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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Feb 08. 2022

누가 승리할까?

선함은 언제나 악함을 압도한다. 그러나 악함이 선함을 압도할 때도 있다. 힘의 균형이 한쪽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그렇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 내내 이어진 철학 논쟁은 법가가 이겼다. 법가는 강한 힘을 가진 절대자가 정한 규칙에 따라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를 무조건 악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약자의 반론 기회가 없고 강자의 입맛에 맞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이다. 이 사상이 통하려면 절대자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 진시황은 그럴 힘이 있었다.


강한 힘은 단순히 힘이 쎈 것이 아니다. 올바른 의사결정으로 전쟁에서 진영의 승리를 이끄는 사람, 이로써 공동체에 번영을 가져오는 힘이다. 쉽게 말하면 능력인데, 그 능력을 감히 일반인이 따라 잡을 수 없어야 한다. 이러한 힘에는 능력뿐만 아니라 운적인 요소도 작용한다. 그래서 힘이 운빨, 효력이 다해 진영에 반복적 실패를 가져온다면, 힘은 힘을 추종하던 사람들에 의해 축출된다. 그래서 힘만으로 군림한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주위 사람들을 불신하고, 더 큰 힘을 지속적으로 갈망한다.


동서고금의 리더들을 안정시킨 건 힘이 없어져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강력한 신뢰 자본이었다. 국가를 만들고, 이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늘 갈망하는, 강하지만 시혜적인 '선'을 지배자와 동일시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사고와 쌍방향 의사소통이 확산되는 현 시대에는 효력이 다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불완전하지만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리더를 선택할 것인가? 또다시 완벽해 보이는 강한 리더를 선택할 것인가? 진실에 충실한 삶을 살 것인가? 진실을 외면하는 삶을 살 것인가?


세계 재패의 역사를 쓴 칭기스칸을 다룬 역사서는 놀랍게도 그의 흠결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이 저지른 무자비함과 권위주의적 행위를 감안한다면 리더의 의지가 담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칭기스칸은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친척 집단에서도 쫏겨난다. 힘이 없어서 사촌에게 조리돌림 당하고, 말도 도둑맡고, 아내까지 뺏긴다. 당시 초원은 인간적 신뢰보단 동물적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도운 건 타인의 '선'이었다. 이후 그의 인생 성패는 일관되게, 이 패턴을 따른다. 칭기스칸이 개인적 욕심을 부리면 지배 계층 중 머리가 뛰어나고 세력이 강한 사람에게 당해 몰락한다. 하지만 공명정대하게 아래 사람들을 우대하고, 공동체의 신의를 지킬 때마다 재기의 기회를 맞는다.


이러한 서사의 정점은 그가 초원을 재패하기 직전 전투에서 빛을 발한다. 의형제 관계였던 자무카와 사이가 틀어진 후 전쟁을 거듭하던 칭기스칸은 자무카에게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자무카가 자신과 연합한 옹 칸이 무능하다며 전의를 상실했다고 한 것이다. 칭기스칸은 이 편지를 믿고 자무카를 고려하지 않고 전투를 치른다. 그러나 철저히 뒷통수 맞고 칭기스칸은 거의 모든 걸 잃는다. 끝까지 자신 곁에 남아준 부하들과 도원결의 비슷한 세례를 치른 후 그는 초원에 소문을 퍼트린다. 칭기스칸이 아버지의 의형제인 옹 칸과 자신의 의형제인 자무카의 신의를 믿었다가 배신당하고 모든 걸 잃었다는 소문이다. 이후 초원의 민심은 칭기스칸에게 돌아갔다. 그는 몰려온 중소 부족의 도움으로 재기해 결국 초원을 통일한다.


선함은 언제나 악함을 압도한다. 악함이 선함을 압도하려면 압도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압도적 힘은 유한하다. 실제로 현재 세계화와 온라인 세계 확장 이후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을 지닌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는 비슷한 운율로 반복된다고 한다. 맞다면 불완전하지만 공동체의 신뢰, 선을 지킬 거란 확신을 주는 지도자에게 모든 일에 승리의 운이 함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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