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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Apr 10. 2021

우리 사회의 시대상

‘아들이 사라졌다.’ 아이의 낮잠을 재우다 깜빡 잠들었던 엄마는 아들이 누워있던 이부자리가 빈 것을 보곤 화들짝 놀라서 깼다. 부엌에 나가봐도, 화장실을 둘러봐도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엄마의 이마와 등골에 식은땀이 서렸다. 다급해진 마음을 안고 엄마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아들을 찾으러 길거리로 나섰다.


“이번에도 아들이 아니었으면 넌...” 아들을 찾아다니던 엄마의 머릿속에 자꾸 시어머니의 험상궂은 얼굴이 떠올랐다. 딸만 내리 3명을 낳은 엄마를 구원한 건 아들이었다. ‘아들을 잃어버리면 나도 끝장나고 말 거야’ 시부모님의 멸시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 끝났다. 아들을 잃어버린다면 그 이후 펼쳐질 시댁 친척들의 조롱과 시선과 말들이 떠올라 엄마는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주치는 동네 사람마다 붙잡고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누구도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의 입술은 바짝 타들어갔다.


“훠이~훠이~ 공사 중입니다. 우회해서 가세요!” 아들을 찾아 떠돌던 엄마의 눈앞에 넓은 아스팔트 도로가 펼쳐졌다. 저 멀리 도로 한가운데서 정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아들 또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곁을 거대한 화물 트럭과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의 입술은 더욱 바짝 타들어갔다. “안돼, 안돼! 아들!!!”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뒤돌아섰다. 엄마는 이들의 시선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맨발로 도로에 뛰어들었다. 마주 오던 자동차에서 귀가 찢어질 듯 경적 벨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엄마는 그대로 얼어붙곤 쓰러져버렸다. 길가던 사람들의 우려 섞인 비명 속에서 한 남자가 뛰어나와 엄마를 들춰 업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오셨네요. 김말자 할머니.” 진단 차트를 넘겨보던 의사가 한 숨을 쉰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내려다본다. 

의료진의 반응에 할머니를 업고 온 남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혹시 아시는 분이신가요?”

간호사가 대답했다. “예. 작년에 아드님을 사고로 잃으시고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세요. 매번 이렇게 아드님을 찾으시다가 혼절하시곤 실려 오세요.”

남자는 안타까움에 탄식하며 되물었다. “다른 자녀분들은 없으신가요?” 

간호사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따님 분들이 계신데... 따로 돌보시는 것 같진 않은 것 같아요.”

“아니 어떻게...” 순간 남자의 얼굴에 혐오감이 묻어났다.

남자의 얼굴을 돌아보던 간호사는 서둘러 다음 말을 덧붙였다. “평소 아들만 감싸고도셨던 어머니한테 따님들이 감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따님 분들이 나누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할머니가 원래는 스스로 농사짓고 사실 정도로 엄청 건강하셨나 봐요. 근데 아드님이 도로에서 정비 작업을 하다가 버스에 치여 돌아가신 후로는 정신을 놓으셨다고... 그래서 더 감정이 안 좋으신가 봐요.”

간호사의 말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남자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잠시 후 3명의 중년 여성이 응급실을 찾았다. 딸들이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 보니 이들의 어두운 낯빛은 할머니를 위한 것이 아닐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딸들은 할머니를 옮겨준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남자는 응급실을 떠나려 했지만 왠지 찜찜한 마음에 그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 후 딸 중 한 명이 응급실 밖으로 나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가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여보,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야 할 것 같아. 이대로 뒀다간 큰일 날 거야.” 남자는 예상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아니 그럼 어떡해? 재원이 산재는 결국 인정 안 돼서 보상금 한 푼 못 받았고, 엄마는 재원이 억울함 푼다고 산재 인정 재판에 변호사 쓰느라 빚까지 졌는데. 당신, 당신 엄마라도 이렇게 할 거야?”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은 여자는 이마를 짚은 채 씩씩 거렸다.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이 모든 걸 지켜본 남자의 마음은 이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가 문제인 걸까. 내가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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