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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Apr 03. 2021

환경과 우주의 연결고리

새로운 희생양 찾기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온라인이나 TV에 나온 바닷가 해변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쓰던 플라스틱은 우리 곁에 머물며 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만들었다. 편리함이란 결국 무엇의 희생을 담보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불편을 뒤로 미루는 것이고, 이는 후대 사람들에게 처리를 떠넘기는 것이니 후대의 희생을 담보하는 것이다. 희생을 바란다는 건 결국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왜 책임지려 하지 않는가. 그리고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라는 개념을 두고 동양에선 ‘업보’라고 칭하고, 서양에선 니체의 영향에 따라 ‘영겁회귀’를 떠올릴 것이다. 니체가 헤겔과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았고, 헤겔과 쇼펜하우어는 불교에서 영감을 받았으니 이 둘은 비슷한 맥락적 의미를 지녔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탄생 배경이 다르니 차이점도 있다. 업보는 ‘관계적’이라면, 영겁회귀는 ‘사건적’이다. 업보는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타인이 해를 입고, 해를 입은 타인이 나를 해한다라는 관계성을 지닌다. 반면 영겁회귀는 인생은 결국 같은 일의 반복이라는 사건의 재현성을 나타낸다. 차이가 분명하지만 묘하게 공통점이 느껴진다.


업보와 영겁회귀가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개념의 각각 원인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업보를 쌓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간은 수많은 업보를 쌓아왔다. 수많은 생명 종을 죽였고, 개량했으며, 인간에게 적합하게 길들여 왔다. 말 못 하는 생명의 ‘희생’이다. 이러한 업보의 대표적인 결과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사막화이다. 고대 인류의 무차별적인 자원 수탈의 결과 현재 이곳들은 어떠한 생명도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남았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희생을 반복하고 있다. 식량 생산 주기를 늘리기 위해 강한 화학 약품을 사용하며 땅을 쉴 새 없이 갈았고, 수많은 농지가 사막화, 즉, 죽었다. 그러자 이젠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나무들을 베며 농지를 일구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아마존에는 산불이 꺼지지 않고 있고, 추운 시베리아 지역에서 고온 현상이 나타나며, 더운 아프리카 지역에 메뚜기떼가 기승을 부린다. 이젠 사막화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희생이 반복되니 같은 업보에 계속 걸리는, 영겁회귀이다.


업보로 벌어지는 문제의 영겁회귀를 끊으려면 업보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류는 희생 위로 쌓이는 갈등을 외면하며 잘 살아왔다. 고대 인류는 땅이 메마르면 그 땅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땅을 찾아 전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현대 인류 역시 말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투자금은 화성 식민지 개척 쪽으로 흐르고 있다. 최근 미국 주식 시장에 우주 산업 ETF인 ‘ARKX’ 상장 소식이 큰 화제가 됐다. 물론 현대 인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넘실대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대기 중 탄소를 해결하기 위해 제로 웨이스팅, ‘절제’로 책임을 지자고 외친다. 하지만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그보단 플라스틱과 탄소를 지구에 남겨둔 채 새로운 행성으로 이사 가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라고 보는 듯하다. 안타깝지만 후자가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가장 인간적인 대안이라고 역사는 말한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이다. 여전히 우리는 책임지려 하지 않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고 있다. 그 희생에 우리가 잡아먹힐지, 우주가 새로운 먹잇감을 내어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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