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출판동향> (2018년 12월호)
정치적 이슈와 오디오북이 주도한 영미권 시장
지난 10년간 세계 출판 시장의 중심 화두는 디지털과 모바일이 주도하는 지식문화 산업에서 출판의 위상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스마트 미디어 환경으로의 급속한 이동으로 종이책의 몰락이 우려되었지만, 최근 2~3년간 영미권의 종이책 판매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미국 NPD 북스캔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종이책 총 판매량은 2% 증가했고, 성인 논픽션은 4% 증가했다. 이런 상황을 주도한 타이틀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마이클 울프의 《파이어앤퓨리(Fire and Fury)》와 밥 우드워드의 《피어(Fear)》로 두 책 모두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11월에 출간한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은 보름 만에 북미 지역에서 200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연말 출판 시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프랑스, 독일, 핀란드, 한국, 대만 등 총 31개 언어로 번역된 《비커밍》은 올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혔다.
종이책의 성장에 비해 전자책 시장은 정체와 감소의 국면을 지나고 있다. 다수의 출판 미디어 및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자책 시장은 전년대비 10~15% 정도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0~2015년 사이에 매년 20~30% 정도 성장했던 추세에 대비하면 상황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과감한 할인 공세를 펼치던 전자책 유통사가 판매가격을 높이면서 발생한 결과로 원인을 보고 있다. 메이저 출판사와 아마존이 계약 관계를 조정하면서 출판사에서 판매가격을 결정하게 되었다. 출판사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종이책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자책 판매가를 양장본 수준으로 정하면서 전자책 소비가 많이 위축되고 있다. 이외에도 디지털 피로도 현상으로 인해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통해 여유로운 독서를 선택하는 독자들의 활동도 원인이다. 더불어, 스마트 디바이스 이용률이 급증하면서 책 이외에 영화/드라마/음악/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시간과 비용을 쓰는 비중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디어 콘텐츠 시장 구조의 변화에 적합한 출판 콘텐츠로 각광받는 오디오북의 높은 성장률은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오디오출판협회(Audio Publish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오디오북은 2017년 오디오북 총매출은 전년대비 22.7% 증가한 25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오디오북 이용자의 54%는 45세 미만이고, 이용자의 73%는 오디오북을 듣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하고 있다. 분야별로 보면 미스테리, SF, 로맨스물이 인기가 높다. 주로 운전할 때(65%), 잠자기 전에 휴식할 때(52%), 집안 일할 때(45%)의 순서로 활용하고 있다고 조사 발표했다. 추후에 나올 2018년 연간 결산 자료는 2017년보다 더 성장한 지표가 나올 것으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는 오디오북 시장과 관련된 컨퍼런스가 처음 열렸다. 스마트폰과 함께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오디오북을 찾는 이용자들이 증가했다. 메이저 출판사를 중심으로 신규 수익 채널로 오디오북 사업에 적극적이다. 하퍼콜린스, 사이먼앤슈스터 등 대형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오디오북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형 출판사의 분기별 오디오북 성장률은 비종이책 매출에서 전자책을 넘어서고 있다. 오디오북의 성장을 견인하는 요인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오디오북 이용자가 많아졌고, 아마존의 알렉사(Alexa)와 구글 어시스턴트(Assistant) 등 음성 지원이 되는 스마트 스피커의 빠른 보급이 중심에 있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오디오북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고, 오더블과 스크리브드 등 대형 오디오북 플랫폼에서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모델을 출시하면서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이용 환경 제공도 성장을 이끈 핵심 요인이다.
올해는 유통 채널을 대표하는 서점계의 변화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제 다수 독자들의 도서 구입 채널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과 모바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서점을 대표하는 반스앤노블은 심각한 매출 부진으로 회사를 매각할 준비에 있다. 이미 다수의 관계자가 회사 인수에 관심을 드러냈고, 이사회 특별위원회가 검토하고 있다. 반스앤노블은 2012년 70억 달러의 연매출을 기록한 이래, 2017년 37억 달러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영국의 대형서점을 대표하는 워터스톤즈는 아마존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사인 포일스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아마존은 올해에도 워싱턴과 LA 등에 아마존북스(amazon books)를 출점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아마존북스에서 확보되는 각종 데이터는 최상의 추천 시스템을 완성하는데 사용된다. 매장 내에 전자책 전용 디바이스 킨들, 파이어 태블릿, 알렉사 기반의 에코 등 자사의 디지털 상품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인기를 많이 얻고 있다.
최근 세계 출판계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를 이용해서 출판기획, 마케팅 및 커뮤니티 운영에 매우 적극적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성비 높은 콘텐츠 제작과 독자와의 친밀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과 규모의 차이가 약한 편이다. 이미 전 세계 다수의 출판사와 서점들이 소셜미디어 채널을 운영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저자와 독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출판 이벤트가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와 모바일을 통한 콘텐츠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오프라인에 찾아가는 독자수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출판사와 서점을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만 진행하는 이벤트보다는 페이스북 라이브와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등을 이용해서 콘텐츠와 독자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트위터 등을 통해 책을 홍보하는 출판사와 작가, 유튜버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일반화되고 있다. 현재 펭귄랜덤하우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팔로워는 95만여 명, 하퍼콜린스US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1만여 명으로 독자와 직접 연결된 네트워크 확보에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출판 정책상으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유럽연합(EU)에서 18개월 정도 논의되었던 부가세 인하 결정 사항이다. 그동안 EU는 종이책 대비 전자책 부가세가 높은 수준이었다. 일반 상품의 부가세율보다 높게 책정되어서 역차별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종이책의 부가세는 7.3%, 전자책은 18% 정도다. 높은 부가세가 적용된 판매가는 전자책 독자들에게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룩셈부르크 등 일부 국가에서 전자책 부가세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EU와 충돌하는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EU재정경제위원회>의 최종 결정 사항은 EU의 28개 회원국의 승인을 받은 사항이라서 전자책 부가세 인하는 전면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자책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유럽은 계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결정은 유럽의 전자책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출판사연합>과 <유럽독립서점연맹>의 고위 임원들은 찬성 입장을 표명했고, 여러 국가들도 전자책 부가세 인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종이책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산업 전체가 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다양성에 기반하여 성장하고 있는 비영어권 시장
올해 영미권 출판 시장은 정치적 스캔들(미국)과 브렉시트(영국)라는 사회경제적인 변화 양상을 담아내면서 오디오북의 성장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유럽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폐인, 스웨덴, 폴란드, 브라질 등 주요 출판 강국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성장이 진행되었다. 종이책 시장은 평균적으로 소폭 성장했고, 전자책 시장도 언어별로 플랫폼의 확대 진출과 스마트폰 이용자의 증가로 콘텐츠 수량과 매출액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유통 분야도 온라인 서점의 시장 점유율은 영미권에 비해 낮은 편으로, 기존 오프라인 서점과 독립서점이 균형을 맞추면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은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는 도서정가제와 독립서점을 애용하는 지역 시민들의 높은 문화적 소양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모바일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확산으로 인한 출판 시장의 위기를 미흡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특히, 오프라인 중대형급 서점들은 위기감이 상당하다.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특별한 경험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는 매장 구성과 큐레이션(curation)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 출판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은 온라인과 전자책(웹콘텐츠 포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한 해였다. 일본은 1997년을 정점으로 매년 전체 출판 시장이 감소하고 있다. 일본 각지에서 다양한 독서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각적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독자 이탈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TV 등을 통한 디지털 문화 콘텐츠에 밀려 2018년 상반기에만 12종의 만화잡지가 발간을 중단했다. 상대적으로 디지털 만화와 잡지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존, 코보 등 글로벌 전자책 플랫폼이 일본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수의 출판사들도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프라인 서점이 급감하고 있지만, 복합문화 공간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츠타야는 라이프 스타일 컨셉 스토어로 반등하고, 특색있는 독립서점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출판 시장의 성장률 둔화에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으로 자리잡을 만큼 성장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하에 도서출판업의 질적 향상이 진행되면서 인프라 구축이 탄탄해졌다. 규모가 큰 시장임으로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점은 장기적인 성장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도서 소매시장 매출액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더 높아진 점은 전자책(웹콘텐츠 포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중국 출판의 중요한 변화로 분석된다. 더불어, 영미권 시장처럼 오디오북 성장률이 연간 40~50% 수준일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은 차별화된 소비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독서 환경과 서비스 개선, 상품 차별화 전략 등을 전개하고 있다.
2019년 글로벌 출판 시장 전망
출판의 경제적 원동력은 다양성에서 시작된다. 전반적인 시장 환경은 2018년과 큰 차이는 없겠지만, 국제 정치와 경제 상황의 변화는 출판물 기획과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유럽과 남미의 불안정한 정세, 아시아의 인구와 소득 수준의 변화 등도 출판 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교차 성장과 함께 오디오북 시장은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하는 유통 채널의 변화도 충분히 감지된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도 시장 상황과 독자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맞춰 상품을 구성하고 큐레이션과 커뮤니티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다. 아마존과 메이저 출판사들의 위상은 계속 높아지겠지만, 독립서점과 개인 저자들의 활동도 발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개인과 집단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 이야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텍스트와 오디오, 비디오를 넘나들면서 독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2019년은 향후 2020년대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본격적으로 대응하면서 정보통신기술과 연결된 출판 시장의 도전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테크(Booktech)의 시대가 그만큼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블록체인, 인공지능,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빅데이터 등이 출판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출판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유통 구조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 저작권 거래도 책 중심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포함한 IP(Intellectual Property)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출판 인접 산업에 있는 사업자들이 출판에 직접 뛰어들거나 매력적인 IP를 확보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공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출판은 스토리 사업의 뿌리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양질의 매체로 인정받고 있다. 2019년에도 그 영향력은 글로벌 출판업계의 노력과 투자를 통해 다방면으로 확장될 것이다.
- <해외출판동향> (2018년 12월호)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