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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Jan 08. 2021

한국과 고향에서 소속감을 못 느끼는 외국인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삶

"어는 나라에서 왔어요?"

"모국어 할 줄 아나요?"


외국인으로 살면서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예민한 외국인 청소년으로 살았던 시절에 기피하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악의 없는 두 질문을 들으면 이상하게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내가 거울 앞에 서면 10년 이상 외국인으로 살아온 내 모습이 나온다. "어는 나라에서 왔어요?"와 "모국어 할 줄 아나요?"는 그런 내 모습을 반사하는 거울 같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이 질문을 받으면 자신 없게 필리핀을 말하게 된다. 국적이 명확하게 필리핀으로 나왔는데 어째서 자신 없게 대답하는가. '필리핀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내가 필리핀 현지인이 된 기분이다. 나는 필리핀 사람일 뿐이지 필리핀 현지인이 아니다. 국적만 필리핀이지 필리핀 역사와 모국어를 잘 모른다. 필리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저는 필리핀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모국어 할 줄 알아요?"


나에게 모국어란 어릴 때 포기한 언어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느라 모국어까지 신경 쓰기 힘들었다. 모국어를 포기했기 때문에 '모국어 할 줄 알아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니오'를 대답하면 내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유는 내 국적 때문이다. 국적이 필리핀인데 모국어를 못한다는 타이틀이 창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느낄 필요 없었는데 소속감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모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필리핀이라는 집단에 소속될 자격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와 "모국어 할 줄 아나요?"는 내 불안정한 소속감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두 질문을 기피하고 싶었다. 그 질문을 받으면 내게 소속감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타국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이 흔히 겪는 일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 필리핀은 다르다. 모국어도 못하고 필리핀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해서 고향 사람들과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다. 심지어 이들도 나를 외국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타국에서 힘들게 살다가 고향에 가면 위안을 얻는다. 그 사람이 고향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그게 힘들다. 고향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어서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와 "모국어 할 줄 아나요?" 같은 질문을 들으면 '넌 무소속이야'라는 무서운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외국인의 삶이 그렇게 나쁜 삶이 아니다.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삶이지만 모험가라는 기분이 드는 인생이다. 나처럼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삶이다. 그런데 어렸던 나는 불안정한 소속감 때문에 그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어른인 나는 청소년의 내가 아니라서 그때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기억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 필리핀 사람은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가서 기댈 수 있다. 누군가가 외국 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면 '그래, 여기가 내 집이었지.'라는 안정감을 느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 아니니까 당연히 의지하기 힘들다. 필리핀 사람인데 필리핀 사람처럼 말을 하지 않고 필리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아서 고향마저 외국처럼 느껴졌다. 고향이 기댈 곳이 아닌 부담스러운 곳이 돼버렸다. 어렸던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무너지면 어느 나라에 가서 기댈 수 있을까.'


기댈 곳이 없는 삶이 너무나 두려워서 외국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강한 마음을 안고 외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나와 같은 외국인 친구들은 고향에서 위안을 얻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오직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하게 살기 힘들었다. 이것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와 "모국어 할 줄 아나요?"라는 질문을 왜 그토록 피하고 싶은 이유다. 두 질문은 나를 무너지게 하는 현실을 인지하게 만들어서 피하고 싶었다. 나는 그런 과거를 떠오른 후 '그랬구나. 내가 그런 두려움에 시달렸구나.'하고 넘어갔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그리고 모국어를 할 줄 아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받으면 과거처럼 똑같은 대답을 한다. 


"필리핀 사람입니다."

"네, 모국어 못합니다."


과거의 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면 현재의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국적 변동이 있어서 당당하게 대답한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한국의 외국인이고 필리핀에서도 외국인 취급받는 사람이다. 소속감은 여전히 안정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달라졌다. 


인생의 모험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외국인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니까 기댈 곳이 없어서 서러웠던 마음이 사라졌다. 현지인으로 살아갈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있다. 그런데 그 마음 때문에 내가 불행하게 살아갈 이유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의 인생 자체가 완벽할 수 없으니 내가 밟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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