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시켜주세요
어린 시절 '비'오는 날
지금도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지금 보다 많이 어렸던 유치원 시절에는 비가 오는 날에는 약간의 광기가 있었던 것 같다. 비만 오면 늘 입는 검은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반바지, 그리고 갈색 샌들을 신고 엄마를 바라보며 심부름할 것 없냐고 물어봤었다. 그때는 티셔츠, 반바지, 샌들 조합만 있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달리 기력이 +5가 되는 느낌이 들었었다. 심부름한다는데 싫어할 부모는 없었을 텐데 엄마는 그런 나를 진정시켰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흥분해서 달려가는 나를 보면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 보통 콩나물, 두부 심부름이 주를 이루었는데 물길을 뚫으며 달려왔던 나는 흙탕물에 절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파트 2층 정도 높이에서 슈퍼맨 망토를 두른 뒤, "슈퍼맨~"하며 뛰어내렸던 남자 어른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도 그런 용기는 없었는지 그런 위험한 장난은 치지 않았었다. 다만, 비만 오면 물웅덩이로 돌진하는 '아쿠아맨' 놀이를 했었던 것 같다. 그때 유독 많이 놀았던 골목이 지금 지나가면 정말 좁은 골목이었던 것, 아파트 버튼을 누르고자 밟고 올라섰던 엘리베이터가 일본 엘리베이터처럼 좁고 작았던 것 등 나의 세상은 작아졌다. 어른이 되면 세상이 넓어질 줄 알았던 '나'지만 어른이 되니 오히려 가지 않는 곳, 두려운 것들이 생겨 오히려 커진 몸에 반비례해 작아진 세상이 아쉬울 따름이다.
나의 어린 시절 '비'오는 날, 오늘도 나는 마음속의 '아쿠아맨'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