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에는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문은 열려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열어놓은 것처럼.
자주 지나가면서 정원을 구경하던 집이었다. 화려하고 예쁜 정원이었다. 정원은 누구나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늘 오픈되어 있었고 때로는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하거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파티도 자주 열리는 듯 했다. 오늘도 나는 그 정원을 스치듯 구경한 뒤에 내 갈길을 갔어야 하는데, 오늘은 왜인지 건물이 있는 곳까지 들어와버리고 말았다. 건물은 커다랬지만 왠지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보이는 건물은 낡고 평범해서 눈에 띄게 꾸며진 정원과는 이질감이 들었다. 열려있는 문이 나에게 들어오라고 말을 거는 듯 했다. 홀린듯이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한걸음 발자국을 떼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복도 중앙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으로 통하는 유일한 복도 한가운데에 저런 구덩이라니, 저러면 본인도 밖으로 못나오는 거 아닌가…?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보자 실제로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닌,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짜 티가 나는 조잡한 3d 아트스티커였다. 너무나도 허술한 트랩에 헛웃음이 다 나왔다. 깊은 구덩이 모양의 스티커를 단숨에 밟고 지나쳐 긴 복도에 더 들어가자 발에 무언가 걸렸고 천장에서 뾰족뾰족한 압정들이 쏟아졌다.
“으악, 따가워! …아닌가? 왜 하나도 안따갑지…?”
압정을 한가득 뒤집어 썼는데도 아프지 않아서 주워보니, 압정 모양의 말랑말랑한 젤리였다.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헛웃음이 아니라, 재밌어서 나오는 진짜 웃음이었다. 다음은 뭘까 궁금했다. 좀 더 걸어들어가보니 이번엔 통로에 지압돌이 가득했다. ‘여기서부터는 꼭 맨발로 들어와야 합니다. 신발 착용 금지.‘라고 프린팅된 팻말이 지압돌 통로 시작점에 세워져있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신발을 벗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빠르게 지나갈 순 없었고 우스꽝스러울 것이 뻔한 모습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이 집의 누군가와 같이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들이 나타났지만 자세히 보면 보여주기식이거나 매우 허술해서 오히려 재미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이 건물 밖, 정원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어 안달난 것 처럼 꾸며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 한 예쁜 꽃, 식물들이 가득했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식탁에는 언제나 달콤한 디저트들이 차려져 있었다. 거기엔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라는 친절한 멘트가 적혀있는 메모도 붙어져 있었다. 정원은 이렇게 꾸며놓고는 정작 자신의 집 대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 저런 함정(으로 보이고 싶은 듯한 어떤 것들)을 설치해놓다니. 정말 아무도 들어오는 게 싫었다면 문을 잠그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드디어 더 이상 방해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저기, 아무도 없어? 여기 재밌었어.”
어둠 속 빈 공간을 향해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원이 참 아름다워. 쿠키도 맛있던데… 직접 구운거야?”
혹시 어딘가에서 듣고 있는 건가 싶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모습을 드러내긴 커녕 아무런 기척도 없어 어쩐지 으스스했다. 잠시 멈춰 서서 정적을 느끼고 있으려니 문 앞에 붙어있던 ‘출입금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진심일지 모를 경고를 무시하고 침입한 주제에 왜 이렇게 당당하게 굴었담. 신나게 노느라 망각했지만 자신은 침입자였다. 자각과 함께 죄책감이 몰려왔다. 짧은 자기반성 시간을 가진 뒤, 나가려고 등돌리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시 몸을 틀었지만, 보이는 형체는 없이 어둠 뿐이었다. 잘못들었나 싶어서 그 자리에 서서 다시 귀를 기울였다.
“나도 재밌었어.”
어둠 속에서 또래로 보이는 한 아이가 나타났다.
“어떻게 들어온거야? 출입금지도 써 붙여놓았잖아.”
“하지만, 문이 열려 있었는걸.“
“무서운 트랩들도 이것 저것 설치해 놓았는데…”
“하하. 진심이야? 난 웃긴 스티커랑 압정젤리, 건강을 위한 지압돌 같은 것 밖에 못 봤어.”
말문이 막힌 듯 잠깐 정적이 흘렀다.
“… 하지만, 정말 다치게 되면 안되잖아.”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아이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정원에 있는 식탁에서 먹어본 적 있던 쿠키와 차를 가져와 주었다. 나와 또래로 보이는 그 아이는 자신이 1000년도 넘게 살고있는 도깨비라고 했다. 집의 중심부까지 누군가 들어온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라 놀랐다고 말하는 얼굴은 쓸쓸해보였지만 어쩐지 설렘도 묻어있는 듯 했다. 그 애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다들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나버려. 나와 노는 게 재미없어지거나, 때로는 작은 오해를 풀지 못하고 헤어지기도 했었지. 자신의 꿈을 찾아 길을 떠난다는 핑계는 그나마 덜 아파. 가장 슬픈 건 수명이 다해 죽어버려서 못 만나게 될 때야. 행복은 찰나와 같고 상실감과 아픔은 길고 깊거든. 언젠가부터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했어.“
"마음대로 들어와서 미안해. 그치만 정원의 주인이 누굴까 항상 궁금했어."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는 한동안 주저하다가 말했다.
“종종 네가 정원에 놀러올 때 널 봤어. 나도 네가 궁금했어.“
솔직하게 말해주는 그 애가 사랑스러웠다. 친구가 되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고백이 터져나왔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가 있어서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기 전에 돌아가려면 곧 출발해야 했지만 아직 못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더 친해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 애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조바심이 났다.
“난 이제 가봐야 해. 그치만 내일도 놀러올게. 나랑 놀자.”
그 애는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나를 배웅해 주겠다며 같이 현관으로 나왔다.
“내일 봐.”
“안녕.”
문 앞에 선 그 애는 이번에야말로 문을 닫고 잠가버릴까 무척 고민하는 듯 했다. 문 밖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결심한 듯한 얼굴로 돌아선 그 애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그 애의 뒷모습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문을 닫지 않았다. 그래야 누군가 또 들어올 테니까..
모두의 마음 속 도깨비와 아이를 생각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