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저/김경숙 역 | 사이

by Ryan Choi

지난번에 고대 로마 시대의 철학자인 세네카의 책 ≪인생론≫을 읽은 후, 이번에는 ≪화에 대하여≫를 집어 들었다. 마침 지난 주일 설교 주제가 '가인'이었다. 분노에 못 이겨 동생을 돌로 쳐 죽인 죄를 지은 바로 그 가인. 특히 목사님의 설교 에 인간의 분노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 터라, 유독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세네카의 동생 노바투스가 형에게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문답 형식의 편지 글을 통해, 인간이 왜 화를 내는지, 인생에서 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화의 해악은 무엇이며, 화는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화의 본질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분노라는 감정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는 통념을 여러 논리로 철저히 반박한다. 또한 화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도 상세히 분석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화가 났을 때 그것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세네카는 화는 결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화는 서로의 파괴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 그래서 '화'라는 감정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특별히 더 비천한 '순간의 광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화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30p) "화가 난 사람은 눈빛이 이글거리며 흔들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라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이를 부득부득 간다. 머리카락은 빳빳이 곤두서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관절은 비틀린 것처럼 우두둑 소리를 낸다. 화가 난 사람은 또한 신음하고 울부짖으며, 말도 또렷하지 않고 더듬거리며, 자꾸 손뼉을 치고 발을 쾅쾅 구르며, 흥분한 온몸으로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며 상대를 위협한다. 화가 난 사람은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부풀어 올라 역겨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재밌었던 부분은 화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반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끔은 화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세네카는 날카로운 논리로 이 생각을 뒤집었다. 화는 건강한 방어 수단이 아니고, 분노보다 이성이 더 효과적이며, 한번 격정이 일어나면 통제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고 말한다.


화를 적당히 조절만 잘하면, 행동이 유약해지거나 마음의 활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고 사기를 높이며 용기를 자극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세네카는 해로운 것은 받아들인 다음 관리하기보다는 애초에 싹을 없애는 것이 더 낫고, 한번 격정이 일어나면 통제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45p) "가장 좋은 방법은 화가 나려 할 때 최초의 싹을 억누르고 그 최초의 충동에 굴복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이다. 일단 화가 우리를 항로 밖으로 끌고 가면 안전한 곳으로 되돌아오기가 어려워진다. 화가 마음에 들어와 우리가 그것에 주권을 내어주게 되면 이성은 한 치도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다음부터 화는 네가 허락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또한 적과 맞설 때 분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이 잘 통제될 필요가 있고 이성의 명령에 따라야 성공 확률이 높아지므로 격정적인 분노보다는 이성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화는 추진력이 되기보다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화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세네카는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이건 실제로 내 경험을 비추어봐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다고 생각했기에 화가 났던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국 화가 났던 근본 원인은 세네카의 말처럼 나의 무지와 오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의 결론은 명확했다. 화는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없애고 지워야 하는 존재라고. 아무것도 득이 될 것이 없는 화는 완전히 떼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화는 조금이라도 흔적을 남겨두면 어디든지 들러붙을 곳이 있을 때 다시 자라난다. 그래서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옳다.


세네카는 분노를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제시한다. 화가 났을 때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반응을 지연시키며, 온화한 목소리와 느린 걸음걸이, 부드러운 표정을 갖추려고 노력하면, 화가 진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화를 다스리는 최고의 방책은 화를 유예하고 분노를 내면에 숨기는 것에 있다는 조언이다.


(185~186p) "자신과 싸워라. 만일 너에게 화를 극복할 의지가 있다면, 화는 너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화를 감추고 출구를 내어주지 않는 한, 화는 서서히 정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너는 화의 신호를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고 속에 묻어두고 감추어야 한다. (중략) 일단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허락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그것을 가슴에 담고 견뎌야 하고 휩쓸려 가서는 안 된다."


분노로 인한 결과를 냉정히 예상해 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화를 내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 관계가 어떻게 파괴되고 후회가 얼마나 클지, 미리 그려보면 분노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분노의 순간적 쾌감은 덧없지만, 그 피해는 오래 지속되므로,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억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좀 더 충격적인 방법도 있다. 화가 났을 때는 스스로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화를 폭발시키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화는 아름다운 얼굴을 추하게 하고 가장 평온한 것을 거칠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는 우리를 광기의 순간으로 내몬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저주의 말을 퍼붓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화의 포로가 된다. 세네카에 따르면, 화는 그 분노의 에너지를 이용해 다른 모든 감정들을 자신의 수하에 둔다고 한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는다는 것은 나의 본모습을 잃는다는 의미와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과거에 화가 났었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사소한 것들로부터 화가 솟구쳤을 때 왜 그렇게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났던 원인들은 결국 다음 3가지 것들로 요약되었다.


첫 번째는 이미 다른 일들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괜한 일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우다. 두 번째는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만의 상처를 누군가 건드리는 경우다. 상대방에게는 사소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심각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쯤은 다들 있기에.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몸이 피곤할 때였다.


어찌 보면 경우 모두 충분히 참아 내거나 조절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듯, 엉뚱한 곳에서 화를 내는 우스운 꼴을 보였고, 내게는 응당 이래야 한다는 식의 기대감을 가졌다가 그것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는 화가 나기도 했으며, 피곤한 상태에서 괜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책을 덮으며 그제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화를 내는 것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짜 고수는 소리 높여 싸우거나 화를 내며 자신의 불안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방법으로 내면 속 꼬인 실타래를 풀고,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혹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여전히 여러 이유들로 화를 내는 것에도 유익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이 책을 펼쳐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세네카의 반박 글이 한가득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화는 정당화될 수도 없고 내 삶에 유익하지도 않다는 것.


짧은 인생, 화를 내어 무엇하랴. 진정한 고수는 소리 높여 싸우거나 분노와 같은 감정으로 삶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지혜로움으로 인생의 시간을 평온하게 한다. 앞으로는 화가 나는 순간에 한 박자 멈추고 생각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 세네카의 말을 떠올리며, 화보다는 '평정심'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팀 켈러의 일과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