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 때문에 그만두는데?
미리 말하지만 내가 퇴사한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 얼마 전에 퇴사한 직원이 있었다. 퇴사 사유는 다양했다. 결혼, 배움, 건강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큰 사유는 아무래도 악당 팀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팀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동료가 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1000% 공감하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 팀장의 악행은 너무 다양해서 글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지만 도전해보겠다.
1. 업무 시간에 핸드폰만 하기
사무실 의자는 뒤로 누우면 안정감 있게 허리와 목을 받쳐주어 생각보다 좋은 의자이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핸드폰으로 보며 마치 의자 품질 테스트를 하듯 누워 있다. 발라당
2. 바쁜 사람 데려다 놓고 수다 떨기
큰 기업이 아닌 우리 회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업무가 참 많고 다양하다. 그래서 일명 '루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업무차 미팅을 하자는 식으로 불러 놓고 1시간은 기본으로 수다를 떤다. 환장함
3. 업계 13년 차이지만, 지식과 인맥이 전무
같은 업계에서 10년이 넘어가면 오고 가고 만나는 사람들과 안면이라도 트고 이름이라도 알고 있을 텐데 전혀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없다. 또한 자기 팀원에게 관련 지식을 물어본다. 한마디로 아는 게 없다. 무능함
4. 이쁜 여직원을 좋아한다
여기서 이쁘다는 것은 물론 외모도 포함이지만, '자기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주는가' 그리고 '자기 말을 얼마나 잘 듣는가'도 포함이다. 물론 남직원들은 자기 말 안 들으면 싫어한다. 가장 심한 악행이 여기에 포함이 되는데,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이면 업무 컨펌 시에 항상 불이익을 준다. 1차 컨펌 때에 퇴짜, 2차 컨펌 때에는 1차 때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 퇴짜, 3차 컨펌 때는 2차 때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으로 퇴짜. 이런 식으로 계속 사람을 괴롭힌다.
5. 남의 험담을 즐겨한다
근거 없는 남의 험담을 가지고와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본이요 본인 팀원들 욕도 서슴없이 하는 이상한 팀장. 예로부터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여서 최대한 멀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험담이 대부분 자기소개를 하고 있어 황당하다.
6.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은 그랬다. "내가 니들보다 월급이 더 많은 이유는 니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해도 그걸 책임지라는 이유야".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히지만 우리보다 월급 많이 받는 이 팀장은 무슨 일만 있으면 본인 팀원을 잡기 바쁘다.
7. 발전을 모른다
같은 업게에서 10년을 넘게 종사했으면 생태계 변화에 따른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다. 비록 대표는 아니더라도 그 팀의 '장'이라 하면 다양한 각도에서 업무를 똑바로 볼 수 있는 견식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10년 전에 사로잡혀 있고, 새로운 것을 미뤄낸다.
정말 시간만 허락한다면 100가지를 작성할 수 있겠지만 참아본다. 그렇다면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보자. 위의 6가지 악행을 적은 이유는 퇴사한 직원이 얼마큼 힘들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보충 설명이었다. 그 직원이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4번이다. 처음에는 주변 동료들도 합심하여 그 팀장을 미워했지만 막상 그의 컨펌이 늦어지니 하나둘씩 불만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 팀장한테 말 좀 잘해봐~!", "또 컨펌 못 받았어?". 이런 식의 불만들이 터져 나오자 그녀는 자기를 탓하게 된다. "내가 좀 더 유연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나 때문에 우리 팀원들이 힘들어하는구나"라며. 그렇게 그녀는 결혼과 맞물린 시기에 퇴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YB들은 모여서 송별회를 열어줬는데, 하나 같이 "그만둘 때 그 팀장 다 말해버려!"라며 이야기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사실 그녀가 일을 잘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른다. 업무 특성상 개개인이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성실했던 것은 안다.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건 알고 있다. 우리의 말을 듣고 그녀는 한마디 했다. "아버지가 말하는데, 그런 건 회사에 좋은 일인데 왜 그것을 말하고 나오느냐"라고.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본인이 누구 때문에 힘들었지는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어차피 퇴사하는 사람들은 그만두면 끝인 거다. 게다가 같은 업계에 이직할 확률이 높으니 괜히 평판 낮추는 행동은 자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퇴사가 확정되고 마지막 면담 때 회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두 가지 경우로 나눠 각각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이야기를 한다
퇴사가 결정되고 마지막 날, 임원들과 마지막 면담을 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이 많이 될 것이다. 그동안에 불만들을 이야기할 경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했다가는 평판 걱정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심사숙고 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경우는 대면하는 임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힘든 회사 생활 전무님 덕분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도가 좋을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나의 퇴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에 대해 비유적으로 디스를 하는 것이 좋다. 위의 예처럼 직속 팀장과의 트러블이 있을 경우에는 우선 나의 잘잘못을 먼저 생각해 보고 난 뒤 어른이 들어도 납득한 것을 꺼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제가 다소 내성적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못한 것이 많이 후회로 남습니다".라고 운을 띄우면 "무슨 일이 있었나?"라며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평소에 OO팀장과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됐었더라면 저도 더 즐겁게 직장 생활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게 후회가 되네요"라며 한단게씩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즉,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고 하나둘씩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것이 좋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평판이 걱정된다면 마지막은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라며 말을 마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전 직장 사람들과 마주칠지 모르니 말이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보통 이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뭐하러 이야기를 하나.. 나가면 그만인데"라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며 퇴사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에는 다소 리스크가 동반이 되는데, 트러블이 있었던 상대방의 내부 언론 플레이를 내가 없는 상황에서 당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거지 같더라도 트러블이 있었던 상대방과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짓고 나오는 것이다. 져주는 게 이기는 것이라.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니 한번 달래줘보자. 내부 언론 플레이라는 것이 다소 과장된 말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퇴사 당일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이 당연하고 중요한 부분을 놓쳐 당황스러운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