번거롭다. 레드 와인이라면 무난하게 카베넷 쇼비뇽이나 멜롯이 적격일 듯하다. 그리고 잔이 꼭 있어야 한다. 예전에 ‘와잘알’ 친구와 콜키지 프리가 되는 가게들을 악착 같이 골라다닌 적이 있다. 음식이 너무 맛있지만 만약 콜키지가 적용 되지 않는 가게라면 사장님께 술과 잔은 우리가 알아서 지참하겠다고 허락을 받고 가서 마시기도 했다. 난 아직도 그 당시 사용한 여성용 메이크업 파우치를 개조해서 만든 와인잔 전용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와인잔 보다 다리가 짧은 꼬냑잔 스타일 잔으로 다이소에서 구비하여 총 4개가 들어갈 수 있게 제조했다. 회사 일을 이렇게 했으면 벌써 임원일 것이다.


레드와인과 내가 준비한 전용 잔을 들고 공장 좌판에서 삼겹살을 마시면 정말 ‘간지’가 날 것 같다. 분위기는 하소연하면서 마시는 소주가 어울릴 듯 하지만 장소는 협소해도 그 자리에 와인이 있다면 뭔가 진취적인 앞날에 대한 얘기를 할 것만 같다. 와인은 혹시 모르니까 레드 두병을 준비 두어야 한다. 하루 스트레스를 삼겹살에 소주 한잔 들이마시고 ”캬~“하면서 푸는 맛도 있겠지만 와인 한잔 건네는 자리는 왠지 모르게 동맹을 맺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와인은 같이 마시는 사람을 위해 그만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날 안주에 따라 화이트인지 레드인지 와인잔은 준비 되었는지 그 상황과 어울리는지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같이 마실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나의 성의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부장이 그 자리에 와인과 잔을 준비해서 나타났으면 공장 실세 쎈캐 작업반장 정은채라도 그 포스에 ‘야지’를 주지 못했을 것이며 같이 와인 마시면서 인생 2막을 논하며 취했을 것이다.


소주나 맥주 보다 와인이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려면 준비를 해야한다. 나는 와인을 종이컵에 따라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다른 술을 사러 나갈 것이다. 와인은 그래서 내가 꼭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들과 마셔야 그 진가가 배가 되는 효과기 있다. 내가 준비한 만큼 만족스럽고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부장과 작업반장 둘이 처음 마주하는 술자리인 그 장면에서 더더욱 와인이 떠올랐다. 공장 야외 부지에서 삼겹살에는 당연히 소주가 적격이겠지만 현실 속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한다면 나는 와인을 준비하여 첫 술 자리의 긴장감과 경계심을 낮추려고 했을 것 같다.

오늘 토요일 저녁에 둘째가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하여 집에서 삼겹살에 당연히 와인을 깠다. 그것도 처음 마셔보는 한국 와인. 국내 충북 영동에 위치한 산막와이너리의 레드와인 ’비원‘이라는 와인을 마셨다. 이제까지 국산 와인은 복분자주 이거나 산머루주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와인으로 취급도 안했는데 ’비원‘을 마시고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이건 뭐지 피노누아인가? 역시 편견과 선입견은 금물이다. 직접 경험해보는게 진리일 것이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삼겹살과 처음 맛보고 깜놀한 국산 와인을 마시면서 김부장을 다시 정주행 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나저나 와인 마시면서 글을 쓰니 횡설수설 하게 된다… 언제부터 와인 좀 마셨다고 …김부장과 와인이 뭔 관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