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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민 Feb 03. 2021

친구 두 명이 나를 떠났다.

친구 몇 명이면 될까?


나이가 하나둘 들며 어느새 나도 30대 초반이 되었다. 20대 초반까지는 주변에 친구들이 정말 많았었다. 그 당시에는 무엇보다, 심지어 나보다도 '친구'가 먼저였고 전부였다. 매일 같이 전화해서 만나 술을 마시고 그것이 안되더라도 산책이라도 했었다. 지금은 그 열정을 연인, 가족 그리고 나에게 쏟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처음 나를 떠났던 친구


그 친구는 초, 중학교 동창이었다. 동네도 같은 동네에 나와는 다른 전공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20대 초반에는 오히려 고등학교 때 보다도 많은 것을 흡수할 시기인데,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던 친구로 기억이 난다. 예술 계열 대학교를 다니며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차를 사서 여행도 참 많이 다녔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각자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 우정을 다졌었다. 그런데 이렇게 친했던 우리의 사이는 점점 금이 갔었다.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도 '성격 차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친구 A는 나의 물건을 다른 친구가 이야기 없이 써도 괜찮다. 그래서 A는 다른 친구의 물건을 일단 쓰고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친구 B는 다른 친구의 물건을 쓸 때에는 꼭 그 친구의 의견을 먼저 묻고 사용한다. 그래서 자기의 물건을 쓸 때에도 말없이 쓰는 건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는 상식적으로 보면 친구 B가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라는 관계에서는 이것이 누가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 애매해지는 상황이 있다. 이러한 성격의 차이는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더 문제가 된다. 


오래된 친구 사이는 성격이 잘 맞으면 문제없이 오래가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성격은 다르지만 오래된 친구니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있어도 참아가며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한 번씩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지금 나이에 만났으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 것은 그 친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과 '친구'라는 사람의 차이 일 뿐이다.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 사소한 싸움들은 관계에 무수히 많은 실금들을 만들었고 결국에 그것이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연락하지 않고 각자 삶을 산지 5년 정도 지났을 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와 한번 만나자는 친구.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동네 호프집에서 만났다. 5년 만이었다. 밀린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내가 그의 인생에 없을 때 벌써 많은 일들을 겪었었다. 결혼도 하고 좋지 않은 일도 있었고, 일에서는 멋진 팀장이고 그랬다. 그곳에는 내가 알던 친구는 없었다. 20대 후반의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있었고 좋은 차를 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팀장이라 무시당하지 않으려 옷도 나이 답지 않게 입고 있었다. 역시 내가 동경하던 친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달랐고 깨어진 관계는 쉽게 붙지 않았다. 그 이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주는 서먹함과 옛날 같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친했었던 친구의 서운함을 대신 전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는 다시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실 처음에 비해서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내 인생에서 없어진 사람이 잠깐 추억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 것뿐. 우리는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나를 떠났던 친구


이 친구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고 위에 친구보다 더 오래 함께 했었다. 수많은 만남, 여행, 술자리, 대화, 추억들을 남기고 그도 돌연 나를 떠났다. 사건의 발단은 함께 부산 여행을 갔다가 나에게 서운했었던 일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이해는 가지 않지만 친구가 서운했다니 미안하다 말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될 때까지 물어볼 걸 하고 후회가 된다. 귀찮은 듯이 미안하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싸우기도 해 보고 설득도 해봤다. 하지만 돌연 태도가 달라져 잠수를 탔다. 주변에서도 늘 우리 관계를 좋게 봐왔기 때문에 "너네가 그렇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라고 다들 말하였다. 당사자인 나도 몰랐으니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 이후로 마음을 돌리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벌써 그렇게 된 지 4년째이다. 앞에서 경험했던 친구 경험으로 다시 만나도 아마 우리는 시간이라는 벽을 허물지는 못할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였는데, 어떻게 잘 사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의 성격상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성실했던 친구니까.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들 


20대 초반 그리고 지금의 30대 초반 10년이 넘는 시간을 통하여 배운 것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참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하는 관계는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하는 관계이다. 평소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우리에겐 비밀이란 없겠지'. '우리에게 문제란 없겠지' 하며 방심해 버리는 순간 문제는 시작되게 되니 평소의 대화 이외의 사람 대 사람의 문제를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다. 


나의 절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은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에게 나의 문제점을 물어보는 것도 좋다. '팩트 폭행'을 좀 당하고 나면 당시에는 화가 나고 섭섭한 마음이 가득하겠지만, 나의 문제점을 알려주니 참 좋은 친구가 아닌가?. 자신의 단점과 문제점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니. 


또한, 맞지 않는 인간관계를 억지로 잡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를 떠난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을 자기 자신에서 찾으며 자신을 탓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물론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보고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고쳐 나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평소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 상식선에서 나의 문제점, 고쳐 나가야 할 점 등을 파악하며 하나씩 고쳐나가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자신의 마음이 치유됐을 때 하는 것이 옳다. 마음의 상처가 생기고 이 관계의 잘못을 자신에게만 돌린다면 자신을 갉아먹는 돈이 된다. "박수도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처럼 이 관계가 그렇게 된 것에는 쌍방의 과실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맞지 않는 인간관계를 억지로 잡고 있지 말고 그것을 개선해 나갈지 그만 할지의 판단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상대방과 함께이다. 



지금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나이가 들 수록 친구들이 적어진다. 그것은 나를 떠나는 친구도 있고 내가 떠나는 친구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정리가 자연스럽게 되고 지금 남아있어 주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 연인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대 초반에는 친구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일, 연인, 가족 그리고 '나'로 분산이 되는데 친구의 비중은 아마 제일 낮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나의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그 친구들도 그럴 것이다. 왜냐면 우린 친구니까 말이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친구들이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신경 써야 할 친구들은 꼭 정해져 있다.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으며 한정된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에 별로 소중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기보다, 만나면 즐겁고 나를 사랑해 주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훨씬 더 값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지금 내 옆에 사람들을 챙기기도 바쁜데 이미 지나간 인연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자. 내 인생에 있어서 그 친구의 역할은 거기까지 였던 것이다. 혹시라도 떠난 친구가 있다면 말해보자. "나의 20대를 빛나게 해 줘서 고맙다'라고.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해보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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