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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Nov 25. 2020

모국어가 없는 외국인

모국어 못하는 외국인의 사연

난 모국어를 못하는 사람이다.

필리핀에서 태어났지만, 필리핀어를 못한다. 그래서 필리핀어 대신에 한국어와 영어를 쓴다. 나는 이렇게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남들처럼 밥 잘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면 한마디를 한다. 특히 같은 고향 사람들.


'아니, 왜 모국어를 못해. 모국어 잘해야지.'


이해한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같은 고향 사람인데 소통이 안 되면 교류하기 힘들다. 특히 모국어만 할 줄 아는 고향 사람과 말이 안 통한다. 소통의 의미로 그런 말을 하면 이해하고 넘어간다. 문제는 그걸 '죄'처럼 나쁘게 인식하는 태도다.


어릴 때 사람들은 내가 모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듣고 어느 정도 넘어갔다.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면, 내가 어렸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이 봐준 것 같았다. 자라면서 모국어를 배우리라 확신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서도 모국어를 아직도 못한다. 이제 쓴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국어를 할 줄 알아야지."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소통하려면 말이 통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런 말과 함께 선 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니, 내가 모국어 못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부모님이 잘못한 일이다."


청소년 시절에 들었던 말이기 때문에 겉으로 웃었지만 속으로 울었다. 정말 서러웠다. 모국어 잘하면 내가 로또 당첨이라도 하는 건가. 모국어 못하면 감옥 가야 하나. 모국어 잘하면 감정적인 풍부함을 느끼나. 모국어 못하면 난 무조건 실패의 길을 걷는 건가. 나는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언어 때문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서운하다. 공격하려면 나만 공격하지 왜 부모님까지 공격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 사고를 치지 않았고, 재능을 살려서 상도 받았고, 외국인의 삶을 감당하면서 내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놈의 모국어 때문에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진심으로 나랑 소통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나오는 말이면 몰라, 단순히 아니꼽다는 이유로 나오는 말이면 당연히 상처가 된다. 지금도 그 말을 들으면 겉으로 미소 짓고 속으로 운다.


복잡한 언어생활을 살았기에 '당신의 모국어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곤란해진다. 영어, 한국어 그리고 필리핀어 사이에 선택해야 하는데 무슨 언어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질문자가 생각하는 모국어의 정의를 듣고 그에 맞는 답을 내놓았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모국어의 정의가 '처음으로 익힌 언어'라면 영어 또는 한국어라고 대답했다. 만약 모국어의 정의가 '국적의 언어'를 뜻하면 필리핀어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러한 방식으로 대답했던 기억을 떠오르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에게 모국어란, 의미가 없다. 나는 모국어가 없는 외국인이다.


나는 언어를 예술의 도구와 소통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모국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모국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기에 그 부분을 존중한다. 그런데 나에게 모국어는 내 정체성이 아니다. 모국어가 정체성인 사람이 나를 보고 '넌 모국어를 못하니까 어딘가 잘못됐어.'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하자. 나는 정말 어딘가 잘못된 걸까. 내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 소리 들으면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기분이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상처 받는다. 모국어라는 존재가 상대방의 정체성이라면, 그 상대방이 모국어를 정체성으로 바라보지 않은 나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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