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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Jan 03. 2025

오십에 읽는 주역

강기진 저 | 유노북스

주역에 대해 오랜 기간 천착해온 역학자 강기진 님의 주역 해설서, ≪오십에 읽는 주역≫을 읽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후 여러 인생의 풍파를 겪고 주역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저자를 유튜브에서 접하고 이 책을 찾아보게 된 것.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와는 결이 다르며,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아직 오십 대는 아니지만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연초부터 이 책을 펼쳐 보았다.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역경, 주역, 역술의 차이를 먼저 설명한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인 사서삼경 중 삼경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시경, 서경, 그리고 역경이다. 이때의 역(易)은 '세상 만물의 전개 법칙'을 의미하는데, 주나라 때의 갑골점을 통해 하늘이 계시한 세상의 법칙을 정리한 경전이 바로 역경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에서 주역으로 부른다고 한다.


한편 역술은 점괘와 사주팔자에 대한 기술을 말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주나라 시대를 지나 은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역경을 정립해 가면서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맞아 들어간 점괘는 나중에 비슷한 점을 참고하기 위해 분류하여 보관했다고 한다. 이 작업짧게는 600년, 길게는 1,500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니, 이 말이 맞다면, 단순히 미신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통계적 근거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인생의 후반생이라 할 수 있는 오십이라는 나이의 의미를 여러 번 강조한다. 오십은 자신의 팔자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시점이며 자신의 삶을 완결지을 귀중한 시기이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의 중년이 길을 잃고 헤맨다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미숙했던 이십 대, 치열했던 삼사십 대를 지나 오십이 되면 마음을 바꾸어 과거와 미래에 대해 성숙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전반생을 마치고 후반생을 살아가야  오십 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책의 모든 내용들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운의 의미와 대가, 흉운을 만든 이유, 낙천의 본질적 의미, 천명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스스로 설 수 있다는 , 이십 대, 삼사십 대, 오십 대 의미 등의 내용이 가슴속에 깊이 와닿았다.


(21p) 운이란 좋고 나쁨이 없다.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운이 좋다, 나쁘다'보다는 '운이 강하다, 약하다'는 표현이 보다 부합한다.
(25p) 결국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정대로 달성해 내는 강한 운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중략) 이처럼 스트레스의 극단에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보다도 더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운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자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39p) 은나라의 점인들이 보기에 이 세상에 길흉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貞)한 사람이 이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흉운이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중략) 만약 이 세상에 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태한 사람, 방만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길운을 다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흉운을 섞어 넣음으로써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의 구조라는 것이다.
(42~43p) 우리가 일상에서 '운명'이라는 말을 쓸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을 체념하여 받아들이는 경우를 지칭하는 수가 많다. (중략) 하지만 다소 좋지 않은 일을 나타낸다는 풀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를 '인간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을 나타낸다'라고 바꾸면 좀 더 원래의 뜻에 부합할 것이다. (중략) 운명의 작용에는 오만한 자의 무릎을 꺾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지 '좋지 않은 일'이 아니다.
(46~47p) 역경은 군자가 삶의 여행길에서 취할 기본적인 태도가 '곁에서 나란히 행하되 휩쓸리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항상 공동체에 속해서 살아가는데, 주변 사람들과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면이 있어도 우선은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곁에서 나란히 행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을 피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휩쓸리지는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라는 것이다.
(48p) 자기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 낼 수 있다. (중략) 이때 군자가 취하는 태도가 낙천(樂天), 즉 '하늘을 즐기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뜻이 통하지 않아 불편한 상황에서도 군자는 하늘의 도가 운행하고 있음을 알기에 낙천할 수 있다.
(50~51p) 천명을 따르면 운이 좋아진다. 명을 이루라고 주어진 힘이 운이며, 하늘이 나를 낳은 목적이 명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나이 오십에 이른 이는 무엇보다 가고자 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이는 역경이 볼 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다. 가고자 하는 바가 있어야 길흉의 질곡을 뚫고서 자신의 삶을 운전해 갈 수 있다. 그래야 삶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다.
(83p) 스스로 자신의 말에 합당한 삶의 궤적을 보여 온 그이기에, 그의 말은 여러모로 울림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때 가장 서럽다. 자신의 팔자, 자신의 운명에 하늘의 큰 뜻이 담겨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러하면 자신에게 모질게 굴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모남이 있어서 비로소 자신의 할 일을 아는 것이다.
(98~99p) 결국 이십 대부터 사십 대까지 사람은 미로와 같은 이 세상을 아직 잘 모른다. 이십 대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삼십 대는 다른 사람을 아직 잘 모른다. 사십 대에 이르면 세상 보는 눈이 조금 트이지만 아직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젊은 시절에 자꾸 운과 자기 기질에 치이는 것이다.
(99p) 그러다가 그 젊은 날의 열병이 여러 겹의 나이테를 남기고 지나갔을 때 비로소 오십이라는 원숙기에 이르는 것이다. (중략) 오십에 이른 이는 이제 자기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오십이 하늘에 올랐다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더 이상 운에 치이지도 않는다.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오십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 고전 해설서가 원서에만 얽매여 현실과 동떨어진 고리타분한 내용을 전해주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사뭇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저자는 니체, 융, 아인슈타인, 박막례 할머니, 원효대사, 허준이 교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언급하며 주역의 내용을 설명한다던가, 불교와 기독교까지 넘나들면서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본인이 가진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연초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이나 점을 보며 좋은 운세를 기대하지만, 난 이 책을 읽고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다. 운이 좋다 한들 스스로의 삶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그 운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해진 운명이 있다 해도, 그 가치를 깨닫는 것이 우선이지 아닐까?


저자는 오십이 되기 전 쌓아 온 인생의 나이테를 통해 비로소 오십이라는 원숙기에 다다른다고 다. 아직 오십이라는 나이가 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지만, 이 책의 조언처럼, 운명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오십 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그리고 그때까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는 다짐함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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