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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Jan 12. 2021

침수되는 집에서 수영복 입었던 외국인 어린이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일화

"나 어릴 때, 수영복 입고 침수된 거실에서 뛰어논 적 있다!"


농담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반지하에 살았을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다.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깼는데 비몽사몽 한 상태로 거실로 향했다. 안방에 가려고 한 발짝 움직였는데 발이 촉촉해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내리자마자 물 파동이 일어나는 바닥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거실이 수영장으로 변하고 있어!'


첨벙첨벙 뛰면서 소리쳤다.


"아빠! 거실이 수영장으로 변하고 있어! 와 신난다!"


여기서부터 아빠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아빠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안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거실로 뛰었다. 딸이 외치던 수영장은 침수된 거실을 뜻했다. 아빠는 바닥을 보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때는 정확히 화장실 때문인지 아니면 폭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집에서 침수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아빠가 열심히 침수를 막고 있을 때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후에 거실로 향했다. 침수 때문에 피곤했던 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웃었다. 거실이 수영장으로 변했다고 신나게 외쳤던 딸이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다시 등장했다. 어이가 없고 동시에 상황에 안 어울리게 귀여운 나머지 아빠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상황을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마찬가지로 웃기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현관문을 보자마자 침수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녀가 서둘러 집안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고생하는 아빠와 수영복 입고 첨벙첨벙 뛰는 딸을 발견했다. 엄마도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아마 딸이 옷장 속에 숨겨진 수영복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궁금하다. 지금의 나는 수영복 입고 첨벙첨벙 뛰어논 기억이 있었지만, 그 수영복을 어떻게 찾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내 시점으로 돌아가겠다. 나는 평소 물놀이를 좋아해서 집이 수영장으로 변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내 상상이 현실로 일어나기 시작하니까 신난 마음에 수영복을 입었다. 내 목표는 이랬다. 물의 깊이가 무릎에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깨끗하지 않은 물을 보고 수영할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땐 어렸기 때문에 깨끗한 물, 더러운 물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수영장 물도 여러 사람이 왔다 간 물이기 때문에 다 똑같은 물처럼 보았다. 시간이 흘러도 물이 무릎 위에 닿지 않아서 그냥 만족하고 첨벙첨벙 뛰어놀기로 했다. 


집이 침수되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순수하게 물이 흐르는 바닥을 보고 수영장을 떠올랐다. 거실을 본 순간 수영장과 그 특유의 약 냄새가 떠올랐고 그것을 재밌는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부모님은 그 사실을 듣고 딸의 엄청난 상상력에 감탄했다. 어릴 때 했던 엉뚱한 행동은 현재 부모님의 '그땐 그랬지'하는 재밌는 일화가 되었다. 아빠는 그 기억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되게 부정적인 상황이었는데, 네가 그것을 순수한 의도로 긍정적인 상황으로 만들었으니. 어른의 눈에는 큰일 나고 되게 짜증 나는 일인데. 그걸 수영장이라고 생각하고 밝게 생각하니까 웃겼더라. 어린아이의 눈에도 그런 상황이 재밌는 상황으로 볼 수 있구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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