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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May 09. 2021

이성과 감성, 뭐가 더 중요하죠?

고전적 문제에 관한 사유

얼마 전 일이었다. 길을 걷다 넘어질 뻔했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 소리가 나왔다. 당시 엄마랑은 냉전 중이었다. 게다가 이 나이에 엄마라니. 재채기처럼 외친 감탄사에 살짝 놀라 부끄러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위험할 때 가장 먼저 달려와 날 구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어릴 적 깨달은 바를 육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일 거라 여기던 내 머리보다 육체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도 하는구나.' 많이 아는 것,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무조건 옳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따라서 몸으로 부딪힌 경험과 연습에서 얻은 지혜가 현실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서 만큼은 생각하는 뇌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가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순점이 떠오른다. 육체의 지혜는 과거의 것이다. 육체적 반응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라면 반드시 육체가 그것에 오랜 기간 노출돼 체화해야 하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체화의 기간이 지나 체화한 그것에 예기치 못한 '변화'가 생겨 더 이상 현재일 수 없다면? 가령, 세월이 흘러 엄마가 노쇄해지고 내 키가 엄마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할 때 엄마를 찾으면 엄마와 나 모두 위험해진다. 또한, 엄마가 어느 날 정신적 트라우마에 걸려 뇌에 손상이라도 입었다면, 모녀 관계의 정상적 본능 작용이 작동되지 않아 엄마는 내가 위험해져도 거들떠도 안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값을 인지하고도, 위험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외친다면, 육체의 실전 감각에 따른 판단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뇌와 육체 간 우열을 나누는 것이 이상하다. 삶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공존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인간관계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을 대처할 땐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한 육체적 지혜가 효과적이다. 반면 코로나 19 펜데믹처럼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배우고 생각하고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뇌의 힘이 필요하다. 변수가 찾아오면 그 파급력이 일시적이든 정기적이든 육체는 반드시 변수에 대처할 새로운 변화를 체화해야 한다. 이때 육체가 과거의 관습을 고수하며 변화하길 거부한다면 뇌와 육체는 도태될 일만 남는다. 이때 육체의 경륜은 아집이 된다. 육체는 아집을 내려놓고, 뇌의 판단을 믿고, 뇌의 플랜에 따라 새로운 변화에 적합하게 기존의 습관을 변형하거나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식으로 변화를 감내해야 한다.


인간은 매 순간 과거를 지나는 현재를 살며 미래를 대비한다. 모두 우리가 헤쳐나갈 현실이다. 육체는 감성적으로 현재의 필요와 과거의 지혜를 축적하고, 뇌는 이성적으로 육체의 욕망과 과거의 지혜 사이에서 최선의 미래를 대비하고 계획하게 한다. 변화가 잦은 시기이다. 변화를 인지하면서도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나는 또 무의식 중으로 "엄마"를 외쳐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내 머리로 최선의 대책을 생각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은 채 위험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서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육체의 말만 듣지도, 머리의 이상만 따르지도 않고 조화롭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리를 찾아 이것저것 분해하고 조립하고 다시 끼워 맞추기를 하다 보면 까먹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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