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더 걸즈>

The Girls (1968)

by 려한




무대 위의 세 여자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고대 그리스 희극 <리시스트라타>를 공연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싸우는 전장은 고대가 아니라,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가 견고한 1960년대 스웨덴의 일상이다. 배우 리즈(비비 안데르손), 마리안(해리엇 안데르손), 구닐라(군넬 린드블롬)는 희극 속 인물을 연기하면서, 각자의 삶 속에서 여전히 여성으로서 처한 모순된 현실을 맞닥뜨린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몽타주 속에서 무대와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들은 자신들이 그저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해온 배우임을 깨닫는다. 마이 제털링 감독의 <더 걸즈>는 고전을 재해석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며, 여성의 각성과 저항을 무대 위로 호출한다.



비가시적 폭력의 시각화

© 스웨덴영화제

리즈, 마리안, 구닐라는 연극 속에서 전쟁을 멈추기 위해 남성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연기하지만, 정작 현실 속 그들은 여전히 순종과 희생을 강요받는다. 리즈의 남편은 그녀의 일을 '진지하지 않은 일'로 치부하며, 그녀의 존재 가치를 가정과 남편에 대한 헌신으로 한정한다. 마리안은 유부남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시선과 도덕적 규범에 갈등하고, 구닐라는 육아에 매몰된 채 자신이 서서히 소모되어감을 느낀다. 세 인물의 서사는 일, 사랑, 육아라는 서로 다른 장에서 여성이 억압되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 억압의 구조를 현실과 환상의 교차를 통해 시각화한다. 영화의 후반부, 리즈의 남편 칼(엘란드 요셉손)이 리즈가 머무르고 있는 방에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절정을 이룬다. 그는 잠시 리즈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바로 커다란 가방 속에서 불륜 관계인 두 명의 여성을 꺼내 옷을 벗기고 리즈 옆에 눕힌다. 그리고는 자신의 일은 중요하니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리즈가 "내 일은요?"라고 되묻자, 그는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진지하지 않은 일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리즈의 본래 역할은 남편인 자신을 부양하고 가정을 돌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자신은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안 준다고 말하지만, 해당 대사와 함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철저하게 어긋난다. 그 불합리로 가득 차 있는 대화 끝에 "거짓말 그만해!"라는 외침은 칼을 향한 분노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인식을 용인하는 사회 전체를 향한 절규다. 이처럼 리즈와 칼의 대화는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젠더 권력의 비가시적 폭력을 시각화하며, 그 위선의 얼굴을 폭로한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 스웨덴영화제

공연이 끝난 뒤, 리즈는 배우의 역할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이 연극을 어떻게 보셨나요?” 그러나 객석은 철저히 침묵한다. 이는 ‘여성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사회’를 드러내며, 여성으로서 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제압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러 리즈뿐 아니라 마리안과 구닐라가 함께 목소리를 내자, 여성 청중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반응하며 침묵은 깨어진다. 아직 그들의 대화는 충돌하고 갈라지지만, 바로 그 소란 속에서 변화의 시작이 움튼다. 그것이 이 영화가 보는 저항의 출발점이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의 무대이고, 인간은 그 위의 배우다. 하지만 이제 그녀들은 더 이상 타인에게서 부여받은 역할과 대사를 곧이 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리즈와 마리안, 구닐라는 타인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발화하기 시작한다. <더 걸즈>는 오늘날까지 유효한 질문의 영화다. 이 영화는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 다시 묻는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이에 당신은 침묵할 것인가, 응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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