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ping Economy Part II.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이다. 이번 글에서는 싸이키델릭을 다룬다.
현대 기술산업은 싸이키델릭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싸이키델릭이 점차 해외 주요 언론에 의해 거론되는 빈도가 잦아진다. 의료적 연구에서 정신적 질환에 대한 획기적인 효과를 보인 연구 또한 쏟아지는 중이다.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조류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정보가 나눠질 필요가 있다.
! 싸이키델릭은 불법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LSD 체험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경험 중 하나’라 꼽았다. 그는 애플의 성공 이후,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애플의 사원을 뽑는 면접에서 젊은이들에게 서슴없이 물어보았다.
‘LSD 경험이 있습니까?’
구글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CEO 에릭 슈미트. 구글의 젊은 두 창업자보다 한 세대 위이다. 관록 있는 CEO의 적임자를 물색하던 구글이 에릭 슈미트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그가 ‘버닝맨’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버닝맨은 미국 반문화의 명맥을 잇는 제전이다. 아는 사람은 무슨 의미인지 다 알 것이다. 세대를 가로질러, 그들은 어떤 느낌을 공유한 모양이다.
이처럼, 실리콘 밸리의 중심 구성원들에게 싸이키델릭 경험은 비밀이 아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는 것을 조심할지언정, 사석에서 이에 대해 거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 실리콘 밸리의 공기라고.
수백 명의 성공적인 하이 퍼포머들을 인터뷰하는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단언한다.
‘제가 만나본 억만장자 기업가의 전부가 싸이키델릭을 주기적으로 사용합니다.’
Psychedelic의 어원을 살펴보자.
Psyche = Mind
Delos/Delic = to reveal
마음을 드러내다. Mind Revealing.
마음을 드러내는 효과를 지닌 물질(substance).
이 용어가 자리잡기 전, 정신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이 약물들을 통칭하기 위한 다양한 용어의 후보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용어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의 싸이키델릭 / Psychedelic이다.
싸이키델릭의 경험자들은 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경험담을 가로지르는 강한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마음이 동작하는 방법이 인식된다는 것. 무의식적 판단, 고정관념 또한 인식된다. 이러한 경험은 신비의 체험이 되기도, ‘박스 바깥에서 생각하는’(Think outside of the box!) 창의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자기 분야의 난제와 씨름하던 48명의 과학자들에게 LSD를 투약해본, 20세기 중반의 실험이다. 48명의 과학자들 중 44명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법을 도출해냈다.
이는, 싸이키델릭이 지닌, 다양한 두뇌 영역이 연결되는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마법 버섯’의 유효성분인 실로사이빈을 투약한 피험자들의 두뇌 활동을 fMRI를 통해 스캔한 결과, 평소 서로 교류가 없던 다양한 두뇌 영역이 교류하는 것이 관측되었다.
싸이키델릭은 모든 환각물질을 통칭하지 않는다. 세로토닌 리셉터에 작용하는 인돌(indole) 계열의 물질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반적으로 LSD, 실로사이빈(Psilocybin)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 외에도 비슷하거나 약간 다른 화학적 구조를 지닌 물질들이 있긴 하지만, 주목받는 물질은 크게 두 가지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물질들은 독성과 중독이나 의존의 위험성이 0에 가깝다는 특성이 있다. 유효한 복용량의 수백 배를 복용해도 신체에 독성을 끼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중독 증상을 덜어주는 연구 결과가 있을지라도, 싸이키델릭에 중독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성에도 불구하고, 싸이키델릭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싸이키델릭은 가장 큰 사회적 터부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싸이키델릭을 68년 1급 규제물질로 지정되기 전 12년의 시간 동안, 스위스의 제약회사 샌도즈(Sandoz)는, LSD를 연구하려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무상으로 LSD를 공급했다.
마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약성을 지닌 물질. 처음 LSD가 뇌과학자, 심리학자, 심리치료사 등, 마음을 연구하던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을 때, LSD는 중요한 과학적 돌파구로 여겨졌다.
체코의 심리학자 스타니슬라브 그로프(Dr. Stanislav Grof) 박사는, 심리학에서 LSD의 발견은, 생물학에서의 현미경의 발견이나 천문학에서의 망원경의 발견에 비견할 수 있다 말하기도 했다.
60년대 중반까지 LSD에 대한 1,000여 건의 연구가 있었고, 실험 대상군은 40,000명에 달했으며, LSD에 대한 6개의 국제 컨퍼런스가 있었다. 과학 커뮤니티는 새로운 돌파구의 발견에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했다. LSD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을 겪은 기존 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미디어에 노출된 채, 다른 가치관 하에 자라났다.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서,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에 반항하는 카운터 컬처가 움트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전은 잠재되어있던 세대 갈등이 불붙는 도화선이 되었다. 수십만의 젊은이가 명분과 목적이 불분명한 전쟁에 징병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LSD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하버드의 심리학과 교수였던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가 젊은이들의 정신을 LSD를 통해 깨워내려는 대규모 선동에 나선 것이다. ’Turn on, tune in, drop out!’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LSD와 카운터 컬처는 젊은이들이 집결하는 거대한 사회운동으로 떠오른다.
LSD는 사고의 구조를 드러낸다. 기성세대의 국가관은 LSD를 경험한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얄팍한 거짓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어렴풋하게 부조리를 느낀 청년이 또래가 권한 LSD를 경험하고는 열성적인 반전주의자가 되는 일이 예사였다. 60년대의 젊은이들은 또래를 계몽하고 집결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를 쥔 샘이 되었다. 카운터 컬처 운동에 참여했던 청년들 사이에서 기존 질서를 뒤집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다.
한편, 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세대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고, 특히, LSD를 경험한 젊은이들과, 질서 바깥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기성세대 사이의 세대갈등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 연일 발생한다.
70년대,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카운터 컬처. 특히 LSD의 사용은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LSD의 부작용에 대한 근거 없는 프로파간다가 언론을 통해 매일 보도되었다. 또한 젊은 세대는 방종에 빠져 모든 종류의 마약류에 탐닉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이 마약중독으로 잇달아 사망하거나, 폐인이 되었다.
싸이키델릭은 터부가 되었고, 60년대의 반문화는 역사의 해프닝으로 기억된다.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다.
인류 역사 수천 년간, 식물성 환각제를 종교적 맥락에서 사용한 사회가 많았다. 중앙아메리카의 페요테 선인장, 실로사이빈 버섯. 남아메리카의 아야후아스카, 중국 도가, 인도 문명, 이슬람 문명의 대마초, 그리스 문명의 엘레우시스 밀의 종교에서 사용된(화학 성분 미상의) 카이키온 등.
하지만 이는 모두 사회적 원로의 지도 하에, 사회적 의식의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환각성 물질의 경험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성인식의 과정이거나, 성직자 계급의 의식이었다.
이에 반해 60년대의 LSD 광풍은, 젊은이들을 대규모로 사회 질서에서 이탈시키는 작용을 불러왔다. 어떤 사회도 이러한 혼란을 용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후 싸이키델릭은 언더그라운드의 문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 명맥은 이어졌다. 베이비붐 세대 카운터 컬처의 구성원들은 실리콘 밸리 기술산업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예술, 문화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창조성을 보인 이들 중, 60년대 카운터 컬처에 몸담았거나, 그러한 부모를 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실. 7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마법 버섯’을 실내에서 재배하는 방법이 메케나 형제(Terence / Dennis McKenna)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 방법을 담은 가이드북은 독립출판을 거쳐, 어린 괴짜들의 손에 쥐어졌고, 싸이키델릭 문화는 지하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메케나 형제를 비롯한 반문화의 ‘잔존세력’은 60년대의 사회적 경험을 곱씹으며, 책임감 있게, 올바르게 싸이키델릭을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토대로, 인터넷의 보급을 통해, 싸이키델릭 문화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흐름을 세 번째 조류(Third Wave)라 규정하기도 한다. 전통사회의 식물성 싸이키델릭에 근거를 둔 종교적 제의들이 첫 번째 조류였고, 60년대의 광풍이 두 번째 조류였다면, 인터넷을 통해 확대되는 새로운 싸이키델릭 문화는 세 번째 조류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들이 LSD를 경험했던 예는 수도 없이 많이 꼽을 수 있다. 비틀즈는 그들의 최고 명작 앨범을 LSD를 경험한 후에 내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DNA의 구조를 밝힌 프란시스 크릭 또한, LSD의 영향 아래에서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LSD를 경험하고도 엉망의 삶을 살거나,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 또한 사실이다.
싸이키델릭의 효과를 촉매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촉매는 화학적 반응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준다. 재료가 되는 물질의 화학적 변이의 속도에 영향을 줘,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의 양을 늘릴 수는 있지만,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반응의 속도가 아닌 재료의 양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훈련도 없는 음악가에게 어떤 촉매를 소개한다고 해도, 비틀즈와 같은 결과치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훈련도 없는 과학자에게 어떤 물질이 주어져도, DNA의 형태를 알아내는 수준의 중요한 발견을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테렌스 메케나의 말에 따르면, ‘싸이키델릭은 멍청이들에겐 효과가 없습니다.’
사회적 단위에서 보았을 때, 싸이키델릭의 효과를 방사선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방사선은 DNA의 무작위 돌연변이를 발생시킨다. 싸이키델릭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촉매처럼 동작한다. 싸이키델릭에 노출된 사회에는 수많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이들 중에 완전히 헛소리인 것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회의 다양성은 문화적 비옥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60-70년대,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서 위대한 성취가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60년대 이후, 싸이키델릭에 대한 모든 과학적 연구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싸이키델릭의 긍정적인 면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학자의 커리어가 끝났을 수준.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며 싸이키델릭에 대한 연구가 재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울증, 강박증, 중독, 트라우마를 다스리는 싸이키델릭의 약성에 대한 희망적인 연구결과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이다.
두뇌는 한 번 형성된 회로 바깥으로 사고하려 하지 않는다. 싸이키델릭은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기존의 자기 자신이었던 인격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는 경험을 준다. 이러한 과정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인격이 와해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싸이키델릭을 이용한 연구는 상담치료와 병행한 철저한 의료적 관리 하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채, 암시장에서 구한 싸이키델릭을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싸이키델릭의 사용을 도피나, 일탈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라면, 사고방식과 인격의 와해는 위험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자기 삶에 쌓인 업력을 처리해낼 감정적인 안정성이 없는 상태로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사용하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또한, 모든 종류의 정신병에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좋은 경과를 보이는 증상들은 정신의 경직성에서 발생한 증상들이다. 우울증, 중독, 강박증, 트라우마 등. 조현병 계열의, 정신의 중심을 상실한 형태의 정신병을 지닌 사람에게는, 싸이키델릭의 경험이 큰 트라우마적 경험을 남길 가능성 또한 있다. 이미 정신의 구조가 불안한 개인은, 싸이키델릭의 경험이 조현병의 발병을 부추길 위험 또한 있다.
하지만, 모든 위험성을 뒤로하고서라도. 몇 실험의 결과는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우울증 약에는 50%의 인구가 반응하지 않는다. 20%의 우울증 인구는 모든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치료에도 차도가 없는 실험군들에게 실로사이빈과 상담치료를 병행한 결과, 그들의 우울증에 상당한 차도가 찾아왔다. (아직 통계에 이를 만큼 많은 실험군을 확보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술, 담배의 중독증상에서는, 그 어떤 치료법보다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금연에 의지가 있는 실험군을 모집해, 실로사이빈을 체험하도록 한 실험에서, 67%의 실험군은 금연에 성공했다. 다른 치료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약물치료에 비해서도 2배의 효과를 보인 것. 무엇보다, 한 번의 투약이 가져온 효과라는 점은 경이롭다.
싸이키델릭 연구가 금지되기 전의 연구 중 하나로, LSD가 알코올 중독을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다. 상담치료와 병행한 실험에서, 통제군은 38%의 금주율을 보인 반면, LSD 투약군은 59%의 성공률을 보였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의 정석으로 꼽히는 단주모임 테라피 AA(Alcoholics Anonymous). AA는 12단계의 프로그램으로서, 프로그램의 말미의 단계에 ‘신성과의 만남’이 있다. AA의 창시자 빌 윌슨은 1935년 프로그램을 창설한 뒤, 신성과 만나는 경험을 나누는 것에 실패하는 ‘냉소적인’ 참여자들을 오래 만나왔다. 55년, 빌 윌슨이 심리치료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던 LSD를 실험해본 결과, AA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LSD를 체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주의 결심을 돕는 ‘큰 의미’, 신성을 발견했던 것. 그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또 다른 약물을 권한다는 사실에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지만, LSD가 알코올 중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평생 일관되게 피력했다.
현재, 모든 싸이키델릭에 관한 실험은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을 앓고 있는, 다른 치료법으로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희망적이다. 십수 년간 싸이키델릭을 연구 중인 로빈 칼하트-해리스 박사(Dr. Robin Carhart-Harrison)는, 싸이키델릭이 선택 가능한 우울증 치료의 옵션이 될 경우, 10년 내에 모든 우울증 처방약을 대체할 것이라 예측한다. 현재 FDA는 실로사이빈을 ‘돌파구 치료법(Breakout Therapy)’로 지정했으며, 이는 전폭적인 연구에 대한 청신호이다.
최근 실리콘 밸리의 기술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싸이키델릭 사용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바로, 미량의 싸이키델릭을 비타민처럼 복용하는 ‘마이크로도즈’이다.
LSD를 발명해낸 스위스의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 박사는, 말년에 LSD를 미량 복용하는 실험을 했다. 인지능력을 강화하는 ‘누트로픽’으로서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엣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싸이키델릭의 마이크로도즈가 주목받고 있다. 창조성을 강화하고,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인식할 수 있으며, ’박스 바깥에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며, 커피와 같은 각성효과가 있다는 것.
물론 명백히 법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그 동네에서는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 딱히 터부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안전하고 합법적인 누트로픽은 얼마든지 있다. 인지능력 향상의 숙련자들인, 경험있는 바이오해커들 사이에서 마이크로도즈는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 인식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