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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Apr 10. 2023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팩트라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진실을 애써 무시하거나, 머릿속으로는 알더라도 가슴으로 깨닫지 못한다.  역시도 마흔이 갓 넘어서였던가. 아마 그때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게 받아들이진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아직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웃음이 난다. 사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몇 년 전 쓴 글을 다시 보게 될 때면, 그 과한 자의식에 부끄러워져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일쑤다.


이번에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그간 노력했던 나만의 방법들에 대해 적어 보았다.



#1_'난가병' 극복하기


'난가병'은 '혹시 나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꼴 때 쓰이는 단어이다. 이 단어가 나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로,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양심에 찔린다는 의미로 활용되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이건 내 이야기인데? 내가 할 수 있는데?'라며 세상의 모든 일을 자기 위주로 판단해 버리는 경우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다 본인을 쳐다보며 사는 것이 아닐진대,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오만이고 우스운 일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세계는  위주로,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의 움직임에 맞춰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평소 본인의 상태를 되돌아보면,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다. 하루 중 누구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가. 자기 자신이나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내 걱정만 하기에도 시간이 짧다.


그렇다면 내가 어 특정한 사람대해 생각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맞다. 정확히 딱 그 정도다. 남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비중이.


내가 남에 대해 생각하는 그 정도의 작디작은 비중으, 남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본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자주 많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2_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말 것


상대방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상대방이 나를 위해 이 정도쯤은 해줄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 또는 확신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상대방이 당연히 해줄 것이라 생각한 것을 상대방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기대 또한 결국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해 기대를 하다가, 그 기대가 내가 생각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남을 잘 안 믿는 탓도 있고, 내가 하고 마는 게 편할 때도 . 하지만 중요한 이유는 내 마음같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는 에 있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려고 한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해준 도움은 잊어버리고 기대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받은 은혜 만큼은 반드시 보답해야겠다는 . 


내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위로와 도움을 주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는 것도 결코 당연한 행동이 아니다. 특별한 행동인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나의 주관적 기준에서 감사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3_상대방은 내 모습의 극히 일부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상대방은 내 모습 중 극히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칭찬 한 번 받았다고 혼자 뿜뿜하며 자만에 빠지거나, 누가 자신의 험담을 했다 하여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유다.


가족도, 내 자식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다 파악하고 알아채기 어렵다. 그런데 심지어 학교나 회사 등에서 잠깐 내 보이는 내 모습을 가지고 상대방이 나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그 내용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모습의 극히 일부나 아주 특별한 경우를 보고 일반화해서 파악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판단은 편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칭찬을 들으면, 잠깐 기분이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칭찬은 겨우 내 일부의 모습만을 보고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준 것에 불과하다. 칭찬이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면면훌륭하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는 다. 그렇기에 겸손해야 하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누가 나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모습 중 일부분만을 보고 나를 지적하고 비판한 것이기 때문에 풀이 죽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다. 그들이 모르는 나만의 진실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속에서 본인이 느낀 것이 있다면 지적된 부분을 고쳐야 하겠지만.


나에 대한 남들의 칭찬이나 지적 모두 내 진짜 모습의 일부만을 관찰한 상대방의 편견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상대방의 단편적인 판단들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너무나 거대한 대자연을 라보,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꿈꿨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려본다.


지금도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방대한 우주 공간을 떠올린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도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 넓디넓은 우주 속에 지구는 점, 아니 점도 아닌 티끌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지구에서 한국, 그리고 그 한국의 어딘가에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우주에 비하면, 정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티끌보다 더 작고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나는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이걸 깨닫고 느껴야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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