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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Jan 30. 2022

알고리즘과 정치

진짜와 가짜

알고리즘은 여러 '오피니언 리더' 중 하나에 가깝다. <피로 사회> 저자 한병철 교수는 2015년 <심리 정치>에서 빅데이터는 우리를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정량적 데이터의 축적으로 이뤄지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의식을 발휘해 성찰하고 재창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통찰이다. 알고리즘이 큐레이팅해주는 콘텐츠는 의사결정에 참고하는 하나의 정보 블록인 셈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우려와 달리 디지털 성숙도가 꽤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알고리즘 편향성에 영향 받아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인터넷의 태동지인 서구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인터넷 연구소(Oxford Internet Institute)는 인터넷이 의견 다양성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오히려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특정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며 신중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취지로 2019년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았다던 2016년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에서 승패를 좌우한 투표 세력은 소셜미디어와 거리가 먼 노년층이었다고 지적한다.


정치를 왜곡하는 건 알고리즘이 아닌 민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정치인이다. 최근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뉴스 댓글창이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배설에 가까운 의견을 반영하는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여가부 폐지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선제 타격론, 정책 신뢰를 흔드는 부동산 양도세 폐지 공약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공약들은 전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하는 전문가들 간 쟁점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온라인에서만 활개를 치는 극단적인 여성 혐오론자, 전쟁론자, 부동산 신봉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여론조사에서 후보자들이 박스권 지지율에 갇히고, 현장 시민들에게서 이번 대선에 뽑을 사람이 없다는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건 이 때문이다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극단주의자에 휘둘리는 공약에는 진짜 민심이 없다. 공(空)약이다.


진짜 정치 민심은 보편적인 실제 우리의 삶에서 나온다. 구글 검색량, 온라인 뉴스 랭킹, 최다 좋아요 수를 얻은 댓글은 조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우리 주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조작할 수없다. 식당에 한 테이블씩은 꼭 있는 혼밥러들을 보면 파편화되는 사회적 관계를 실감할 수 있다. 낮 시간 대에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4-50대 중년 남성들을 보며 코로나로 인한 실업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온라인에는 젠더 갈등이 극심하다지만 주말 마다 식당과 카페에는 가족과 연인들로 가득 하다. 진짜 표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외면 받는다. 실제로 온라인 혐오에 기반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단 한번도 전체 표수에서는 과반을 얻은 적이 없다. 선거는 중도 표심이 좌우한다고 한다. 중도 표심은 언제나 정파성을 초월한 보편적 민생에 있음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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