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늦추는 삶
기다리던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새로운 시즌이 공개 되었다. 할리우드 키드에게 넷플릭스는 어쩌면 꿈에 그리던 신세계였고 지금은 너무나 일상적인 루틴이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아무 때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다니 아직도 그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유튜브와 더불어 전세계 TV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넷플릭스가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 언저리에 있는 내가 체감하기에도 너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이라서 그 뒤를 이은 경쟁 플랫폼들 다 합쳐도 따라 잡지 못할 판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 뿐 아니라 미디어 생태계를 뒤 바꾼 넷플릭스를 통해 나 역시 이제껏 알지 못한 분야에 새롭게 관심을 갖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F1 : 본능의 질주> 라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 아마 F1 이라는 자동차 레이스는 우리나라에 그 많은 수백개 채널 중 어디서도 중계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일 것이다. 나 역시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거니와 그 종목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없을 뿐더러 중계 자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심코 1회 클릭한 이후 기존 시즌까지 전 회차를 몰아 보았고 드디어 올해 시즌 8까지 공개되었다.
총 10개 팀에서 2대씩 출전하여 시속 300키로 이상으로 20대 차량이 전 세계 서킷에서 레이스를 펼친다. 우리가 대부분 봐온 영상은 1,2,3등으로 들어온 드라이버들이 포디엄에 올라서 서로에게 샴페인 터트리는 세러머니를 하는 모습일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자동차 경주에서 가장 빨리 달려서 들어오는거 보는게 무슨 재미일까 싶기도 하다. 나 역시 실제 라이브 중계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고 이 다큐 시리즈에서 다루는 경쟁 팀간 심리전이나 감독과 선수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등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근접하게 접근하여 보여주는 재미가 상당하다.
모든 스포츠가 승자 독식의 세상이 듯 F1 그랑프리도 매년 10개 팀이 치열하게 온갖 심리전을 펼치며 경쟁한다. <F1:본능의질주> 역시 각 팀의 선수들과 감독들의 피튀기는 경쟁을 아주 깊숙한 곳까지 보여준다.
그 중에도 흥미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예능이 아니고 다큐멘터리이지만 그 안에서 흥미롭고 스토리가 많은 캐릭터에게 비중이 더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F1 팀에서 내가 열렬한 팬심을 가진 홈팀은 없다. 하지만 너무도 응원하고 싶은 팀은 하위에 속한 Haas팀이다. 특히 Haas팀의 감독 ‘건서 슈타이너‘의 팬이 되었다. 항상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다. 하위 팀을 어떻게든 끌어 올리려는 그의 고군분투와 F1 리그에도 존재하는 탐간 빈부격차에 따른 고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매 경기 예상치 않은 변수가 생기고 벌어지지 말아야 할 사고가 터지는 것을 반복하며 감독은 피가 마른다. 돈 많은 팀들은 좋은 차와 에이스 드라이버를 영입하여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그 뒤를 바짝 쫒는 중위권 싸움 역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에 돈 없는 하위 팀의 감독은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건서’ 감독의 푸념과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너무 짠하고 왠지 모르게 우리를 대변하는 모습이라서 더욱 공감이 된다.
우리도 평소에 회사와 동종 업계 경쟁사라고 해도 맘 터 놓고 얘기하는 동료나 베프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Haas팀 ‘건서’의 베프는 상위권을 노리고 있는 명문 페라리 팀의 ‘마티아 비노토’ 감독이었다. ‘마티아’ 감독 역시 외모부터(양배추 스타일의 곱슬머리) 남다른 독특한 캐릭터이다. 당시 페라리 팀도 F1 레이스에서 페라리 이름 값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마티아’ 감독은 시즌 중 결국 사임하게 된다.
하위권 순위 경쟁에서 곤욕을 치루던 ‘건서’ 감독은 따로 시간을 내어 이미 페라리 감독직에서 ’짤린‘ 친구 ‘마티노’감독을 찾아간다. ’마티노‘ 감독은 따로 노후를 준비해 두었는지 자신의 이태리 고향에서 소규모로 와이너리를 운엉햐고 있었다. ’건서‘가 와이너리에 방문하여 ’마티노‘와 포도밭을 거닐면서 레이스에 대한 스트레스를 푸념한다. 최첨단 기술력으로 촌각을 다투는 스포츠 감독들이 엄청난 굉음과 환호에 익숙한 서킷에서 나와 적막한 와인 밭을 거니는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면서 아등바등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 하다.
둘은 와이너리 테라스에서 가볍게 와인을 마신다. 팀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얘기를 하면서 푸념을 하는 ‘건서’에게 먼저 그 세계를 떠난 ’마티노‘는 자동차 빨리 달리게 하는 일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않냐며 와인잔을 건넨다. 그 시즌 뒤로 ’건서‘감독은 Haas팀에서 사임하고 다음 시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은퇴를 앞두고 친구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너무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F1이라는 어쩌면 화려하고 어쩌면 너무 치열하여 다리 뻗고 자기 힘든 나날을 보냈을지 모르는 삶을 뒤로 하고 다른 2막을 앞둔 중년 감독의 눈빛이 비장하기도 하고 처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내 모습을 ‘건서’감독을 통해 보게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F1 그랑프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 셰계적 관심과 흥행을 이어갔다. 브래드 피트 주연인 <F1: 더무비>(2025) 개봉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실제 각 팀의 드라이버와 감독들도 영황에 등장한다. ‘건서’감독 역시 Haas팀의 감독으로 출연하며 실제 그 캐릭터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쏠쏠하게 등장하면서 재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최고 스피드를 끌어 올리기 위해 수천명의 팀을 이끈 F1 레이싱팀 감독이지만 결국 레이싱 밖의 세상에서는 속도를 늦추는 삶을 받아 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우리도 너무 빨리빨리 최고만을 위해 달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난 김에 와인 한잔 마시면서 여유 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