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년에 로이텀 한 권을 쓰는 일기 러버다.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는 5년, 로이텀으로 넘어온 지는 3년째 됐으니 나름 오래 이어지고 있는 습관이다.
그러다 작년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는 게 무지 어색했다. 일기가 있는데, 굳이?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결국 소통하고 싶었다. 오늘일기와 이번 주로 끝난 주간일기를 비롯해 책 후기, 영화 후기, 음악 러닝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매 시기 하는 생각들을 기록했다. 지금은 일기만큼이나 애정하는 공간이 되었다. 글로 내 이야기를 남기고, 글을 통해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는 공간.
점차 넓히고 싶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공유를 해봤는데- 불특정 다수로의 확장 효과는 있었으나 짧은 호흡의 콘텐츠가 주류인 공간에서 기대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블로그로 돌아갔다가, 어느 날 문득.
어, 브런치!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됐다.
세상에는 좋은 콘텐츠가 참 많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보고 들은 것들을 내 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주로 일기장에서 해왔다.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생각 줄기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서, 그걸 정리하면 수기의 힘과 함께 새로운 반짝임을 찾을 수 있음을 믿기에. 문득 돌아보니 그게 '누구도 시키지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굳이나 에너지를 들이며 꾸준히 해오던 일'이더라. 진정 좋아하는 일이 뭘까, 하고 이곳저곳 찾아봤으나 숨쉬듯 해온 일을 가볍게 여겨왔던 것이다. 역시 속담이 괜히 속담이 아니다.
이번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어떤 글을 써볼까 고민했다. 특정 주제를 잡고 시리즈 별로 써볼까, 책 리뷰를 남겨볼까. 막상 들어와 보니 제목은 어쩜 그렇게 흥미롭고 글은 또 그렇게 인상적이던지. 이 틈새에서 그래도 글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읽히려면 멋들어지게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느꼈다. 그냥 매일 보고 듣고 느끼는 점들을 부담 없이 쓰자.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 글의 생명력은 내 깊이에 달려 있는 것이겠지.
블로그는 최소 2시간, 많게는 밤새 쓰기도 한다. 게다가 집중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친 완벽주의로 비화,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바보 같은 상황들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이번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종의 도전(?)을 해보려 한다. 경의중앙선 그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후루룩 쓰고 있는 지금처럼, 매일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런 부담 없이 글을 쓰러 찾아오려 한다.
세 달 뒤 독일로 교환학생을 떠난다. 중국언어문화와 정치외교를 공부하지만 익숙한 세상을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고 경험하길 즐기는 탓에 요즘은 철학에 관심이 많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인생책으로 꼽고, 죽음과 존재에 대한 사유에서 가장 본질적인 즐거움을 느껴 요즘은 하이데거 강의를 듣고 있다. 보고 들은 것들을 종합하거나 우러나오는 물음들을 갖고 가만히 세계를 관조하며 공상하는 것이 너무 재밌다. 20대의 필연적 불안 속 하필 이게 가장 즐거워 뭘로 먹고살지, 고민을 안고 매일을 사는 요즘이지만 일단 치열하게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리라는 믿음만 안고 간다. 이런 관심사들이 큰 틀에서의 주제가 되겠지만,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상에서도 글을 편하게 써보고 싶다.하다 못해 해외생활 대비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서도 느끼는 바들이 있으니! 읽을 만큼 매력적인 얘기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써보련다.
당췌 새 글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는 브런치 새내기지만 점차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좋은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기쁘다. 숨쉬듯 찾는 공간이 되길! 잘 부탁합니다!