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충분히 좋아

by Ryeonny

“우리 만나보자.”


만나서 밥 먹고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하기도 하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곧 관계를 정의해야 하는 때가 오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는데 대답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카페가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는 말 없는 나를 얼마간 기다려 주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생각해 보고 말해줘.”


그가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뜨겁고 향긋했던 커피는 어느새 다 식어 있었다. 나는 식어버린 커피를 몇 모금 더 마셨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잠시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날 찾아왔다.


"자긴 5년 후, 10년 후에 뭘 하고 있을 거 같아?"


“음...지금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재미있게 사랑하며 살고 싶어.“


면접관 같은 질문을 던졌던 그는 내 대답에 아무 말없이 먼 곳만 바라보았다. 그즈음 그는 자기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에 몰입되어 있었고 종종 내게 저런 질문을 던지거나, 직업적 성공이나 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기도 했다. 어색해진 공기에 모른 척, ‘커피 맛있다’라고 하며 들이켠 커피는 쓰기만 했다.


며칠 뒤 새벽, 그에게 전화가 왔다.


“아닌 것 같은 주는 빨리 손절 쳐야 하는거야.”


하락주라니. 여의도 증권맨은 이별 멘트도 저렇게 하는 건가. 나를 지탱하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 계속 횡설수설하는 술 취한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누워있던 침대가 늪인 것처럼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날부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디를 가도 무얼 해도 계속 전화기 속 그의 한마디가 귓가에 재생되었다. 회사도, 가족도 모두 놓아버리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걸까? 돈이나 직업적 성공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은 혹시 그걸 갖지 못하는 내 정신 승리였던 걸까? 별의별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평소에 전혀 읽지 않던 자기계발서, 금융 관련 책들을 읽어 보기도 했지만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조차.


스스로가 지켜오고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질문을 지속했지만, 나오는 답은 없었고 깊은 수렁 속으로 계속 가라앉게 될 뿐이었다. 의문이 정점에 치달았을 때, 가장 소중한 친구인 여동생을 찾아가 물었다.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아 있던 문장이 있었다. 나보다 나은 ‘급’의 사람을 만나야 성장할 수 있을 거란 말.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거냐고, 나만 인생이든 만남이든 설계하지 않고 살고 있는 거냐고 잘못하고 있는 거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계산 없이 마음 여는 거. 그냥, 사랑할 수 있는 거. 그게 언니의 중심이잖아. 엄청 큰 장점이고…”


그 말이 다시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 올렸다. 다시 나는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힘들 땐 글을 읽었다. 얼굴 모를 사람들의 글이 나를 살게 했다. 좋은 글을 읽은 날은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다시 친구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었다. 잡아달라 내민 손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글로, 그림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나 행동으로 위로가 되고 싶어졌다. 인스타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그림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상처를 고찰하며 여러 날 글을 쓰자 어느 날은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상처는 나를 표현하게 했고,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내 가치관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상처는 씻은 듯 나았고 그 위에는 깨끗한 새살이 돋았다.’


그렇게 끝나는 깔끔한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깊은 상처는 아픔이 가신 후에도 흉터가 남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로 하루를 채운다든지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때면 만족감에 충만해지다가도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때때로 찾아온다. ‘서로의 가장 소중한 이가 되자’고 다가오는 이에게는 감추어 놓았던 흉터들로 얼룩진 추한 속살을 드러내 쫓아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흉터를 커다란 반창고로 가리고 다 나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반창고는 떨어질 수도 있고, 오래된 흉터도 이유 없이 쑤실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카페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문자를 남겼다. 진부하지만 내 진심이 담긴 멘트였다.


’미안해. 나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면…‘으로 시작하는 그 메시지에 답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보내지 못했다. 아직 이렇게 멈춰 있는 상태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흉터를 지닌 채로 누군가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