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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u Sep 28. 2018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

'발행' 버튼의 마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항상 한가위만 같아라" 말 그대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긴 추석 연휴 동안 날씨는 언제 우리가 미세먼지에 시달렸다는 듯 기가 막히게 맑았고, 하늘은 끝 없이 높아 보였다. 역시 옛 말은 틀릴게 없다는 진리는 거스를 수 없다. 날씨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정말 한가위만 같은 날들만 이어지길 바라고 싶다. 진정한 독서의 계절이 되어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고 또 다시 가을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글쓰기의 욕구가 꿈틀 거림을 느낀다. 만사를 무기력하게 초토화시켰던 역대 최강의 무더위가 가고 무언가 다시 하고 싶음을 북돋우는 계절, 진정 가을이 왔다. 


추셕 연휴를 바로 앞두고 '브런치' 라는 글쓰기 플랫폼과 '브런치 작가'라는 기능을 알게 되었다. 

일기를 꾸준히는 아니지만 오래 써온 편이다. 대부분 노트에 펜으로 기록을 하였고 아직도 집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박스에 오랜 일기장들이 쳐박혀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일기 이외 글을 써본적이 별로 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즐겨하는 '페북'이나 '인스타' 계정은 아예 만들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내 글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페북'이나 '인스타' 활동이 텍스트 보다 이미지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과는 더 맞지 않았다. 여행지며 맛집이며 가는 곳 마다 현재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바라보는 풍경이나 나누는 음식을 즐기기 보다 '인증샷' 남기기에만 급급한 그 모습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나의 글은 오로지 아날로그 형태로 내 일기장에만 남게 되었고 한 번 남겨진 기록은 언제 다시 꺼내 볼 기약 없이 묻히게 되었다. 이제는 일기의 주인인 나 조차도 한번 지나간 기록을 돌아 볼 여유도 없을 뿐더러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며 기록하는 습관도 잃어버렸다. 게으름이라는 것은 모든 의지와 계획을 '올킬' 할 수 있는 강력하고 유일한 핑계임이 분명하다. 솔직히 이제 너무 게을러져서 펜을 잡고 노트 위에 뭔가를 끄적거리는 일이 너무 하기 싫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만 있을 뿐 정신상태나 마음가짐이 게으름에 찌든 몸을 움직이기 만무하다. 게으름은 최악의 전염성을 가진 치명적인 존재이다. 

그래도 게으름의 늪에 완전히 발목을 잡히기 전에 헤어 나와야만 했다. 어떻게든 하루 조금이라도 쓰는 습관을 들일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나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책을 몇 번씩 곱씹어 읽어 보아도 글쓰기의 지름길이나 왕도는 없었다. 오로지 매일 조금씩 직접 쓰는 일 밖에는 다른 대안은 없다.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라서 크게 마음 먹을 일도 아닌 듯 한 일을 행동에 옮기기 참 쉽지 않다. 하여 여러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방법이 하루에 나에게 '이메일'을 한 통씩 쓰는 것 이었다. 어떤 주제든 상관 없이 하루 한통 나에게 메일을 보내는 일. 하지만 수신자가 자신으로 된 이메일을 매일 보내는 일은 작심삼일로도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구속력은 오로지 내 의지 밖에 없고 그 의지를 단숨에 꺾기게 할 게으름의 파워는 아주 강력했다. 또 다시 이렇게 게으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혼자 일기 쓰는 마음가짐으로 쓰겠는가? 


극약처방으로 글쓰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내 행동방식을 고쳐야만 했다. 나 혼자만의 기록으로 울타리를 쳐 놓아서는 안되었다. 일기 쓰기가 글쓰기 향상에 분명 도움이 될 습관이지만 그 보다 강력한 게으름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유지 하기 어려운 방식임을 알았다. 나의 글쓰기를 세상에 공개한다면 무언가 다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휴면 상태의 '페북' 계정을 찾았고 '인스타' 앱을 받았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런 상태로 아무 작성도 하지 않고 한달 정도가 흐른 시점에 '브런치' 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기타 여느 '블로그' 형태와 비슷하면서도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런치 작가'라는 나름의 인증 시스템을 거쳐야 자신의 글을 '발행'이라는 버튼을 눌러 세상에 공유할 수 있는 '면허'가 발행되는 제도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계정을 만들어서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기타 SNS 와는 분명 다른 개념의 글쓰기 툴이다.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에 비중을 둔 진정 글쓰기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제작된 '글쓰기 전용' 플랫폼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다.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오래전에 느꼈던 그런 두근거림 ... 

     

작가 신청을 평가 받기 위한  내 글이 올라 있는 SNS 계정이 전혀 없어서 새로 쓸 수 밖에 없었다. 일기 처럼 아무 생각이나 되는대로 끄적거릴 수는 없었다. 나만의 '컨셉'이 있어야 했고 전달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내가 이제껏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쓰고 싶고, 어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무슨 글을 써서 전달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보았다. 내 미미한 일상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하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과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 주변에 늘상 따라다니는 소재들 회사, 육아, 가족, 여행, 술... 내용은 다 다르겠지만 상황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브런치'는 나에게 그런 장(場)을 마련해주었다. 글을 쓰고는 싶은데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쓸지 막막하기만 했던 나에게 글쓰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살아가면서 한 번씩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어떤 계기가 있는 듯 하다. 생각치 못했던 귀인을 만난다든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된다든지 내 삶의 방향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는 그런 계들이 한번씩은 찾아오는 것 같다. 글쓰기의 욕구와 그 시작의 막막함에 숨통을 틔워준 '브런치'는 내 새로운 글쓰기 습관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감투 아닌 감투가 무언가를 계속 쓸 거리를 찾게 만드는 작가 본능을 일깨우게 해주고 '발행' 버튼은 내 글이 비록 허접하지만 내가 작가라는 존재감을 갖게 만든다.   

'발행'의 버튼을 누르기까지 내 허접한 글을 다시 읽고 다듬는 이 시간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도 된 듯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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